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피디 칼럼
우리는 해가 바뀌면 반드시 먹는 것이 있다. 떡국이 아니다. 바로 새로운 마음이다. 새해에는 날씬해지기로 마음먹는다, 새해에는 책, 백 여권 이상을 읽기로 마음먹는다, 새해에는 열심히 일해보기로 마음먹는다 등등. 그리고 얼마지 않아 대부분 먹은 걸 토해낸다. 마음먹은 대로 되지도 않고 뜻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나이는 매년 결심한 것을 포기한 횟수의 또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어떻게 하면 마음먹은 걸 성공할까? 어떻게 하면 올해가 내 인생 최고로 재미있고 의미 있는 시간이 될까? 그 답의 실마리를 세바시 강연에서 찾아봤다.
아주대 심리학과 김경일 교수는 그의 첫 세바시 강연에서, 뛰어난 성과를 만드는 것은 능력이 아니라 상황이라고 말한다. 그 근거로 한 인지심리학 실험 하나를 소개한다. 평범한 초등학생들을 모아둔 두 그룹이 있다. 그리고 평범한 도형과 괴상한 도형 블록이 담긴 박스를 주고 과제를 각기 달리 제시한다. 먼저 첫 번째 그룹에는 5개의 도형 블록을 골라 새롭고 신기한 걸 만들어 보라고 이야기한다. 아이들은 당황하지 않는다. 늘 하던 규칙이고 익숙한 과제이다. 대다수 아이는 정육면체, 기둥, 삼각뿔 같은 평범한 도형들을 골라 자동차, 집 같은 평범한 것을 만든다. 새로워 보이는 것은 없다.
두 번째 그룹 아이들에게는 순서를 바꿔 과제를 제시한다. 새롭고 신기한 것을 만든다면 어떤 것을 만들겠냐고 먼저 묻는다. 쓰레기를 먹어 치우는 공룡이요!, 하늘을 나는 고래 자동차요! 저마다 기발한 생각을 뽐낸다. 그리고서 각자가 생각해 낸 것을 도형 블록 중 5개를 골라서 만들어보라고 말한다. 아이들은 순간 당황한다. 하지만 결국 아이들은 그 새롭고 신기한 것을 만들어낸다. 창의성 점수로 따지면 두 번째 그룹 아이들이 훨씬 높다. 단지 과제를 제시하는 순서를 바꾸는 것으로 상황을 낯설게 만들었을 뿐이다. 메타인지가 낯선 상황에서 우리 뇌의 역량을 더욱더 높이기 때문이다.
낯선 상황, 낯선 곳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감정도 성찰하게 만든다. 몇 년 전 남극 세종 과학기지 설립 30주년 특집 세바시 강연회를 개최한 적이 있다. 이날 강연회 중간에 세종 과학기지에서 근무하는 한 대원을 온라인 실시간으로 연결해 관객들의 질문을 받았다. 객석에서 한 초등학교 남학생이 손을 번쩍 들었다. 그리고는 자신이 화면 속 대원의 아들이라고 말하고는 이내 울음을 터뜨렸다. 아이는 세종 과학기지 특집이라서 세바시 강연회에 왔는데, 생각지도 않은 아빠를 강연회장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떨어져 산 지 9개월 정도 됐단다. 아이는 말을 잇지 못하고 숨이 넘어가도록 오열했다. 관객들 모두 부자의 상봉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울음을 가까스로 삼킨 아이는 건강하게 돌아오라는 말과 사랑한다는 말로 아빠의 눈가를 촉촉이 적셨다. 400명 관객 모두의 가슴이 따뜻해지는 순간이었다. 반전은 그다음에 일어났다.
“이렇게 화상으로 아들을 만난 것도 오랜만인가요?”라고 사회자가 물었다. 그 대원은 “어제도 통화했다, 매일 화상 통화한다, 재가 오늘은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며 갸우뚱했다. 심지어 어제는 유튜브 보는 데 방해되니 자꾸 전화하지 말라는 소리까지 들었다고 증언했다. 강연회장의 분위기는 이내 폭소로 바뀌었다.
소년에게, 익숙한 공간인 집에서는 아빠에 대한 사랑이 유튜브 시청보다 못한 것이다. 하지만 낯선 사람들과 함께 있는 낯선 공간인 세바시 강연장에서 만난 아빠의 모습은 사무치는 그리움이 된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이 생긴다. 새로운 것은 늘 하던 것들의 잔상에 가려져 있다. 창의와 혁신이 익숙한 것에서 새로운 것을 보는 눈으로부터 시작되는 이유이다.
이제 답을 알았다. 새해를 마음먹은 대로 살고 싶다면, 새롭고 낯선 것을 하기로 마음먹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해보지 못한 것들에 도전해보자. 이런저런 핑계로 미뤄두었던 새로운 일을 시작하자. 잘할 수 있겠냐고? 뒷일은 메타인지에게 맡기자. 그리고 이제부터 떡국 한 그릇으로 나이 먹지 말고,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을 할 때마다 나이 한 살 더 먹는 것으로 정하자. 그래야 나이 드는 일이 몇 배는 더 재미있어질 테니까.
-구범준 세바시 대표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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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꼭 해봐야할 낯선 일을 하나 추천드립니다. 세바시대학에서 ‘함께 공부하기’입니다. 현재 모두 여덟 분의 세바시 강연자들이 넉 달동안 함께 공부할 전공 과정을 열고, 수강생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저도 ‘세바시 스피치’라는 과정을 열었고요, 이밖에 강원국 작가님, 김경일 아주대 교수님, 더공감 박상미 대표님 등 너무나 멋진 분들이 여러분들과 ‘함께 공부하기’를 위해 세바시랜드에 좋은 과정을 열어주셨습니다. 아래 사이트로 와서 둘러보시고, 전공 과정 하나 선택해서, 새해 공부 계획을 세바시대학과 함께 실천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