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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ott Im Dec 16. 2018

한글 디자인 배우기 #1

조합형 기초반

지난 1년간의 기록을 나누어 쓰려고 합니다.


2017년 12월. 계획


뜬금없고 극단적인 생각이지만 1년 뒤에 죽는다면 남은 기간 동안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해봤다. 사람은 남은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할 때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것을 찾고 더 현재에 충실하게 된다는 얘길 들었기 때문이다.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라는 책도 크게 한몫했다.



'하고 싶은 게 없다'는 죄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그런 아이가 있었다. 뭔가를 아주 잘하는 것도, 그렇다고 아주 못하는 것도 아니면서 아무런 의욕도 없는 그런 아이. 그게 나였다. 평범해도 그렇게 평범할 수가 없었다. 나는 어릴 때 피아노도 치고 수영도 하고 주산도 배웠다. 하지만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라 남들이 다 하니까 그냥 따라 했던 것뿐이다. 물론 그런 배움을 통해서 잠재되어 있던 재능을 발휘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지만, 나에겐 그런 싹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재능이란 ‘잘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것’을 뜻하니까. -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중에서


나도 어렵고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버리고 대학교 때 로망이었던 한글 폰트 만들기로 결정했다. 이천 오백자 정도만 그려도 된다는 사실과 한글 디자인 교육을 하는 곳을 찾은 것이 큰 이유였다. 그때에는 배울 사람도 없고 혼자 재미 삼아 그리다가 1만 자를 그러야 된다는 압박에 아이디어 스케치만 하다가 포기했었다.


한글 타이포그라피 학교 [1]

조합식 한글 디자인 기초 : 폰트 제작 프로그램 익히기, 간단한 형태의 조합식 한글 폰트 제작

활자 디자인 1 - 기획 : 유용한 한글 활자 제작 기획, 완성형 한글 30자 그리기 목표

활자 디자인 2 - 이론과 실제 (100자) : 이론을 학습하는 과정에서 한글 100자 내외 디자인


여러 강의 중 이 세 가지가 눈에 들어왔는데, 아무래도 툴도 배워야 하고 기초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기 때문에 [조합식 한글 디자인 기초]를 선택했다.


2018년 1월. 수업 시작

사진은 잘렸지만 6주의 일정이다.  

첫 수업 스케치


첫 시간은 첫 닿자 다섯 개를 주어진 그리드 노트에 아이디어 스케치를 하는 시간이었다. 뻔한 스케치만 쏟아져 나왔지만 오랜만에 하는 거라 재미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아이디어 스케치 중 하나를 고르고 나면 조합 규칙을 정하고 모임꼴 활자를 스케치하며 Fontlab 5의 사용법을 배운다. - 요즘은 Glyphs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먼저 조합 규칙을 설정한다. ‘몸, 묨, 뭄, 믐, 뮴’이 같은 11번으로 되어있는 건 이 모임은 같은 ‘ㅁ’ 첫 닿자를 사용하겠다는 의미다. ‘맘, 먐, 멤... 몜’은 같은 ‘ㅁ’ 받침을 사용하겠다는 표시다.


모임꼴을 스케치 하며 조합 규칙을 적용해본다.


조합 규칙이 결정되면 단어를 스케치한다. 완성도로 스트레스를 받지만 어차피 배움의 첫 단계인 기초반이고 프로세스 경험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


드디어 스케치를 Fontlab에 올려본다. 정해진 규칙대로 선생님이 파일을 세팅해주시는데, 세로 모임꼴 '몸'의 첫 닿자 'ㅁ'을 받침에 상관없이 같은 'ㅁ'을 사용하기로 했다면 하나만 그려도 '목몬몯몰.... 뫃'의 첫 닿자가 채워지는 방식이다. 경제성 면에서는 굉장히 탁월하다.


출력을 해보면서 수정을 하는 과정이다. 계속 닿자와 홀자를 채우다 보면 금세 문장이 완성된다. 조합형의 매력인 것 같다.


이런 과정으로 6주의 수업 과정이 진행된다. 6주 동안 열심히 한 사람은 이천 오백자를 다 그렸다고 하는데 나는 계속된 방향 수정 때문에 완성은 못했다. 완성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2018년 2월 : 수업 끝


수업 결과물


이렇게 기초반 수업이 끝났다.


부담 없이 배우기에는 적절한 수업이다.


이 수업은 활자의 심미적인 완성도가 중심이 아니라 과정을 경험해보고 배우는 것 같았다. 마지막 소감으로 선생님께 획 하나하나를 그리는데 판단이 너무 어려웠다는 말을 했다. 선생님은 우리가 활자를 기획부터 방향을 정해놓고 시작한 게 아니라서 그런 부분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셨다. 그런 것까지 고민하기에 시간이 부족하고 굉장한 스트레스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디에 내놓을 만한 결과물을 만드는 것은 힘들지만 입문과정으로서 굉장히 도움이 되는 수업이었다. 부담 없이 배우기에 적절한 수업인 것 같다.


수업은 끝났지만 개인적으로 작업은 계속 진행 중이다. 방향은 많이 변경됐다.

꽉찬 네모꼴이고 조합 규칙을 완성형에 가깝게 변경했다. ‘고’의 ‘ㅗ’와 ‘도’의 ‘ㅗ’는 첫 닿자의 모양에 맞춰야 안정감이 생기고. ‘거’의 ‘ㅓ’도 ‘너’의 ‘ㅓ’와 같게 그리면서 균형을 잡기는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이건 조합형 글꼴의 한계다.


이렇게 벌수를 늘리다보니 작업 속도가 매우 느려졌다.

언젠가 완성하겠지...


사실 Fontlab 6로 전환하면서 조합형 세팅이 다 깨져 새로 수동으로 만들다 지치키도 했지만, 다소 진부한 방향이기도 해서 보류 중이다. - 지금은 다른 컨셉 스케치가 또 생겼다. [2]


조합형이지만 직접 만들다 보니 그 고됨을 조금이나마 체험하게 됐다. 그리고 활자 디자이너들의 노력과 노고에 존경심이 생겼다. 그리고 바로 완성형에 도전하기로 했다.



2018년 5월. 완성형 활자디자인 1 - 기획 수업 시작


다음 글에 계속


언젠가 쓰겠지...






[1] 한글타이포그라피 학교 http://www.typoschool.com  

[2] 여러 작업들을 디자인 계정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있습니다. https://www.instagram.com/frozensound.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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