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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ott Im Dec 03. 2019

마루 프로젝트에 대한 푸념

네이버는 무료폰트 배포를 중단해야 한다



2018 네이버 콜로키움에서 안상수 총괄 디렉터가 프로젝트의 시작을 알렸다. 업계 레전드가 만들어내는 화면용 글꼴은 어떨지 궁금했기에 기대가 됐다. 그러나 이번 발표는 기대보다 걱정을 더 앞서게 만들었다.



거인이 해를 가리고 서있는 기분


나는 디지털 프러덕트 디자이너이자 아마추어 독립 활자 디자이너다. 현재 회사를 그만두고 모바일 환경을 고려한 본문 활자를 만들고 있다. 그리고 네이버와 안상수 총괄 디렉터가 화면용 글꼴을 만들고 있다. 마루 프로젝트는 어떤 길을 가고 있는데 갑자기 거인이 앞에 서서 해를 가리고 있는 느낌이었다. 나는 이제 막 시작한 아마추어고 그들은 업계 최고의 프로다.


내가 진짜 걱정스러워했던 점은 2021년에 무료로 배포된다는 것이다. 여러분은 사용자의 입장에서 환호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사용자일 뿐이라면 그랬을 것이다. 단지 여러분이 어떤 물건을 만들어 판매를 하려고 하는데, 대기업이 그 물건을 무료로 풀어버린다면 어떤 느낌이 들지 상상해보길 바랄 뿐이다.



폰트만 팔아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


현재 많은 독립 활자 디자이너들의 현실이다. 최근에는 <텀블벅> 같은 후원을 통해 글자를 그리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그 모금 금액은 일반적으로 5~8백만 원 정도가 후원된다. 폰트 하나를 만드는 데는 몇 개월에서 몇 년까지 걸릴 수 있는데, 본문용이라면 최소 1년 이상 걸린다. 이럴 경우 이 디자이너의 연봉은 1천만 원이 못 되는 셈이다. 실감이 조금 되려나?



모두 한글을 찬양한다. 그리고 한글날에 무료 폰트를 배포한다.


언제부턴가 한글날마다 여러 종의 폰트가 무료로 배포된다. 다들 애민정신을 실천한다고 변명할지 모르지만 실상은 기업 마케팅이 목적이다. 세종대왕은 문자 체계를 배포한 것이지 글꼴(디자인)을 배포한 것이 아니다. 이렇게 무료 폰트의 선택지가 많아진다면 폰트를 구매하려는 사람이 줄면 줄었지 늘지는 않을 것이다. 다들 한글을 찬양한다. 그리고 무료 폰트를 찾는다.



한글꼴의 다양성과 폰트 생태계


가끔 쓸만한 한글 폰트가 별로 없다는 불만들도 들린다. 그러나 내 관점에서는 최근 10년 사이에 독립 활자 디자이너 들을 통해 신선한 활자들이 많이 나왔다. 폰트 회사에서는 아무래도 대중성에 기반한 글꼴에 집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다양한 시도에 제약이 있다. 반면에 독립 활자 디자이너들은 그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다. 이렇게 한글꼴의 <다양성>이 확보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어려운 환경에서도 좋은 활자를 만들겠다는 노력의 결실이다. 그리고 무료 폰트들은 그들의 노력을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시도들이 어려워지면 한글꼴의 <다양성>은 줄어들게 될 것이다.



무료 폰트가 가져올 부작용


무료 폰트가 어려운 자영업자나 개인에게 힘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아프리카의 상황을 본다면 더 큰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강대국들은 구호물자를 보내주며 어려운 아프리카 국가들을 돕고 있는데, 원조 이후 아프리카의 삶이 좋아졌을까? 그들의 구호물자는 아프리카의 산업 전반을 붕괴시켰다. 그 이면에는 천연자원 이권 양도라는 반대급부가 있었다. 지금의 기업들은 한글 폰트 산업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대가로 좋은 브랜드 이미지를 얻고있다. 과격한 주장이지만 나는 그렇게 바라보고 있다.



네이버는 무료 폰트 배포를 중단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적으로는 업계 거물이 무료로 배포되는 활자를 개발하는 모습을 좋게 바라보기 어렵다. 특히 무료 폰트 배포에 앞장서고 있는 네이버는 더욱 그렇다. 한글 디자인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겠지만 폰트 시장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조금이라도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만약 그 생태계가 망가지면 한글꼴의 다양성 확보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좋은 유전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유전자 중 환경에 맞는 유전자가 살아남을 뿐이다. 그래서 진화론에서 유전적 다양성은 생존에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 네이버만 거론했지만 배달이 민족이나 다른 기업들도 다르지 않다. 다만 네이버의 영향력이 넘사벽이고 앞으로 18종을 더 제작/배포한다는 기사를 봐서 그랬을 뿐이다.


* 오해를 막기 위해 다시 말하지만 제작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무료 배포가 문제다. <마루 프로젝트>의 의미는 매우 좋으며 개인적으로도 지지하고 있다. 이 글은 푸념일 뿐이다.




뭐가 더 한글 디자인에 도움이 될 지 사실 잘 모르겠다. 단순히 최근 심란한 기분을 달래려 이런 글을 쓰게 됐다. 독립 활자 디자이너같은 존재들도 있다는 걸 알아주길 바랄 뿐이다.


뭐 어쩌겠어. 난 내 활자나 열심히 그려야지.





UX/UI Designer

당분간은 독립 활자 디자이너

소소한 작업 인스타그램 계정 :  frozen_sound.insta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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