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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를 캐는 아침

8월의 뜨거움 속에서…

by 이경희


폭우가 지나가면 폭염이 연이어 오고, 또 폭우다.

눈을 뜨자마자 텃밭의 풀을 뽑으러 나섰다.


남편이 나를 말린다.

“일단 아침부터 먹자.”

그 말이 맞다며, 나는 올리브 오일 한 숟갈을 꿀꺽 삼킨다.

매콤한 끝 맛으로 뒷 골이 얼얼하다.

음양탕도 큰 컵에 따라 단숨에 들이켠다.



며칠 전 더위에 잎 끝이 타버린 부추를 모두 잘랐다.

물에 헹구고 액젓에 무쳤더니

부드럽고 감칠맛 나는 부추김치가 되었다.

양파와 코끼리마늘장아찌도 자주 식탁에 오른다


부추김치 한 젓가락, 그 위에 양파피클 하나.

아침상 두부에 올려 먹기에 더없이 좋다

삶은 달걀도 사이사이 곁들인다.


J가 간 밤에 준비해 둔 귀리, 오트밀, 치아시드,

우유, 땅콩잼, 그릭요구르트는 아침에 되니 잘 혼합되어

식감이 찰지고 고소하다-입에 착 붙는 맛이다


고급 원두만 고집하는 남편의 커피는 오늘 생략.

마음이 바쁘니 커피도 뒷전이다.

정원과 텃밭의 경계는 흐려진 지 오래다.


루꼴라와 팬지, 참외와 호박, 들깻잎, 바질.

자라나는 것들은 자기 자리를 스스로 만든다.

참외는 뜻밖의 자리에서 싹을 틔우고,

호박 줄기는 칡덩굴처럼 거세게 뻗어나가고 있는 중이다.


바질은 흩뿌린 자리마다

단단한 잎을 내밀고 있다.


호박잎 사이로 적당히 자란

둥근 호박 하나를 따낸다.

무성한 들깻잎은 과감히 잘라주면

더 풍성한 줄기로 되돌아온다.


호미와 전지가위를 번갈아 들고

땅을 긁고, 찍고, 캐고, 흩트린다

비에 젖은 흙은 땅을 다 덮어버린

빈대풀, 바랭이풀, 쇠비름, 비름나물, 괭이밥풀

뿌리를 부드럽게 내준다.

쑥쑥 뽑힌다.


주홍과 진노랑 한련화가 피어 있는 자리에 이르니

뜨거운 햇빛에 지쳐 갑작스레 속이 울렁인다.

어지럽기 전에 작업을 멈춘다.


잠시 후, 일 중에 집에 들렀던 남편이

생수 한 컵을 내민다. 그가 먼저 다녀간 거실은

시원한 온도로 맞춰져 있다.


캄포 소파에 몸을 누이고

발 마사지기를 켠다.

찌릿한 전류가 허벅지까지 전해진다.

힘들게 스쾃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광고를 보고

구매한 제품이다


점심엔

양배추와 근대,깻잎을 데치고

방금 껍질을 깐 ㅡ마늘을

청국장 소스에 찍어 쌈밥을 만든다.

닭가슴살 스테이크도

데리야끼 소스에 가볍게 찍어 한 입.


아일랜드 식탁에 나란히 앉은 남편이

어느새 몸을 반쯤 틀어 나를 바라본다.

왜 그러냐 묻자,

“나도 몰라.”

피식 웃는다.


칼라일에 일상이었던 산책은 그만두었다.

덥고, 습하고, 벌레도 많다.

개미에게도 물리는 일이 잦다.

산책 대신,

에어컨 바람 시원한 거실에서

스쾃을 하고, 팔을 들고,

다리를 왼쪽 오른쪽으로 뻗는다.

제자리 뛰기도 하루 두세 번


여름이면 여기저기 냉면집들을 기웃거리며

먹어보지만 영 맛이 시원치가 않다.

마트에서 사 온 동치미 물냉면 맛이 평균 이상이다

무더운 여름 저녁식사로 안성맞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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