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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희 Feb 25. 2022

해물 홀릭의 굴 이야기

인생 음식을 맛보기 위해선!

“여보! 나 너무 아파. 빨리 응급실로 데려다줘!"

혼비백산한 나는 남편을 차에 태우고 응급실을 찾았다

“이 환자 분 맹장 수술해야 할 것 같은데.":

당직 의사의 말씀

배를 갈라 맹장 수술을 하겠다는 소리에 놀란 남편.

"여보, 여기서 나가자. ㅇㅇ 의원으로."

“환자분 뭐 드셨어요? 식중독인 것 같은데.":간호사

"맞아요, 그러고 보니, 제가 생 굴을 먹었어요."


수술하자던 의사를 뿌리친 채, 동네 의원에서 일하던 간호사의 진단에 믿음이 갔던 남편은 곧 주사를 맞았고, 이어 회복을 위한 링거를 맞고 집으로 돌아왔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해외 출장에서 돌아오기 전, 그 나라 식당에서 생 굴을 먹었다고 했다. 동행했던 사람도 평소 '위'가 강하다고 노래를 부르던 사람이었지만, 조상의 산소에 갔다가 속 울릉증과 극심한 통증으로 산에서 죽을뻔했다고 한다. "굴"에 대한 찐한 기억이다.


 

  춥고 또 추운 길을 산책하는 이월이다. 코로나로 인해 외식이 점점 줄어들다가, 오미크론 발생 직전부터는 아예 집에서만 식사 준비를 하게 되었다. 이것저것 택배로 시장 가는 걸 대체한 지도 오래되었다.

 

 "석화 10kg 주문요!"

가족 공동 카톡창에 이렇게 올려놓으면 식구 중 누군가가, '주문 완료' 되었다는 메시지를 남겨둔다. 이틀 후면 대문 앞에 큼직한 스티로폼 박스에 담긴 통영 혹은 서해안의 석화굴이 배달된다. 북향인 집 뒤편은 야외 냉장고보다 더해 냉동고다. 냉장고에 넣기에는 불가능 부피지만, 이렇게 두면 필요한 양만큼 손질하여 쓸 수 있다.


 

 처음 굴을 즐기기 시작했을 땐-얼음 위에 반굴을 올려두고 레몬을 뿌린 뒤 와인과 마시며 사람들과 친교를 다졌다. 정기적으로 갔던 뷔페 레스토랑에서도 굴이 채워지기 무섭게 먹었다. 하지만, 어느 나라에서도 통통하게 알이 찬 싱싱한 생 굴은 만나기 어려웠다. 본래의 재료로 승부수를 띄우기 어려우니, 굴에 치즈를 올려 오븐에 굽거나, 향채와 양파, 토마토, 레몬으로 화려한 색을 올린 것 등등. 아니면 진주가 나오는 관광지 굴이었거나!


  8년 전 진짜 굴 맛을 보았다-보령의 천북 굴단지 한 식당에서였는데, 손님이 앉자마자 주름 가득한 얼굴의 주인 할머니는 굴 한 자루를 밤색 대야에 쏱아부었다. 먹을 만큼 먹고 남기면 계산하겠다며. 직화로 굽기에 안성맞춤인 불 그물 위에서 굴 껍데기가 열리고, 속 국물이 뜨겁게 끓으며, 겹겹의 한지를 붙여 굳힌듯한 껍질은 사방으로 튀었다. 목장갑을 끼고 앞치마를 두른 채 뜨거운 굴 껍데기 속의  국물까지 호로록 마셔가며 굴을 먹고 껍질은 내던지며  전쟁을 치렀다. 거기다 공장의 컨베어 벨트 돌아가듯 굴 밥  뚝배기는 칙칙 푹푹 요란하게 돌며 식당 주방 쪽에서  얼마나 김을 내뿜던지!


 한참을 먹고 웃고 당황하다, 창 앞에 펼쳐진 질퍽한 회색 갯벌을 보았다. 몇몇 사람들이 망태를 끌고 다니며 조개를 줍고 있는 풍경이었다. 굴은 갯벌 물을 하루에 6~7 리터 정도를 빨아들이고 내뿜으며 영양분을 섭취한다고 했다.  좋은 넓은 갯벌이 굴 성장에 좋은 환경인 것이다. 세계적으로 비싼 굴요리를, '굴한 민국'에선 산촌에 사는 나조차 신선하게 즐길 수 있음에 감사한다.



 심심한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삼 개월 전부터 식재료에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성탄을 위한 체크 천 위에

모스카토 한잔과, 찜한 굴을 대용량으로 차 먹다 보면

비린맛 없는 구수한 굴들이 연신 입으로 흘러들어 간다.

짭조름한 바닷물과 어우러진 간은 자연 그대로라 환상이다:희희낙락! 화이트 와인에 단맛을 첨가한 모스카토는 식탁을 운치 있게 만들고 얼굴을 달아오르게 한다.



술 못하는 나 달콤한 스파클링  맛에 끌려 단숨에 잔을 비운다. 석화굴을 먹고 나면  맛난 국물이 남아 있다. 순두부찌개 국물로, 매생이 굴국으로,  굴전과, 두부조림 양념 국물로 요리를 해둔다. 인생 순두부는 이 국물 하나면 충분하다. 말로 표현이 어려울 만큼의 열광을 식탁에서 끌어낼 수 있다. 다시 눈이 내리고, 날씨는 춥고, 하루 네 번 오가는 마을버스가 적막함을 더하는 시간이면 나는 다섯 번째  굴을 주문한다. 넉넉히 초여름까지 먹을 수 있는 진한 국물과 깨끗한 굴을 저장해 두기 위해서다.



  곧 삼월이다. 산책길을 따라 심어둔 개나리는 이제 그 키가 2m를 훌쩍 넘었다. 먹고 난 굴 껍데기는 정원 곳곳의 나무 아래에서 하얗게 건조되고 있다. 일 년이 지나면 부드러운 석회가루로 바스러져 토양에 도움이 될 터. 보리가 피기 시작하면 패독으로 호흡곤란이 일어날 수 있으니 생굴은 먹어서 곤란하다. 익힌 굴은 물기를 완전히 뺀 후 낱개로 분리하기 쉽게 하여 냉동한다.


 

 부침가루에 굴리고, 계란 물에 포옥 담가, 기름 두른 펜에 부쳐낸 굴 전, 밥 뜸 들일 때 찜해 둔 굴을 올려 다래나 파 양념장을 만들어 먹는 굴 밥, 매콤한 생 무 굴무침, 굴 영양죽, 굴 떡국 등등, 이번 겨울의 집 밥 특식은 굴이었다. '어부의 딸은 얼굴이 새까맣고, 굴 집 딸은 피부가 보얗다.'는 옛말은 나에게도 증명되었다. 굴 먹기 좋은 나라, 세상에서 가장 굴이 싼 나라, 굴을 접시 가득 쌓아놓고 맘껏 먹을 수 있는 나라의 훌륭한 먹거리에 찬탄했던  2022년 겨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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