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men Who Code Seoul의 미션을 준비하는 사람들
점심 시간에도 4명 이상이 함께 밥 먹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저는 아무거나 다 괜찮아요'라며 서로 예의를 차리면서 식당을 찾아 배회하는 것이 불편했습니다. 그냥 아무 메뉴나 골라잡아도 미안하지 않을 만큼 친한 동료 2명 또는 3명. 그 이상은 그냥 저에겐 힘들었어요. 뛰쳐나가서 혼자 밥을 먹고 싶은 정도는 아니지만, 2-3일 연속으로 떼지어 점심을 먹으면 많이 피곤해 했어요.
사실 어디다 데려놔도 처음보는 사람에게 말을 걸 수 있고, 잘 모르는 주제로 오고가는 대화 속에 던져 놓아도 중간은 할 수 있습니다. 분명히 쾌활함은 타고 난 것 같아요. 하지만 사람들과 말하는 것이 달리기라면 전 아마 단거리 선수일 거에요. 짧은 시간 힘껏 쾌활한 것은 자신있지만 오랜 시간 사람들과 이야기 하는 일은 저에겐 지구력이 필요한 일이었어요. 그냥 생각이 어느 정도 쏟아내는 것은 좋았지만, 많은 사람들과 오래 이야기하는 것은 '꼭 필요할 때'만 하고 싶었던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바람이 불어서였던지, 저는 스스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를 자청했습니다. 사춘기 이후로는 미화반장도 마다하던 자발적 아웃사이더 였었고, 남들에게 인기 얻고 싶은 생각도 없어서 그저 하고 싶은 말 하고 사는 제가 말이에요.
계기는 아주 사소했습니다. 우연한 계기로 브릴리언트한 소녀 개발자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소녀 개발자들이 소년 개발자들과 다른 꿈을 꾸고 산다는 걸 깨닫게 된 것이었어요. 우주를 새로 만들 것 같은 기세를 가진 소년 개발자들과 달리 소녀 개발자들은 자신없어 하고, 무엇을 만들어내고 싶은지에 대해 쭈뼛쭈뼛 거렸어요. 왜 그럴까 곰곰히 생각해보니 IT 분야에서 여성 멘토조차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신규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기술 멘토를 찾아가면 예외없이 남성분이었던 거죠. 뭔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날 저와 같이 소녀 개발자들을 만났던 사람들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사실 저희는 각자 일을 하던 사람들인데, 거기서 현업 멘토로 우연히 섭외되어 만났던 거였거든요. 서로 경력도 다르고, 주력 분야도 달랐고, 심지어 전 개발자는 아니었지만, 소녀 개발자들이 실력에 비해 위축되어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그 친구들은 정말 실력자였었거든요.
3명으로 시작한 방구석 모임이었어요. 우리가 나중에 퇴직을 하게 된다면, 이런 일을 해 보면 어떨까? 세미나라도 자주 하면 사람들이 많이 올 것 같은데... 뭐 이런 이야기 하면서 거실에 모여서 치킨 시켜 먹고... 그랬었죠.
그러다가, Women Who Code 라는 글로벌 네트워크에 지원 해볼까? 라는 이상한 생각을 하게 됬습니다. 이상한 생각이기도 했던 것이 우린 아무런 멤버도 없는 3명의... 그냥 3명 이었어요. 근데 Women Who Code는 실리콘밸리의 주요 기업들이 후원하는... 20개국 14만명 회원이 있는 네트워크 였거든요. 아무개인 우리가 서울 챕터를 운영해보고 싶다고 메일을 보내고, 그냥 잊어버렸습니다.
그리고 3개월 뒤에 갑자기 답 메일을 받게 되었죠. 서울 네트워크를 운영해 볼 수 있겠느냐고.
가진 건 마음 밖에 없는 상태에서 그렇게 배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글로벌 네트워크의 한 챕터가 되기 위해 함께 커뮤니티를 만들어 나갈 리더 그룹을 모집하고 데뷔 무대를 찾아 나섰습니다. Pycon KR 2018을 무대로 생각한 뒤에는 날짜에 맞게 굿즈도 만들고 부스 운영도 계획하고, 지금 생각해보니... 함께 해주신 분들이 모두 천사였던 것 같아요. 이게 어떻게 다 가능했던 건지...사실 7월 부터는 모든 사건들이 기억이 드문드문합니다. 정신이 없었거든요. 8월 말에 Pycon을 마무리한 후에는 오랫동안 쉬고 싶기도 했습니다. 5월에 시작됬던 커뮤니티 모임이 8월에 데뷔를 해버렸고, 그 사이엔 데뷔할 규모를 만들기 위해서 '성장'에 많이 집중했습니다.
급히 뛰어오른 배 안에서는 준비안 된 생필품이 너무 많았고요. 위기의 순간들을 얼마나 잘 헤쳐나갔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아직도 정신을 차리는 중이고. 여전히 천사같은 분들이 함께 하고 계시고요. 하지만 많은 것들을, 혼자서 절대 해보지 않았을 많을 것들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마음만 가지고 시작했던 커뮤니티에 함께 하기로 하신 분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는 든든한 체력과 앞으로 우리를 움직이게 할 신뢰, 미션, 체계가 필요했습니다.
우리의 미션은 무엇이어야 할까? Women Who Code Seoul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행동 강령과 서로에 대한 약속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 우리는 이 커뮤니티를 통해 각자 무엇을 이루고 싶을까?
리더십에 시간을 할애했던 분들과 미션을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박애주의와 선한 마음만으로 커뮤니티가 돌아갈 수 없기에, 우리는 커뮤니티 안에서 서로의 성장을 돕고, 무엇보다도 자신이 성장해야 하기에, 서로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이 곳에 오게 되었는지 꼭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어요.
이제까지 Women Who Code에 대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자랑하느라 막상 구성원의 속내는 깊게 듣지 못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각자의 기대치가 다르면, 같이 달려도 다른 방향으로 달릴 수도 있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9월달은 월례회를 한 번 쉬고, 운영진 워크숍을 진행했습니다.
9월 첫 번째로 진행된 운영진 워크숍의 모습을 공유합니다. 멋진 사진은 @호두(@__byeolbit__)님이 찍어 주셨어요. 장소는 스페이스클라우드에서 협찬받아 성수동의 '어플랫스튜디오'를 방문했습니다.
운영진 워크샵은 사실 별 것 없었어요. 와인도 한 잔하고,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어요. 질문 카드를 뽑아서 질문에 대한 답을 하다보니, 한 명의 인간으로서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나누게 되더라고요. 공간이 예뻐서 그런지 사소한 취향에서부터 최근의 여행 이야기, 앞으로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술술술 이야기가 풀렸고, 운영진으로써 이 곳에 참여함으로써 얻고 싶은 것들, 그리고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열심히 적어가면서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 갔습니다.
개인적으론, 커뮤니티 운영을 하면서 각자가 '실익'을 얻어가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운영진 뿐만 아니라 참여하는 구성원들에게도요. 그래야 더 건강하게 이 커뮤니티를 운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위해 함께 뜻을 모으기로 한지에 대해서도 오랫동안, 깊게, 고민하고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포스트잇에 붙여서 나눴던 이야기들은 앞으로도 비전 스터디를 통해 계속 고민을 이어나갈 예정이에요.
사실 모두 다 처음 해 보는 일이에요. 저 역시 라이트닝토크를 한다던가, 모각코를 해 본다거나... 이전에 해 본적도 없고 또 혼자서는 하지 못할 일들이었어요. 강제로라도 주어지는 책임감에 어찌되었건 이끌어 나가는 일들이 저를 성장시키고 있음을 점점 깨닫게 됩니다. 밤을 세워가며 미션을 이야기하는 일도 생애 처음 해 보는 일이었습니다. 몹시 피곤했지만 기분은 매우 상쾌했어요.
참여하시는 모든 분들이 성장해 나갔으면 좋겠어요. 때론 어떻게해야 더 좋을지 걱정되고 체력이 모자랄 때도 있습니다만, 저 역시 계속 성장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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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men Who Code의 운영진 워크샵이 궁금하셨을 분들을 위해 짧은 후기 남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