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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담 Aug 29. 2019

족발 발라주는 남자

#1. 사소하지만 소중한 너




거리에 드문드문 가로등 불빛이 보이는 어두운 겨울 골목을 걷고 있다.

롱 패딩 아래로 맨 발목과 털 실내화가 감싸주지 못한 발뒤꿈치에 냉기가 스며들었다. 파란 꽃바지 입은 남편이 내 점퍼 주머니 한쪽에 손을 넣더니 자꾸만 나를 밀면서 걷는다. 신경전을 하듯 사선으로 걸으며 오분 거리 편의점에 도착했다.

음료코너에서 작은 사이즈 사이다 하나를 집는다. 그리고 곧장 컵라면과 과자 코너 사이 들어가 ‘이건 없네, 저건 새로 나왔네’ 하며 한참을 이야기하다 결국 음료 하나만 계산하고 나온다. 남편은 사이다를 한쪽 주머니에 찔러 넣고 기분이 좋아졌다.

 

“여봉봉이랑 이렇게 나오니까 좋다~”

 

생각해보니 이것이 오늘 나의 첫 외출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다녔던 출판사를 그만두고 3년째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비직장인 삶이 시작되면서 자연스레 집순이가 되었다. 조용하고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은 이 편안한 공간이 나는 너무 좋았다. “나는 인터넷이랑 택배 서비스만 있다면 평생 집 밖에 안 나가고 살 자신 있어!” 이렇게 말하는 나를 남편은 걱정 어린 눈으로 바라본다. 그 후,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퇴근 후 이렇게 나를 끌고 바깥구경을 시켜준다. 처음 남편은 나에게 배드민턴 같은 운동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권했고, 두 번째는 가까운 공원으로 저녁 산책을 가자고 했다. 두 제안 모두 나는 귀찮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선택한 방법이 5분 거리 편의점 외출이었다. 나는 일 년째, 남편 꼬임에 잘 넘어가고 있다. 


“여봉봉은 오빠가 언제부터 좋아졌나-효?”

 

기분이 좋아진 남편이 또 똑같은 질문을 한다. 남편은 이따금 우리의 추억을 되새김질하며 “기억나니?” 로 시작하는 연애 시절 이야기나 함께 여행 다녀온 ‘너와 내가 다 아는 뻔한 이야기’를 질문한다. 나는 그럴 때마다 백발이 성성한 노부부가 황혼 끝자락에 마주 앉아 추억을 되뇌는 장면을 떠올린다.

 

“오빠가 고기 사줘서, 오빠랑 결혼하면 고기 실컷 먹겠구나 싶었지.”

 

이것이 남편 질문에 공식 답변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내가 처음 왜 이런 답을 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질문을 받았을 때 머릿속에 떠오른 장면이 양 손에 일회용 비닐장갑을 끼고 족발뼈에 붙은 살코기를 쏙쏙 발라주던 남편의 모습이었다.

 

 




우리는 대학교 선후배 사이로 졸업 후, 일 년에 한 번 송년회 때나 얼굴을 보던 사이였다. 어느 날, 주임 교수님 전시회를 함께 다녀온 뒤부터 남편은 내가 근무하는 출판사 근처로 자주 외근을 나왔다. 자연스레 함께 차도 마시고 점심 먹는 일이 늘었다. 결혼 후 남편에게 왜 그렇게 자주 회사로 찾아왔냐고 물으니, 이 남자 순진한 건지…… 내가 “근처 지나실 일 있으면 이렇게 종종 커피 드시러 오세요.”라고 말해서 정말 그렇게 했다고 한다. 남편은 계속 이런저런 핑계를 만들어 회사 근처로 찾아왔고 ‘전시회 보는 것을 좋아한다.’는 내 말에 주말마다 크고 작은 전시회를 빠짐없이 질리도록 데려갔다. 


그날도 시립미술관으로 전시를 본 뒤 근처 유명한 족발집으로 향했다. 나는 다니고 있는 회사에 불만을 말하며 이번 생은 망한 것 같아요하고 남편에게 푸념하고 있었다. 묵묵히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던 남편은 갑자기 손을 번쩍 들어 올리더니

 

“아줌마, 여기 비닐장갑 하나 주세요” 하고 외쳤다.

 

일회용 비닐장갑을 받은 남편은 큰 뼈 작은 뼈 가리지 않고 꼼꼼하게 뼈에 붙은 살코기를 발라서 내 접시 위에 놓아주었다. 

나에게 행복이라는 작은 새 한 마리가 찾아온 순간이었다.

 





직장에서 힘들게 야근하고 돌아간 7평짜리 내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북적이고 소란했던 가족들을 떠나 홀로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던 나는 매 순간 겨울 한복판에 위태롭게 서 있는 기분이었다. 출근길 버스 안에서 바라본 도시 풍경은 Nana Mouskouri <Cu-Cu-Rru-Cu-Cu Paroma> 곡이 떠오르는 잿빛이다. 나는 매일같이 ‘이 버스가 부모님이 계시는 우리 집으로 향했으면’ 하고 바랐다. 시골집 마당이 그리웠고, 계절마다 새로 옷을 갈아입는 작은 앞산이 그리웠고, 엄마가 그리웠고,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집이 그리웠다. 사람들 속에 섞이기 위해 노력하고 직장에서 인정받기 위해 매일 안간힘을 쓰는 것도 인제 그만두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노력한 시간과 부모님의 실망하실 모습을 생각하니 선 듯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저 자신을 나약하다 자책하며 꾸역꾸역 하루를 살았다.



나는 남편의 순수해 보이는 웃음이 좋았다. 만나는 내내 직장에 대한 불만만 늘어놓던 나에게 선배로서 충고나 자기 이야기를 늘어놓았을 수 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내 말을 들어주고 조용히 힘내라며 고기를 발라 접시에 놓아준다. 내 앞에 놓아준 고기는 나에게 따듯한 위로가 되었다. 그를 만나 차가운 회색빛 인생이 온기로 붉게 번져가는 느낌이었다. 


연애를 시작하며 나는 남편에게 아빠 같은 든든함을, 엄마 같은 온화함을 느꼈다. 남편은 내가 하는 일에 늘 응원을 보내고 진심으로 잘 되길 바랐다. 내가 무엇을 이야기하든 묵묵하게 들어주고 내가 방황하고 거리를 두었을 때조차 기다려주었다. 



이런 남자와 결혼하지 않은 것은 내가 이번 생에 영원히 결혼하지 않겠다는 선언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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