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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이데 전주현 Mar 23. 2024

튜브를 타는 이유

런던, 영국

작고 귀엽고 빨간 런던 튜브 안으로 키 크고 덩치가 꽤 되는 사람들이 몸을 구겨 넣으며 들어갔다.

맞지 않는 옷에 자신을 맞춰보려는 듯한 움직임. 부자연스럽다. 불편해 보인다. 뛰어드느라 정신없어 보인다. 왜? 놓치고 싶지 않아서. 바삐 움직여야 할 것 같아서.

질문을 던졌다. 미래 기억을 노트에 적기 바쁜 나머지 현재를 반신반의하며 지내는 건 아닐까, 하고.

그러나 튜브가 곧 떠날 움직임을 보이자 결국엔 나도 그들을 따라 똑같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튜브로 들어갔다. 질문은 있었지만 뒤쳐지는 건 싫었다. "틈을 조심해(mind the gap)"라는 승강장 경고문을 사뿐히 밟으며 걸음을 옮겼다.

어라. 생각했던 것보다 천장이 높다. 크게 붐비지도 않는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구겨진 종이 메모지처럼 걷던 사람들이 정작 튜브 안에서는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앉아 있거나 서 있다.

그러고 보니 튜브도 사람들도 '미리 계획하기(planning ahead)'란 광고 문구가 적힌 방향으로 힘을 실으며 나아갔었다. 잠깐의 구겨짐, 부자연스러움, 불편함은 아무것도 아니란 듯이.


움직임에는 이렇게 제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나 보다. 감수한다는 결단과 의외성, 이유가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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