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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범준 Oct 30. 2022

누군가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행복이 가득한 집> 2022년 1월호 칼럼 

‘행복하니?’ 누군가 묻는다. 늘 대답하기 난처한 질문이다. 이 질문의 답은 있기는 한 걸까? 그렇다고 답하자니 어제 죽고 싶었던 일이 걸리고, 아니라고 하자니 나 자신이 불쌍하고 초라해진다. ‘예스와 노’ 사이를 시계추 마냥 왔다 갔다 하는데 불현듯 9년 전  한 세바시 강연의 마무리 이야기가 떠오른다. 한국의 대표적인 행복 연구가인 연세대 서은국 교수의 강연이다. 그는 ‘행복의 저력’에 관한 강연의 마무리를 이렇게 말한다. 


“저는 평생 행복을 연구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그토록 오래도록 행복을 연구했다니, 그래서 행복에 대해 알게 된 게 무엇이냐고? 참 난처한 질문입니다. 왜냐하면 공부를 하나도 안 한 내 여동생이 나보다 더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세바시 강연  | 서은국 '행복의 저력' https://youtu.be/I38e6Rr_bm8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마치 거울로 내 뒤통수를 보려 하는 일과 비슷하지 않은가? 뒤통수를 거울에 비추는 순간 눈은 거울을 볼 수 없는 것처럼, 행복을 욕망하는 순간 행복은 오히려 내 삶과 멀어지는 일이 다반사이니.


답할 수 없다면 질문을 바꿔보는 것도 방법이다. ‘행복이 뭐니?’ 그래 이 질문이 먼저여야 한다. 행복이 무엇인지 알아야 행복한지 아닌지도 판단할 수 있다. 최고의 카피라이터인 정철 작가는 세바시에서 행복의 정의를 그 반대말로 풀어낸다. 행복의 반대말은 불행이 아니라 불만이라고. 무릎을 칠만한 카피이다. 불행은 모호하다. 하지만 지금 당장 불만을 목록으로 적으라면, 서 너 장을 넘기는 건 일도 아니다. 추상을 구체로 끌어내리니 그 뜻은 더욱 분명해진다. 

세바시 강연  | 정철 '행복의 반대말은 불행이 아니라 불만이다' https://youtu.be/aNhE6BD3j38

하지만 반대말을 안다고 궁금증이 해결되진 않는다. 행복은 불만의 건너편에 여전히 뿌옇게 서 있다. 이쯤 되면 내가 가장 아끼는 행복에 관한 세바시 명언을 깔 수밖에 없다. 강연자는 배우 권해효이다. 


“행복은 근육과 같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행복해진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근육을 써야 근육이 생기는 것처럼, 행복을 써야 비로소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세바시 강연  | 권해효 '나는 재미난 마을에 산다' https://youtu.be/F0r87_2e_z4

행복에 관해 이보다 더 절묘한 비유가 있을까. 근육을 약이나 음식으로 키울 순 없다. 근육을 쓰고 또 쓰고, 계속 단련해야 근육을 만들 수 있다. 행복도 그러하다. 행복은 우리가 도달해야 할 삶의 봉우리이자, 동시에 그 봉우리로 가게 하는 근육이다. 힘들어야 힘이 생긴다. 이 또한 근육을 만드는 원리이다. 고난과 고생이 행복을 얻는 과정에 포함되어야 하는 이유를 이 원리가 잘 설명한다.  


‘행복하니?’라는 질문에 이제 답할 수 있다. 그렇다고 답하겠다. 그래야 정말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그래도 숙제가 남는다. 말만 하는 것으로 행복을 ‘쓴다’고 할 수는 없으니 행동해야 한다. 무엇을 해야 할까? 답은 두 사람의 이야기로부터 얻을 수 있다.  


하나는 인지심리학자인 아주대 김경일 교수가 세바시에서 공짜로 밝힌 행복의 비법이다. 무려 4백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비법을 받아 갔다. 그 비법은 자신에게 꼭 맞는 수면시간을 알아내고, 그 시간을 지켜 잠을 잘 자는 것이다. 

세바시 강연  | 김경일 '한국인이 놓치고 사는 이 '숫자'만 바꿔도 인생이 바뀝니다' https://youtu.be/MenYHcLC16M

다른 하나는 열 살짜리 소녀의 대답에서 찾았다. 딸에게 물었다. 

-희재는 언제 행복해? 
-숙제 다하고 TV 볼 때. 
-숙제 안 하고 TV 보면 어떤데? 
-TV 본 다음이 지옥이 되지.
-아!


그래서 결론은 이렇다. 행복하려면, 제때 할 일 다하고, 제때 잘 자는 것이라고. 


-구범준 세바시 대표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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