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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양 Nov 30. 2022

꿈, 아직도 꿀 수 있나요?

꿈, 어찌나 어색한지....

얼마 전 중학 동창인 친구를 만났습니다. 알고 지낸 지 40년은 족히 되었지요. 

"넌 학교 다닐때도 꿈꾸던 소녀더니 지금은 꿈꾸는 아줌마네"

꿈이라.... 오랫동안 잊고 있던 단어네요. 중학생 시절, 그때 저는 꿈을 꾸고 있었을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그때 무슨 꿈을 꾸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네요. 다만 한가지, 저는 딴 생각을 많이 하는 학생이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선생님들이 몇 번씩 불러도 내 이름을 듣지 못하기 일쑤였으니, 아마도 이러저러한 잡생각을 많이 했던 공상의 명수 였던가 봅니다.  하룻밤에 머릿속으로 써내려간 시덥지 않은 이야깃 거리 들이 넘치고 넘치던 시절. 문학반을 들락거리며 온갖 단어들을 수집하던 그때, 밤새 나의 공상은 머릿속을 딩굴고 마음속을 헤집다가 다음날은 어김없이 친구의 귀에 전달되곤 했었죠.

그러니 학교 다닐 적의 나는 꿈꾸는 소녀였다는 친구의 말에 일정 부분이 동감이 됩니다. 충분히 그렇게 보일 수 있었을 테니까요. 하지만, 뒤 엣말은 매우 의아스럽습니다.

'꿈을 꾸는 아줌마라고 내가?' 

집에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내내 그 말을 곱씹어 봅니다.  무엇이 꿈처럼 들렸을까? 내가 최근에 공상을 해 본적이 있을까?

그래요. 저는 꿈을 꾸지 않은 지 아주 오래되었습니다.

대학 입시를 포기하고 스무살에 공기업에 들어가 하루에도 백명이 넘게 몰아닥치는 민원인을 상대했고, 불합리한 노동환경에 맞서 가열차게 노조활동을 했었네요, 그 시절은 누구나 투사였답니다. 제대로 싸우기 위해 노동법을 배워보자는 마음에 방송대 법학과에 입학을 했더랬습니다. 하지만 정작 하려던 공부는 작파하고 연애를 했지요. 꿈꾸듯 잠깐의 사랑을 나눈 그 남자, 지극히 현실적인 그이와 결혼을 했네요. 결혼하면  반드시 때려치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던 직장 역시, 아이 둘을 낳고도 계속 다녔고... 

아. 내가 꿈을 꾸었던 때가 바로 그때네요. 직장을 그만둔 20년 전 바로 그때.

당시 회사는 두 달간의 기나긴 파업을 했지요. 국민들에게 욕 먹을 짓이었지만 나름의 명분도 있었기에 무노동 무임금을 감수하고 장기 파업에 돌입했었지요.  노상 투쟁 현장에 있었던 건 아니고, 집회가 없는 날은 하릴없이 집에서 딩굴었지요. 그러다 하루는 동네 도서관을 갔다가 서고에 꽂힌 책이 손에 잡히더란 말입니다. 보니까   사법고시 1차 문제집이었지요. 제법 두툼했지만 뭔 조화인지 소설처럼 읽히더군요.

' 어 해볼만 하겠는데? '

파업이 끝나고 직장으로 복귀했을 때 명예퇴직 신청을 받더군요. 인사적체를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정리가 필요했던 게지요. 저는 두번 생각않고 퇴직신청을 했어요. 주위에서는 한결 같이 의외라는 반응을 보이더군요.  제가 마르고 닳도록 다닐 줄 알았다나요? 더 늦기전에 공부를 해보자는, 무모하고도 용감한 선택이었지만 아무에게도 말하진 않았죠. 쑥스럽기도 했고, 오랜만에 꾸는 꿈이라 어색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내 꿈은 내가 꾼다. 

그게 꿈꾸는 자의 특권인거죠. 

단 하루의 모자람도 없이 근속기간 13년을 딱 채우고 퇴직을 한 다음날 부터 저는 핸드백 대신 책가방을 둘러메고 도서관을 향했죠. 하지만, 아직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유치원생 두 아이를 끼고 공부하는 것이 얼마나 비현실적인 얘기인지, 시간, 자금, 건강, 어느 것 하나 녹녹치 않은 현실과 맞부딪쳤죠. 하루 열세시간씩 도서관 의자에 몸을 묶고 있었던게 무리였던 거죠. 그 댓가로 대수술을 할 만큼의 병을 얻었죠. 보름간의 병원생활을 마치고 결국 현실과 타협한 것이 사법고시 포기, 법무사 시험으로의 전향이었어요. 다행히 법무사 시험은 한번에 통과하여 개업한지 벌써 올해로 만 16년이 넘었네요.

그러나, 그 후의 삶은 동이 서와 먼것처럼 꿈과는 아주 멀리 떨어진 것이 되어버렸어요. 소장, 준비서면등을 익숙하게 써내려가면서 저는 점점 더 현실주의자가 되어 버린거지요. 그림으로 치면 극사실주의 그림만 반복적으로 그리고 있는 셈이네요. 이제는 완전히 익숙해졌다고나 할까? 꿈이니, 공상이니 하는 것과는 너무도 서먹서먹 해진 지금.

과연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것 처럼 보이는 구석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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