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디자인 배우기 #5
단연은 오륜행실도를 바탕으로 만든 세로 쓰기용 본문 활자입니다. 오륜행실도는 굵은 획이 넓게 뻗어 있는 모습이 특징인 글자입니다. 저는 오륜행실도의 곧고 바른 인상을 제가 만들 서체에 담고 싶었고, 그 모습이 마냥 두껍거나 딱딱하기보다는 부드럽고 여유로웠으면 했습니다. 이런 생각과 느낌을 ‘단단하고 연하다’라는 말로 정리해 보았고, 단연은 서체의 인상을 담은 낱말이자 서체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숨]은 휴머니스트 계열 글자체입니다. 휴머니스트에는 손글씨에서 나타나는 기울기나 굵기 변화, 필기구 자체의 특성이 획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숨]은 고요한 공간에서 연필로 눌러쓴 모습을 상상하며 그린 활자입니다. 그래서 붓을 기반으로 한 바탕체에서 찾아볼 수 있는 도드라진 부리의 형태나 굵기 변화가 거의 없고, 돋움체의 기하학적인 획과도 다릅니다. [숨]은 휴머니스트 계열에 속하는 민부리 서체입니다. 저는 [숨]과 같은 활자들이 바탕이나 돋움으로 쉽게 정의 내릴 수 없는 한글의 다른 모습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다양한 모습을 가진 한글 활자가 더 많아졌으면 합니다.
1. 숨 쉬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고요하고 적막한 분위기.
2. 미묘한 온기를 품고 있는 투명한 공기, 숨.
1900년대 초기 한글 신문과 책 등에 널리 쓰였던 매일신보 활자를 쓴 ‘조선어문일보’에서 글자를 집자했습니다. 매일신보 활자는 글자 너비가 넓고 평평하며, 글자의 속공간이 넓어 같은 크기여도 다른 활자체에 비해 더 크게 보입니다. 요즘 쓰이는 신문명조에 글씨의 특징을 더한 듯한 활자라는 점이 인상 깊어 활자로 만들어 보게 됐습니다. 그러나 매일신보체는 제작된 지 100년도 이상이라서, 낱글자마다 통일성이 불안정하고, 글씨의 특징 또한 많고 적음의 차이가 커서 이를 조화롭게 조정하는 일이 어려웠습니다. 푸른솔을 디자인하면서 전체 낱글자의 조화를 유지하기 위해서 손글씨의 특징들을 조금씩 삭제했습니다.
길상은 박경리 작가의 소설 ‹토지›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입니다. 활자를 기획하면서 '무게감 있지만 차갑지 않은' 글자를 그리고 싶었습니다. 활자의 인상을 구체화하는 과정이 어려웠는데, 당시 읽고 있던 소설 ‹토지›에 등장하는 ‘길상’이 제가 만들고 싶은 활자와 비슷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싶은 글자의 모습을 소설 속의 인물과 연결해 활자로 그린다는 점이 흥미로웠고 자연스럽게 활자를 그리는 데에도 막연함이 사라지고 조금씩 구체적인 모습을 그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