일을 좋아하지만, 일에 지친 자의 넋두리
AJR - The Good Part
Have I done my best here, or will I be here next year, or
Are these my best years yet?
Was looking forward to being important but
I'm not important yet
If you put this scene on a movie screen
Is it called a happy end?
If the world gets me, where I'm supposed to be
Will I know I've made it then?
It's so hard
Can we skip to the good part?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본디 먼 미래를 내다보며 희망을 마음을 갖는 일이다.
언어라는 게 오늘 배우기 시작해서 다음 달에 당장 써먹을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당장은 초보적인 단어 한 두 개를 웅얼거릴 뿐일지라도 언젠가는 지성을 담은 단어를 꾹꾹 담아내고, 마음과 진심을 담은 진짜 '대화'와 '언어'를 만들어낼 수 있을 거란 막연한 희망을 갖는 것. 또한 그러한 언어가 쓰임이 있을 거라 믿는 것.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건 그런 일이다.
방구석 유튜브만큼 릴랙스 한 동시에 액티브한 일이 또 있을까. 코로나가 심해지고, 재택근무가 일상이 되면서 나도 유튜브를 보는 시간이 많이 늘어났다. 한 동안은 혼자서 1인칭 시점으로 여행을 기록하는 유투버들을 연쇄적으로 구독했는데, 동시간 대의 여행 중계는 아니었지만, 모두가 집에 갇혀 있는 그 시간 동안 생기 있는 거리를 누군가가 거니는 것을 구경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이 되곤 했다. 굽이굽이 버스를 타고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미지의 동네의 시장을 돌아다니며 몇 천 원짜리 길거리 음식을 사다 먹고, 10명이 함께 잠자야 하는 호스텔에서 다른 일행의 코 고는 소리 때문에 잠을 설친다던가. 한 때는 나도 그렇게 여행하곤 했다.
시간을 꽤 거슬러 올라가면, 나에게도 몇 달 동안 여행만 하던 시절이 있었다. 상투적인 묘사지만, 배낭 하나에, 조그만 페이스 타월과 비누 같은 것들을 넣어서 스카이스캐너 최저가 검색 항공 티켓이 이끄는 랜덤 목적지로 이동하고, 거기에서 가장 저렴한 숙소를 찾아서, 숙소 근처의 슈퍼마켓에서 샐러드나 빵 같은 것들을 사서 길거리에서 끼니를 때우며 몇 달을 보냈다. 그때의 나도 잘 알고 있었다. 앞으로 내 인생에서 이렇게 자유로운 때는 다시 어려울 거란 사실을. 그리고 그 순간을 평생 추억할 수 있으니, 그때의 여행도 노력해서 해야 한다고.
당연히 그때의 나는 옳았다. 지금은 한도 든든한 신용 카드가 생겼지만, 지금껏 마음이 그토록 자유롭고 여유로운 날은 없었고, 그때의 내 예상보다야 여행을 할 수 있는 시간은 만들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그렇게 하기까지가 쉽지가 않았다. 하지만 살아 있는 동안 한 번 정도는 다시 저렇게 자유롭게 여행하는 나날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코로나 시대의 여행 유투버들은 나의 여행하는 나날의 기억도 되살려줬다.
그러다 문득 스페인어를 배워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나도 저렇게 남미를 여행할 수도 있잖아!
당장에 앱스토어를 열어 듀오링고라는 학습 앱을 깔고 어눌하게 단어 몇 가지를 더듬거리며 읽기 시작했다.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본디 먼 미래를 내다보며 희망을 마음을 갖는 일이다. 언어라는 게 오늘 배우기 시작해서 다음 달에 당장 써먹을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당장은 초보적인 단어 한 두 개를 웅얼거릴 뿐일지라도 언젠가는 지성을 담은 단어를 꾹꾹 담아내고, 마음과 진심을 담은 진짜 '대화'와 '언어'를 만들어낼 수 있을 거란 막연한 희망을 갖는 것. 또한 그러한 언어가 쓰임이 있을 거라 믿는 것.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건 그런 일이다. 아마 최근 몇 년 동안 여행이라는 게 나에게 그러했던 것 같다. 복잡한 일상을 벗어던지고 당장 떠나고 싶은 마음이라던가 이글이글 끓어오르는 탐험 열정이라기보다는, 먼 미래에 지친 나를 위해 남겨둘 조그마한 기쁨이었던 것 같다. 좋아하는 초콜릿이나 사탕을 아껴두었다가 정말 피곤할 때 한 입 먹는 것처럼. 그리고 스페인어를 공부하는 것은 매일 향후를 위해 아껴 놓은 기쁨 같은 것들을 들여다보는 일이었다. 여행의 계획을 세우는 것부터 여행의 즐거움이라는 알랭 드 보통의 의견에 하나도 공감하지 못했던 나였는데, 하늘길이 모두 막히고 나서야 그런 마음을 조금 알 것 같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일보다 삶이 더 중요하다 말을 하고, 좋은 직장의 조건으로 '워라밸'을 꼽는다. 대개 이때 우리가 말하는 '워라밸'은 일을 제외한 일상생활의 여유로운 확보와 일과 삶의 철저한 분리와 격리 같은 것을 뜻한다. 한 때 이 말은 엄청난 시대의 유행어가 되었다. '할 일이 없어도 무조건 야근, ' '회식도 업무의 연장'같은 구호를 깨어 부수며 나온 당대의 새로운 키워드가 '워라밸'이었다. 많은 이들이 일과 삶의 분리와 격리를 통해 안정감 있는 '개인의 삶'이 더 중요하다고 믿었고, 그런 목소리가 개인의 페이스북 피드에서, 미디어에서 넘쳐흘렀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도 자신의 커리어가 계속 정체되고, 프로젝트가 잘 안 풀린다던가 회사에서 상사에게 지적받는 등의 상황에 대해서 쿨하기는 쉽지 않다.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어 보자면, 내가 느낀 바, 많은 사람들은 워라밸을 갖고 싶은 욕망과 동시에 엄청난 성취욕을 갖고 있고, 대개는 이것들이 동시에는 잘 중촉되지 않는다.
나는 일찍부터 나 스스로가 일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남들도 사실 속내는 비슷할 거라고 생각해왔다. 내가 조직에서 관찰해온 사람들은 워라밸을 중시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몹시 평가에 예민했다. 우리가 일을 하는 장면 장면에서 남들이 나에게 내리는 평가와 내가 나 자신에게 내리는 평가의 등급은 몇날 며칠의 기분을 좌우할 뿐만 아니라, 길게는 몇 년, 평생의 자존감 전체를 쥐고 흔든다. 우리는 감정의 노예가 되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되뇌지만, 회사에서 들은 부정적인 피드백은 웬 종일 기분을 우리의 뒤흔들고, 스스로의 의지를 꺾게 만든다. 우스운 일은, 이게 엄청나게 나쁜 평가를 받을 때의 일이 아니라는 거다. 내가 본 많은 사람들을 직장에서 좌절시킨 것은, 그들이 정말로 직장 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의 부족한 성취를 가진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자신이 그렇게 되리라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평범한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속된 말로 날고 기는 사람, 매우 뛰어나서 어느 장면에서도 존재감을 뿜 뿜 하는 잘 나가는 몇몇의 사람과 자신 자신을 견주어 보며, 사실은 자기 자신이 굉장히 평범한 한 명의 직장인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 우리에겐 큰 좌절이다.
일찍이부터 이런 생각을 해 왔던 나에게, 일은 그저 평범하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끝내주게 잘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에게는 일과 삶의 물리적인 분리보다는, 일과 삶의 완벽한 합의라던가. 삶이 하나의 목적이나 가치 같은 것들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느낌 등이 더 중요했다. 즉, 나는 일과 삶의 분리와 격리 같은 것이 필요하다는 '워라밸'의 개념 자체를 예전부터 믿지 않았다. 물론 일보다 삶이 중요하다는 것에는 정말 공감하지만, 일과 삶 사이에서 균형 잡힌 느낌이 든다는 건, 저녁 시간을 확보하는 것만으로 채워질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일과 삶에서 자기 자신을 어떤 주도성을 가지고 있느냐가 이 '균형감'을 결정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남이 시킨 일들을 매일 같은 시간에 끝내고 개인의 시간을 단순하게 확보하는 것만으로 내 균형감을 지킬 수는 없는 노릇 같아 보였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런 나를 '일중독자'라 불렀다. '언젠가는 번아웃이 올 텐데...'라는 말도 몇 번 들었지만, 그런 말과 눈빛에서 나를 낮추려는 의도는 없어 보였다. 오히려 한 시절을 겪어낸 선배가 보내는 따뜻한 걱정, 인간으로의 한계 같은... 그런 것들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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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말 일 중독자였던 걸까? 5년 전의 나는 자발적인 주 6일 근무라는 사이드 프로젝트에 심취해 있었다.
사람의 크기와 운명은 마음에 부침이 생겼을 때 결정된다. 우리는 한계가 도달했을 때, 이다음을 내가 더 큰 사람으로 맞이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내리고, 그다음 스텝을 결정해야만 한다. 큰 사람이 된다는 것이 꼭 더 큰 성공과 이를 보여주는 성취를 말하는 건 아니다. 아마도 이건 삶을 바라보는 자세와 같은 것이 거다. 나쁜 행적은 조금 덜 남기려 하고, 자기변명이 가능한 순간에도 주변을 좀 더 돌아보려 하고. 힘든 순간에서 책임을 덜컥 던지기보단 좀 더 오랫동안 책임감을 짊어지고 나 자신을 더 단련하며 버티는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다.
일에 대한 생각을 확고히 하고, 일중독자적 기질로 하루하루를 펼쳐 나가던 찰나, 많은 사람들이 예언했듯, 나의 커리어 생활에도 마음의 부침이 찾아왔다. 나는 자발적 주 6일 프로젝트라고 스스로 불렀던 사이드 프로젝트 활동들을 잘 해내고 있었고, 다행히 그것들의 성과도 좋았다. 밖에서 인정받은 것의 결과로 직장 내에서도 인지도가 높아졌고, 팀을 꾸리게 되었고, 사업도 성공했고, 또 연달아 신생 기술 스타트업이라는 미지의 세계로 뛰어드는 기회도 갖게 되었다.
나는 '쏘울'이라는 애니메이션 영화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삶의 불꽃을 찾으려는 22번의 모험담도 귀엽고, 우리는 무엇으로 살아내는가?라는 거대한 철학적 질문을 깜찍하게 잘 담아내기도 했지만, 쏘울을 내 인생 영화로 꼽는 가장 큰 이유는 일과 삶에 대한 우리의 열망, 욕심, 좌절 같은 마음 상태를 아주 섬세하고 적확하게 담아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내가 남들 모르게 소매로 눈물을 훔친 장면은 조 가드너가 연주에 몰입을 하여 지구와 영혼의 경계의 지역에 도달했을 때의 장면을 묘사하는 대목이다. 자신의 일에 몰입하던 사람이 순식간에 길 잃은 자가 되어 버리는 장면에서, '또 헤지펀드 매니저인가 봐.'라는 유머를 하나 툭 던지는 바로 그 장면. 자신을 내려놓고 무언가에 깊이 빠지는 것과 공포와 불안, 자신을 잃어버림과 같은 것이 전혀 다른 것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나에게 던져 주었을 때, 정말로 나는 눈물을 흘렸다. 아무도 그 장면에서 눈물을 훔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잘하고 싶은 게 내가 좋아하는 것이었는데, 잘하지 못할까 봐 불안한 마음이 더 커졌을 때. 내가 나 자신으로 행복하게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증명하고 싶어 하나?라는 마음이 더 커졌을 때. 나는 사람도 싫고, 일도 하기 싫어졌다.
일하는 사람으로 이런 위기는 사실 크건 작건 모두에게 있는 일이다. 절망의 크기나 마음의 부침의 크기가 사건의 크기와 꼭 같지도 않다. 하는 일이 완전히 망해도 큰 타격이 없을 수도 있고, 사소한 '꼽'에 나 자신이 무너지는 그런 날도 있다. 약 10년의 직장 생활에서 오는 '일의 슬픔과 우울'을 통해 마음의 부침 역시 친구로 삼아야 한다고 배웠건만, 이번에는 제법 큰 놈이었다.
나는 조금 더 고민해야 했다. 이 마음의 부침을 그 자리에 두고, 더 큰 성취를 위해 나 자신을 더 밀어붙여야 할까. 이건 그럴 수도 있고 사실은 아닐 수도 있지만, 이 마음을 극복하기로 하고 잠을 줄이고 더 자신을 밀어붙인다면 해낼 수도 있다는 걸, 역시나 약 10년의 직장생활에서 쌓아 올린 짬으로, 나는 알고 있었다. 다만, 그것을 끝까지 해낼 마음의 에너지가 충분한 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어릴 적 IMF라는 호환 마마가 있었다. 공무원 집안이었던 우리 집은 큰 위기가 없이 이 시기를 넘겼지만, 이 시대의 뉴스나 드라마에서는 갑자기 누군가의 책상이 빠졌다거나, 출근했는데 부서가 없어졌다거나 하는 팩트에 기반한 괴담이 참 많았다. 이 시대를 겪어본 사람들은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사랑하게 되었다. 아버지가 공무원이었던 나는, 공무원이 아니면 하루아침에 책상을 빼야 되고, 다 망하는 줄로 알고 컸다.
실제 일꾼이 되어보니, 책상 빼는 일이 절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의 위축과 자기변명의 반복과 같은 부정적 하강 나선 곡선을 타는 일이 가장 무서운 일이었다. 책상이 사라지는 것은 이런 하강 곡선의 결론과 같은 일로, 그 결론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지지부진하고 스스로를 미워하게 만드는 일 투성이었다. 그래서 사실은 회사에서 나가라고 하기 전에, 스스로 완전히 길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일에 대한 나름의 안목과 철학을 만들어가던 30대 초반에 나는 사회에서 많은 새로운 친구들을 만났다. 사람들은 사회생활에서 친구를 사귀기 어렵다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기브 앤 테이크 관계를 이어가려는 억지 노력만 하지 않는다면 나와 결이 비슷한 사람들과 소소한 관계를 계속 이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30대 중반의 나이가 되었을 때, 정말로 일과 삶의 결이 비슷한 친구들이 내 곁에 남아 있었다.
전 직장을 마무리할 무렵, 나는 '번아웃'을 진단받았다. 내가 생각했던 번아웃은 엄청난 스트레스에 휩싸여 화를 참지 못해 괴성을 지르고 굉장히 신경질 적인 사람이 되는 것에 가까웠는데, 실제로 진단받은 번아웃은 정상적인 레벨보다 스트레스 지수가 현저히 낮고, 위험 요소를 일반인처럼 감지하지 못해 스스로를 더 골로 빠뜨리는 자가 면역 질환에 가까운 것이었다. 기쁨도 슬픔도 오늘도 내일도 그저 그렇고 그냥 무덤덤한. 큰 감정 없이 지나가는 나날들이 그저 익숙함인 줄 알았는데. 내 삶을 더 힘들게 하고 있었다니.
30대를 불꽃처럼 보낸 나의 친구들도, 다들 조금씩은 지쳐 보였다. 사이드 프로젝트 같은 것들을 해내면서 에너지를 우르르 쾅쾅 끌어 모으는 느낌보다는 에너지를 적금처럼 모으고 쓰는 느낌에 가까웠다. 에너지를 절제해 가며 한 면을 펼칠 때는 다른 면을 조심히 접어보기도 하고, 향후의 에너지를 위해 지금의 에너지를 아끼며 모습을 잠시 감추기도 했다. 나처럼 대기업의 틀을 뛰쳐나와, 스타트업씬이나 프리랜서 씬으로 삶의 장면을 옮긴 사람들. 자신의 역할을 더 또렷하게 하고, 더 많은 일을 하고, 자신의 삶을 일 중심으로 재정비한 사람들. 일을 통해 삶의 기쁨을 얻었고, 그것이 삶과 깨끗하게 자른 듯 분리될 수는 없다고 믿는 부류의 사람들이었다.
우리들의 30대 중반은 비슷한 고민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예전에는 또렷하게 있었던 옳고 그름이 또렷해지지 않는 것을 느꼈다.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는 상황 속에서 내가 좋아서 미친 사람처럼 하던 일 안에서 뭔가 힘든데 딱히 탓할 것도 없고. 우리는 마음의 부침을 느꼈다.
갑자기 느껴진 마음의 부침을 우리는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몰랐다. 이렇게 일하고 사는 게 맞다고 생각했고,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학교 나와서 남들이 좋다고 믿는 직장도 경험하고, 내가 좋아하는 일도 찾게 되었는데, 잠을 줄이고 목표 달성에 미쳐서 살아온 나날들이 결과적으로 이런 마음의 부침을 만들어냈다고 이제와 새삼 느껴지게 된 거다. 우리가 삶의 이치를 다 알지는 못하지만, 부침이 있음에도 그저 속없이 풍덩 뛰어들 만큼은 아닐 정도로는 또 세상을 알아버린 후였다. 미친 듯 달려온 커리어 속에서 마침내 '내려놓음'과 '쉼'이라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해 볼 때가 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퇴사한 직장 동료가 내 친구가 쓴 책 '우리는 아직도 무엇이든 될 수 있다'의 문구를 인용한 피드를 올렸을 때, 나는 이게 정말로 나만이 겪고 있는 일이 아님을, '열심히 살아온 우리들 모두가 비슷한 시기에 영점 조절을 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며 오히려 가슴을 쓸어내렸다.
5-6월은 캠핑을 가기 좋은 계절이다. 여기에서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버리면 너무 더워버려서 캠핑이 고행이 된다. 작년부터 내가 야금야금 다니던 캠핑을 흠모하던 나와 결이 비슷한 친구가 있었다. 작년 가을 내내, 꼭 캠핑을 가자고 하다가 이내 겨울이 와 버렸고, 미루고 미루었던 캠핑이 마침내 성사되었다.
이 캠핑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 우리의 대해 이야기를 해 보자면, 지금으로 부터 약 4-5년 전 우리가 비슷한 일을 각자의 회사에서 하고 있을 때, 지금은 우리 모두 연락을 잘하지 않는 제3의 인물이 '둘이 할 이야기가 많을 것 같아서' 우리 둘을 소개해 준 게 이 만남의 시작이었다. 우리는 같은 회사에 다니지도 않았고, 약간 비슷한 일을 하고 있을 뿐이었는데. 결국은 일에 대한 비슷한 안목과 결을 가진 사람으로 서로의 곁에 남았다. 한 때는 각각 임팩트 사업을 만들며 우리의 귀여운 노동이 세상을 바꾸길 무척이나 안달 내고 있었는데, 세상이 바뀌지 않아서 일까? 아니면 우리가 너무 안달을 냈던 걸까? 아니면 우리의 노동이 너무 깜찍했던 탓일까? 둘 다 적당한 영점 조절을 필요성을 느껴왔고, 친구는 1년의 갭이어를 가진 후 안정적인 일을 하고 있는 상태였고, 나는 폭풍 같은 시간을 보낸 후 퇴사를 또한 결정하게 된 상태였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라는 물음에 나는 미주알고주알 그간의 모든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그저 잠시 쉬어가고 싶은 마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나는 단 한 번도 내가 일을 그만하고 싶을 거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이런 날도 나에게 오더라. 나는 정신력이 약한 사람들이나 계속 일하기 싫다고 중얼거리는 줄 알았는데... 이런 생각도 이제야 들었지만, 10억만 현금으로 가지고 있었으면 그냥 편안하게 당분간 일을 안 하고 싶을 것 같아."
친구의 갭이어 기간 동안, 우리가 매일 연락했던 건 아니었다. 다른 친구들이 갭이어를 가질 때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일을 좋아했고 잘했던 친구들이었고, 저마다의 사정이 있을 테고, 쉬고 싶을 때는 그 마음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우리가 일을 할 때는 얼마나 치열하고, 목표를 이루는 것에 얼마나 몰두하는 지를 잘 알았기 때문에, 어떤 휴식이든 그만한 가치가 있을 거라 생각해왔을 뿐이다. 오죽하면 하이 텐션의 우리가 자주 불평불만하던 말 중 하나가 "아니, 다들 왜 그러는 거야? 일 안 할 거야?"라는 추임새였을까.
성취보다는 쉼이 더 중요한 토픽이었던 그날의 대화에서 또한 "아니, 일 안 할 거야?"라는 말은 수도 없이 등장했다. 낮에 한가롭게 계곡에서 노숙자처럼 누워 시간을 보내다가, 또 꼬물꼬물 텐트에 기어 들어가 낮잠을 한 숨 청했다가도, 지나간 시간에 대한 넋두리를 하면 추임새처럼 서로의 이야기에 "아니, 일 안 할 거야?"라는 말을 추임새로 붙여주었다. 이게 바로 우리 둘을 관통하는 키워드였다.
'일 잘하고 싶다!'
내가 지금 잠시 멈추려는 것도, 그리고 친구가 쉬어 가던 마음속에도, 우리는 예상치 못하게(하지만 우리 빼곤 다 알았던) 마음의 부침을 달래고, 결과적으로 일을 더 오랫동안 하기 위한 거였구나. 약간은 씁쓸하지만, 우린 정말 일 좋아하는구나...
우리는 이 날 가장 늦은 시간까지 화롯불을 태우고, 친구가 퇴사를 축하해 주기 위해 가져온 샴페인 한 병을 바구니의 얼음이 다 녹을 때까지 마셨다. 간간히 마시멜로도 구워 먹었고, 쫀득이랑 찹쌀떡도 구워 먹으면서 낮의 후덥덥한 기운이 모두 사라져 버린 찬 공기와 촉촉한 대화를 오랜 시간 동안 즐겼다.
결국 비슷한 결을 가진 친구가 곁에 남아 위로가 된다.
다시 도시로 돌아오면서 친구가 물었다. "야, 마흔 살이 되면 우리는 도대체 뭘 하고 있을까?" 나는 대답했다. 너랑 내가 이대로 늙으면 마흔이니까. 아마 똑같지 않겠냐고. 내 생각에 우리는 5년 뒤에도 일을 좋아하고, 때로는 일에 상처받고, 서로의 다정한 마음과 열정에 위안을 받고 있을 것 같았다.
마음의 부침이 절정에 올라간 시점들이 우리네 인생에 모두 같은 날은 아닐 거다. 우리의 인생은 서로 다른 속도로 다른 곡선을 그리며 나아가니까. 그런 날은 저마다 다르게 오겠지만, 서로 간 대화할 준비가 안 되었을 때는 물러나 기다리면서 서로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지 않되 서로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 사랑과 우정임을 또한 배워간다.
내 인생과 일을 사랑하는 방법도 정해진 것이 아니었구나. 좋은 학교 나와 좋은 직장 취직하고, 세상을 바꾸는 일에 나 자신을 풍덩 던지며 고연봉을 받고 성과를 인정받는 공식이 처음으로 당연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친구에게 내가 최근에 스페인어를 배우기 시작한 이유를 이야기했다. 사실 처음 스페인어를 배우려 했을 때는 나의 커리어 생활에 마음의 부침이 40대 중반쯤에 크게 오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물론, 40대 중반 보다도 더 이른 시기에 이것보다도 더 큰 놈이 올 가능성이 매우 크지만, 스페인어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6개월 안에 퇴사를 하게 되리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하지만, 스페인어 공부는 나에게 다음의 마음의 부침이 있을 때, 내가 여기서 더 나아가야 할까? 아니면 재정비를 위해 쉬어갈까? 고민하는 순간에, 더 나아가고 많은 걸 성취하고 싶은 마음을 진정시키고, 쉴 수 있는 용기와 이유를 줄 것이 분명하다. 스페인어를 써야 할 이유도 삶에 한 번은 찾아야 하니까.
여행이란 희망은, 그리고 결이 비슷한 친구의 존재는, 다가올 몸과 정신의 겨울을 한번 더 버텨낼 이유와 정말 힘에 부쳐 당장 멈추고 싶은 생각으로 질식할 것 같을 때에 하고 있던 일을 한 라운드 더 시도해보고 싶게 만드는 자신감의 기억과 든든한 백업이다.
그리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 뮤직 스테이션에서 AJR의 the good part가 흘러나왔다. 지금 내가 최선을 다해서 지친 것인지, 부족해서 나가떨어지는 것인지, 내 인생의 이 장면이 해피 엔딩이나 새드 엔딩인지 알지도 못할 때, 그냥 The Good Part로 건너뛰면 안 되겠냐... 는 가사는 나중에 알았지만. 아직 오지 않은 40대를 생각하는... '일을 좋아하지만, 일에 지쳐 본 적 있는 사람'들을 위한 최고의 선곡이 아니었나 싶다.
겨울은 분명히 또 온다. 그리고 다음 겨울엔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다.
남미를 여행할 때가 왔다고 여기면 그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