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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범준 Oct 30. 2022

나이 들수록 '찐친'이 필요한 이유

월간 공무원연금 8월호 칼럼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친한 친구가 필요하다.” 최근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이 내놓은 기사의 주장입니다. ‘가족보다 친구가 당신을 더 행복하게 만들까?’라는 제목의 이 기사는 148개의 관련 연구를 토대로 친한 친구가 우리의 건강에 매우 큰 영향을 끼친다며, 반드시 ‘찐친’을 가까이 두고 살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기사는 먼저 심리학자 윌리엄 초픽의 연구를 소개합니다. 초픽은 15세에서 99세 사이 30만 명을 대상으로 광범위한 조사를 벌입니다. 그 결과 우정을 매우 중시하는 사람들일수록 나이 들면서 더 건강하고 행복하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미 유타주 브리검영 대학의 심리학과 줄리언 훌트-룬스타드팀의 연구 또한 우정과 건강의 상관관계를 단 한 줄의 문장으로 강력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친한 친구 없는 외로움은 하루에 담배 15개를 피우는 것만큼 신체 건강에 해롭다.’


친한 친구의 존재는 건강에만 좋은 것은 아닙니다. 100세 시대의 우리 ‘커리어’에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평생 광고 크리에이티브 분야에 종사했던 한 세바시 강연자는 환갑이 가까운 나이에 창업을 선언했습니다.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반려동물의 건강을 체크하고, 반려동물을 위한 건강기능식품을 정기 배송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이었습니다.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라 구체적인 실체나 실적이 없었지만, 창업자는 에인절 투자자들로부터 적지 않은 투자금을 모았고, 그 ‘천사들’ 중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은 창업자의 사 십년지기 절친들이었습니다. 우연한 기회로 필자도 그 투자자들의 모임에 참여하게 됐는데, 그때 한 친구분의 말씀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사업도 모르면서 친구라고 ‘묻지마 투자’ 한다며 걱정하는 사람도 있는데, 모르는 소리지, 사업은 사람이 하는 것이고, 사람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면, 난 이 사업에 대해 완벽히 아는 사람이지. 저 친구는 내가 제일 잘 알거든. 40년 곁에 있었던 내 친구니까.” 창업자는 조용히 이야기를 들으면 테이블 건너편에서 미소 짓고 있었습니다.


배우 차인표 씨는 친구를 위해 일부러(?) 더 건강해진 경우입니다.  그 사연은 세바시 강연을 통해 100만 명 가까운 사람들에게 전해졌습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차인표 씨는 미국 유학 시절, 같은 대학을 다니던 한국인 친구가 있었습니다. 졸업 후 친구는 미국에 남아 취업을 했고, 차인표 씨는 한국에서 배우가 됐습니다. 세월이 흘러 친구는 다니던 직장에서 은퇴하고, 은퇴 자금을 투자해 피트니스 센터를 차렸습니다. 운동을 좋아해서 인생 후반전에는 운동 사업을 해보겠다던 꿈을 실천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체육관 문을 열자마자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됐고, 얼마지 않아 체육관은 문을 닫게 됐습니다. 친구는 거기에 코로나까지 걸려서 인생 최악의 시간을 보낼 때였습니다. 코로나로 투병하고 있을 친구를 위로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던 차인표 씨에게 친구는 뜻밖의 제안을 했습니다. 새해가 되면 함께 운동을 시작해서 몸을 만들고, 그 몸으로 머슬 매거진의 표지 모델을 함께 해보자는 제안이었습니다. 뜬금없는 소리였습니다. 하지만 친구는 그게 자신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이고, 그걸 이루면 지금의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때부터 나이 오십 중반을 훌쩍 넘긴 두 친구는 몸을 만들기 시작했고, 그로부터 8개월 뒤 잡지 ‘빅이슈’의 표지 모델로 등장하게 됩니다. 물론 웃통을 벗은 채로. 

세바시 강연 | 차인표 배우, 작가 '변화를 만들기 위한 첫 번째 스텝'

영국 출신의 인류학자 로빈 던바 교수는 영장류의 사교 행위를 연구하다가 대뇌 신피질의 크기와 친구의 숫자가 관련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던바 교수는 인간의 경우 보통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는 최대 인원은 150명 정도라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최근 연구 또한 페이스북 친구가 1,000명이 넘는다고 해도 정기적으로 연락하는 사람은 150명 정도라는 것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그중에서 5명만이 나와 가장 가까운 친구로 분류됩니다. 친구는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자 내가 믿는 사람입니다. 나이 들수록 친구는 150명에서 줄어들겠지만, 나이 들어도 ‘찐친’ 5명은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그게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 구범준 세바시 대표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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