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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양 Nov 30. 2022

정서 교류의 차단

중년의 사춘기.. 그럼에도불구하고

친구의 딸 결혼 소식을 들었다. 직접 전해 들었으면 좋으련만 다른 친구를 통해 모바일 청첩장을 건네받았다. 10년간 예쁜 사랑을 키워온 예비 부부 얼굴에 가득한 웃음이 나를 미소짓게 했다. 친구에게 축하한다는 문자를 보냈더니 퇴근 무렵에 전화가 왔다.

'이런 좋은 일 있으면 진작에 알려야지. 축하해~'

'고마워. 전화할까 말까 고민 됐었어. 내가 용기를 못냈어 '

 오랜만에 듣는 친구의 음성에는 미안한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우리는 아주 가끔씩 통화만 하고 얼굴은 못 본지 5년이 넘었다.  그것도 아주 뜻 밖의 일로 어색한 사이가 되어버리는 바람에....


16년전,  친구들은 여고 졸업후 20년만에 모임을 결성했다. 알음알음 친구들이 하나, 둘 모이더니 고정멤버가 15명이나 되었다. 걔중에는 학교 다닐때 몰랐던 친구들도 상당수 있었지만 그런게 뭐 대수일까? 지금부터 알아가면서 친구삼아도 얼마든지 괜찮으니까. 그저 바쁜 삶 중에서 한번씩 친구들 만나는 것만으로도 좋았었다.  다만, 15명이나 되니, 날짜 잡는 것도 쉽지 않았고, 서로간에 충분한 교류도 어려워서 더 이상 회원을 받지 않기로 했다. 그럴싸한 이름도 지었고, 한달에 한번씩 고정적으로 만나면서 그렇게 10년을 넘게 모임이 계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사이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모임 멤버중 절반이상이 다른 멤버들에게 알리지 않고 신생 모임에 가입한 것이 갈등의 계기였다. 뭐, 다른 모임에 중복 가입하는 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었지만, 그런 사실을 서로 공유하지 않았던 것이 화근이었다. 신생모임에 가입한 친구들이 의도적으로 비밀로 한 것은 아니었지만 세심하지 못했고, 남은 친구들은 아주 서운하게 느낄 일이었다. 게다가 각자 삼삼오오 만나면서 나눈 얘기들이 오히려 말거리가 되어 오해를 증폭시키고, 갈등이 확산되었던 것이다. 나는 공교롭게도 주말에 훈련을 받고 있어서 1년 넘게 모임을 가지 못하고 있었기에 한참 소란스러워지고 난 후에 사정을 알게 되었다. 시비를 가리는게 결코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의 잘, 잘못을 따지는 데 집중했던 것 같다. 나 역시도 신생모임을 주도했던 이의 태도에 분노했고, 처음의 문제는 오간데 없고 이차적인 감정에 휩싸여 서로 허덕였다. 당시 어느쪽에도 속하지 않았던 나는 둘로 갈라진 친구들 사이를 봉합하려고 양쪽을 이렇게 저렇게 만났다.  10년 넘게 이어온 모임을 깨는 것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고, 또 서로에게 상처가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작은 노력은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다. 좀 더 시간을 갖고 냉정함을 찾기를 원했지만, 친구들은 생각보다 성급하게 결별을 선택했다. 난 돌이켜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돌이킬수 없다는 것도 분명히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갈등의 원인이 누군가의 잘못과 그로 인한 상처에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건 단지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했고 사실은 우리 모두 중년의 어느 때를 지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우리는 갱년기라고 불리는 제2의 사춘기를 지나고 있었다. 미성숙하고 불안정한 정서가 특징인 첫번째 사춘기와 달리, 중년의 때에 맞이하는 사춘기는 좀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내가 왜 이 나이 먹어서도 쟤를 참아줘야 돼?'

'더 이상 피곤한 건 싫어. 귀찮아. 편안해지고 싶어'

내게 미치는 타인의 영향을 차단하려는 경향. 그런 생각과 감정이 든다.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교류의 차단'이라고  부를수도 있을 것 같고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굳이' 라고 해도 될것 같다.  그 전에는 다른 사람에게 너그럽게 굴던 사람도 다른 사람과의 교류가 귀찮아지고, 전에는 기꺼이 양보한 사소한 일도 이제는 손해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타인의 입장과 처지를 배려할 마음이 좀 처럼 들지 않는 정서의 인색함이 자리잡는 것이다. 이것은 인격의 성숙이나 성품의 완성도와는 그 결을 좀 달리하는 것 같다. 

그동안 양보하고 참아주면서 많이 지쳤다. 늘 양보만 하는 것 같아 억울하기도 하다. 양보할수록 편향적인 관계가 되는 것 같다. 뭐 이런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굳이' 그런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나의 실수를 너그럽게 이해하고 수용하는 대신 큰 잘못이라도 되는 냥 들추고 비난하는 사람과 교류를 지속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유지한다고 해도 큰 도움이 안되고, 끊어져도 아쉽지 않을 것 같은 것. 결국 우리는 그런 중년기 정서의 덪에 갇혔고 결국 결별을 한 것이다.


그리고 5년이 흘렀다.

둘로 갈라진 친구들은 각자의 모임에 속해서 그 모임에 충실했고, 양쪽을 아우르는 모임은 가져 본 적이 없다. 이제 시간이 지난 만큼 격렬했던 감정도 누그러졌고, 그 뒤로 경조사가 생기면 적당히 오고 가고 있는 중이다. 각자의 친분에 따라, 더러는 전에 진 빚때문에, 또 가끔은 서로 보고싶기도 하여....


결혼식을 갔다.  당시 격렬하게 대립했던 사람과 마주치는 것이 껄끄러웠지만, 그럼에도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친구들과 오랜 만에 한 식탁에 둘러앉아 밥도 먹고 차도 마셨다. 처음 어색했던 기분은 금방 사그러 들었다. 아마도 만나지 못한 시간의 간격을 과거 함께 했던 세월이 메꾸어 주나보다. 무엇보다 다들 평안히 살고 있는 것 같아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다시 모임을 가질수는 없겠지만,  그렇게 라도 얼굴을 보아서 참 좋았다. 좀 더 시간이 지나 더 자연스럽게 보게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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