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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담 Sep 03. 2019

너의 이름은

#3. 크리스털 롤러코스터 백작





우리 부부는 결혼 후 지금까지 서로를 ‘여봉봉’이라 부르고 있다. 여보, 당신이라 부르기엔 맞지 않은 옷을 입을 듯 어색하고 노숙한 느낌도 들어 ‘여보’를 변형한 나름 장난스럽고 애교 섞인 호칭이었다. 여봉봉은 다양한 어투로 사랑스러운 ‘여봉봉’, 짜증 난 ‘여봉봉’, 귀여운 ‘여봉봉’, 살이 쪘을 땐 ‘뚠봉’, 쌀쌀맞을 때는 ‘쌀봉’등 필요에 따라 변형하거나 말투를 바꾸어 불렀다. 

남편은 나의 ‘여’를 뺀 ‘봉봉’과 ‘뱅뱅’을 가장 무서워했는데 내가 ‘봉봉’으로 시작하면 그 뒤엔 잔소리가 이어질 것이 분명했고 ‘뱅뱅~’으로 시작하는 말 뒤에는 부탁이나 강압적 요구가 뒤따랐기 때문이었다. 결혼 후 지금까지 쭉 사용 중이니 여봉봉이란 단어는 우리 부부에게 자연스럽게 녹아 있었다. 서로에게 감정이 상해 언성 높여 싸울 때도 ‘여봉봉이’이라 부르며 따지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참 싸울 맛 안 나네……’하고 그만둔 적도 있다. 

 

우리 부부가 여기저기 서로의 애칭을 남발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도 ‘여봉봉’이라는 호칭을 자제할 때가 있는데 낯선 사람을 만날 때 그리고 시댁에 갈 때이다. 굳이 친밀감을 형성할 사이가 아닌 타인에게까지 우리의 애칭을 드러낼 필요가 없었고 그 호칭을 듣는 사람 또한 눈살이 찌푸려지지 않을까 하는 앞선 걱정이 이유였다. 그리고 시댁 또한 칠순이 넘으신 아버님과 어머님의 꾸중이 염려되어 남편과 나의 암묵적 타협이 이루어졌다. 

내가 부르는 남편 호칭은 ‘여봉봉’ 말고도 더 있다. 

 

 

크리스털 롤러코스터 백작. 

 

언뜻 들으면 귀족 가문의 이름 같이 들리지만, 순전히 크리스털처럼 멘탈과 몸뚱이가 약해 깨지기 쉬운 남편, 롤러코스터처럼 감정의 기복이 들쑥날쑥한 예민한 남편을 합쳐 부르는 호칭이다. ‘크리스털 롤러코스터 백작’은 잎이 떨어지는 가을쯤 남편의 장염과 함께 찾아온다. 그때가 되면 남편은 회사에서 매해 겨울에 개최하는 제법 규모 있는 세미나 발표를 준비해야 했고 동시에 대학원 박사 과정도 이수해야 했기 때문에 잠을 자는 시간이 적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아 극도로 예민해져 있다.

 





어느 날 남편이 출근하고 두 마리 고양이들과 놀아주려 방울 달린 고양이 낚싯대를 찾는데 한참을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요 며칠 고양이 장난감들이 눈에 띄게 줄어 있었다. 애들이 놀다 침대 밑이나 소파 밑에 들어간 것은 아닐까 생각하고 찾아보았지만, 그곳에 없었다. 결국 나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새 장난감을 주문하고 커피를 한 잔 마시며 책을 보려 서재에 들어갔다. 읽을 책을 찾고 있는데 책꽂이 맨 위 칸에 뭔가 반짝이는 것이 눈에 띄었다. 저것은 분명 고양이 장난감에 붙어있는 방울이다!


나는 의자를 끌어다 놓고 그 위에 올라가 맨 꼭대기 칸을 들여다보았다. 그곳에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나는 장난감, 방울 소리 나는 장난감 등 온갖 소리가 날 만한 장난감이 가득 숨겨져 있는 게 아닌가! 

분명 고양이들 팔락 거리며 노는 소리가 귀에 거슬렸던 예민한 ‘크리스털 롤러코스터 백작’이 숨긴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기가 차 헛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이내 ‘아이가 생기면 지금보다 더 시끄럽고 정신없을 텐데, 이 남자 괜찮을까……?’ 하는 걱정이 되었다. 남편이 이럴 때마다 아이가 생겼을 때 우리 가정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다. 


나는 1남 3녀 중 셋째 딸이라 늘 북적거리는 집에서 자랐다. 그리고 친정집에 가면 언니들이 아이를 낳아 조카들도 셋이나 된다. 남편이 처음 우리 집에 인사 왔을 때, 어린 조카들 응석에 몸 둘 바를 몰랐고 시끌벅적한 우리 집에 정신이 없었는지 반쯤 영혼이 빠져있었다. 5년이 되어가지만 아직도 그는 적응 중이다. 반면 아직 결혼하지 않은 자식 둘과 함께 살고 있는 시댁은 조용한 절 같은 기분이었다. 뛰어다니는 아이도 없고 그렇다고 시부모님이 말씀이 많으신 편도 아니었다.

고요와 침묵이 가득한 집에 TV소리만 요란하다. 어색함에 몸과 입이 간질거려 적응하기 어려웠다. 나와 전혀 다른 조용한 집에서 30년 넘도록 살았으니 지금 남편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또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 마음 상하기도 하다. 내가 이런 걱정을 할 때면 남편은 아이 생기면 안 그러지~”한다. 아이 생긴다고 사람이 한순간에 변할까? 


아기 딸랑이 장난감을 서재 책꽂이 맨 위 칸에 올려놓는 남편을 상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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