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고재비 Feb 21. 2018

자발적 주 6일 근무자

5일은 현재의 생계를 위해, 1일은 온전히 '나의 일'을 위해



저는 주말 중 하루를 ‘아무 곳에나’ ‘내가 원할 때’ 출근해서 8시간 동안 일을 합니다.

새해 들어서 만나는 친구들에게 저희 근황을 들려주면, 돌아오는 대답은 "아니...왜? 그 회사 왜 그래? 주말에는 푹 쉬어야지."라는 말입니다.


솔직히 조금 피곤하긴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회사를 탓할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저는 자발적 주 6일 근무자이고, 주말 중 하루를 쏟아서 내가 하는 일들은 회사가 아닌, 내가 나를 고용해서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왜 하루를 더 일하고 있을까요?


하지만 사실 눈 앞에 당장 이득이 되는 뚜렷한 소득은 없습니다. 차라리 그 시간에 편의점에 가서 일을 했다면 한달에 한 20 만원 정도는 더 벌 수도 있었을텐데요.



그럼에도 회사와 무관한 나의 일을 가져야 하는 이유


입사하고 저는 참 많은 조직적인 변동을 겪었습니다. 회사 친구와 퇴근 후 거나하게 술 한잔 하면서 허풍 보태어서 하는 자주 말이 있는데, "내가 겪은 팀장만 10명이야." 라는 말입니다.


솔직히 매우 과장된 수치에요.


하지만 정말로 과장이 아닌 것은, 상당한 조직 변동과 사업적인 변동을 겪었다는 거에요. 그러면서 많은 사람들이 실망하거나 마음이 다치거나, 이상하게 변해가는 걸 봐야만 했죠. 마음이 지쳐가는 와중에 제가 느꼈던 단 한가지는 사람은 상황을 이용할 수도 있지만 상황을 못 이길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저는 제게 주어진 상황을 못 이기면 안 되었어요. 저는 상황을 이용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생각과 관점을 바꿨습니다.


직장에 내가 매어 있다는 것과 같은 말은 '내 직장이 안정적이고, 나는 항상 어딘가에 쓸모가 있다'는 말입니다. 속절없이 시간은 잘 가고 있다는 것은 '가만히 있어도 내 경력은 (적어도 대외적으로는) 쌓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들을 이용해야만 했어요.


그래서 제 스스로를 전문성으로 승부하는 프리랜서라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이 훨씬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회사에서 무언가 인정을 받지 못하던 느낌, 나의 소중한 일들과 프로젝트가 상황에 따라 엎어지기도 비난받기도 하는 상황을 뛰어 넘어서 회사 자체를 하나의 '프로젝트'나 '거래처'로 생각하기로 한 것입니다. 직장인이 된 후로 하나씩 사라져가던 자신감들이 다시 돌아오는 느낌이었어요. 그리고 저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 사실을 알려야 했습니다. 바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라는 것입니다.




스스로를 프리랜서라고 생각하면서 사는 것은 여러모로 유익했습니다


1. 가장 안정된 일감 중 하나인 '회사'에 다니는 것이 감사해진다.


    '나는 프리랜서인데, 이렇게나 안정적인 일감이 있다니, 행운이다!'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의 직장이 약간 사랑스러워 졌어요. 주말에 회사 사옥 앞으로 지나갈 일만 생겨도 '아 내가 왜 또 이 곳에'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제 사옥을 보면 뿌듯하고 든든한 마음이 들었어요. 아침에 현관문을 나서면서 '아 출근하기 싫다'는 생각이 아니라 '오, 돈 벌러 갔다오자'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어쨋거나 저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돈이라는 건 반드시 필요한 것이거든요.


2. 고용의 안정과 관련된, 쓸데없는 염려에서 조금은 자유로워 진 것 같다.


    회사 루머의 99%는 '지위 불안'에 시달리는 누군가가 만들어 낸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한 때는 그런 이야기에 쫑긋 귀를 기울이면서 쓸데없이 심력을 낭비했어요. 지금은 그런 이야기들을 궁금해하지도 않고, 회사 안의 가득한 '불행'을 이야기하느라 우울할 일도 사라졌습니다.


3. 나는 더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믿게 되었다.


  저는 겸손한 편이 절대 아닌데도(겸손은 거의 저의 반대말이죠), 회사에 다니면서는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사실 큰 조직에서는 권한보다는 책임이 많은 것이 보통이잖아요. 프리랜서라고 생각하니, 내가 관심을 가져야 할 영역이 더 많다고 느껴졌고, 해내야 할 일이 많아졌어요. 그리고 도전을 하다보니, 생각보다 제가 평균 이상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4. 그럼에도 한 방향으로 전문성을 쌓아가는 것이 결국 모든 것의 해법이 될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네, 바로 이 지점이었습니다. 만약에 제가 정말로 프리랜서라면, 저는 결국 저의 '전문성'으로 승부를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저의 결론이었죠.


'전문성'은 저의 지식적인 측면, 직장 생활 경력, 프로젝트 경험, 그 외 저술 활동이나 자발적인 대외 활동으로 쌓아올릴 수 있고, 또 그렇게 증명해 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회사에서 제가 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당장 '은퇴작'이 되더라도 어디에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완결성 있고 아름다운 결론을 맺어야 했어요. 회사에서 사용(활용)하지 못한 지식이나 정보들도 그대로 흘려서는 안 되고 축적해야만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프리랜서에게 하루는 월급날 D-N으로 깎아먹는 하루가 아닌, 늘 동일한 기회의 하루였던 거에요.



저는 일주일 중 하루씩 저술 활동과 자발적인 대외 활동을 위해
저 만의 일터로 '출근'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자발적 출근의 규칙


일을 시작하고 싶을 때에 일을 시작할 수 있다.


금요일 밤에 술 약속이 있으면, 토요일은 늘어지게 쉬고 일요일에 출근을 하기로 마음 먹습니다. 출근을 하기만 하면 됩니다. 일요일에 약속이 잡히면 '그래 일요일은 놀자'라고 생각하고 모든 일정을 일요일로 몰아버립니다. 토, 일 어쩔수 없는 사정이 생겨서 둘 다 외출을 하게 되면 하루에 4시간씩 쪼개서 일을 하고 주말 안에 8시간을 채웁니다. 대외 활동은 친목의 성격이 약간 섞여있긴 하지만, 모임 시간 만큼을 일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술 마신 시간은 포함하지 않아요)


부지런하게 몸이 움직여지는 날은 오전에 산책을 하고 점심을 만들어 먹은 후, 늦은 시간까지 느긋하게 일을 합니다. 그렇지 않은 날은 그냥 일어나지는 대로 찌뿌등한 몸을 끌고 노트북 앞에 앉기도 하고요. 회사에서의 8시간 근무는 외부의 방해와 회의 등으로 실제로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지만, 혼자서 일할 수 있는 8시간은 상당한 결과물을 낼 수 있는 시간입니다. 너무 타이트하게 스스로 몰아 세우기 보다는, 커피 한 잔도 하고 콧 노래를 부르면서 느긋하게 일을 하되, 목표한 시간은 무조건 채웁니다. (사실 어떻게 일을 해도 퇴근 시간이 기다려지는 것은 마찬가지이긴 했어요)


일을 하고 싶은 장소에서 일을 해도 좋다.


제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일터는, 저의 마음이 가장 편안해지고 자유로운 공간이에요.


 방에서 일하는 것을 어려워 하시는 분도 많고, 늘어질 때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저 같은 경우는 원래도 집을 너무나 사랑했고, 집에서 일하면 씻고 꾸미는 데 드는 시간을 상당히 줄일 수가 있기 때문에 집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개인적으로 집에서 일을 할 때는 인공지능 스피커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도저히 행동으로 실현하기 힘들었던 'TV 끄기'를 말 한 마디로 실현할 수 있었거든요. 일하기 싫을 때는 일단 TV를 끄고 나면, 15분 내에 일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은은하게 흐르는 Jazz나 클래식 음악의 도움을 약간 받는 것이죠.


 자발적 출근일들에 해야 할 일(장기 목표) 결과물(단기 목표) 은 스프레드시트로 엄격하게 관리 한다


제가 자발적 출근일들에 해야 할 일은 금년에 완수해야 할 대형 프로젝트 2,3개와 일자가 박힌 결과물로 관리되고 있습니다. Brunch와 같은 곳에서 글을 쓰는 것도, 컴퓨터에 저장되는 파일도 향후 어디에 어떻게 쓰일 것인지 구글 스프레드시트로 관리되고 있죠. 자발적 프리랜서가 되어야겠다는 마음을 바꾼 뒤에는 창조력을 높아주는 Creative Tool의 실질적인 도움도 많이 받게 되었습니다. 회사에서도 업무를 하다가 자발적 출근일에 해야 할 것들로 예상되는 일들은 놓치지 않고 에버노트와 같은 앱에 기록하거나 스프레드시트에 업데이트를 해 두고, 나중에 리스트를 보면서 일정을 다시 조정하거나 일의 우선순위를 조정하는 방식입니다.

 

 스프레드 시트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항목으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 내가 지금 하는일의 목표 (개인적인 목표가 아니라, 성취해야 하는 일을 '강령'의 형태로 표현)

   : ex) 에듀테크를 통해 학습/teaching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콘텐츠를 생산한다

-  목표 일정 (일주일 2번 수요일과 일요일 단위로 자발적 출근일의 업무 결과물을 수행 여부, 결과물의 퀄리티 등을 체크하고 있습니다)

-  실제 결과물 (URL)과 이 결과물들은 꾸준히 관리하기 위한 지표들

 - 결과물의 향후 재활용 방법  


스프레드 시트에는 기록되지 않지만, 꾸준한 결과물을 내기 위해 새로이 계속 정복해야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 마음처럼 진도가 빨리 나가지는 않지만 컴퓨터공학(새로운 분야) 관련 계속 공부하고 있는 것들

 - 지표/ 방향 설정을 위해 읽어야 하는 최신의 책들, 그리고 오디오클립 '책걸상'에서 추천해주는 책 리스트

 - 글을 잘 쓰는 방법


많은 일을 하지 못한 것으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일주일에 하루로 할 수 있는 일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여전히 저의 최대 고용주인 회사의 일에 꾸준하게 치이기도 하고요. 내가 내 일을 하기로 다짐했다고 해서, 다른 한 쪽의 일이 줄지는 않으니까요. 하지만 회사 역시 저의 전문성을 쌓아가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수단입니다. 회사의 일에 치였다고 해서, 내 계획을 이루지 못한 것으로 단정하고 낙담할 필요는 없어요. 우리는 회사의 경력도 이용하고 다듬어 나가야만 합니다.



더 행복하고, 더 성공하기 위해 관점을 바꾸세요.
관리하고, 하고픈 것을 밀고 나가세요.







** 사족) 사실 저는 이제 직장 5년차 풋내기에요. 누군가에게 커리어적으로나 업무적으로 어드바이스를 줄 수 있을만한 상황은 아니에요. 그리고 주말에 하루 정도 일을 더 한다고 해서 '나는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이라네~'하고 어디서 떠들만한 상황도 아닙니다. 제 주변에서 회사/ 스타트업을 경영하시는 분들, 콘텐츠를 만들어내시는 분들이나 변호사나 변리사 같은 전문직(심지어 이들은 시험도 통과했는데...!)들 주당 80시간이며 100시간씩 일을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워크라이프밸런스 (a.k.a. 워라밸)는 그들에게는 그냥 '일일일' 이었는데, 그들이 매우 기운차게 일을 하는 것을 보고 '일을 바라보는 관점'과 '결과의 축적 여부'가 나와는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관점을 바꿨습니다. 더 행복하고, 더 성공하려고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