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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담 Sep 06.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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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우리가 남이가-







남편이 낡은 사진을 한 장 가지고 퇴근했다. 사진에는 어린아이 몇 명과 할머니 할아버지로 보이는 노부부가 있었다. 낯선 가족사진에 누구냐고 물으니 회사 이사님이 명예 회장님 낡은 가족사진을 전해주며 사진 복원을 부탁했다는 것이다. 나는 별걸 다 가져오는 남편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결혼 초반, 남편은 회사 일을 집으로 가져오지 않은 날이 없었다. 집에서 저녁을 먹고 난 후 회사에서 가져온 나머지 일들을 처리하느라 12시 넘어 잠들기 일쑤였고 다음날이면 좀비처럼 일어나 새벽 6시 반, 남들보다 이른 출근을 했다. 직장과 집은 구분되어야 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는 나는 그런 남편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런 것까지 오빠가 해야 해?”

 

뭐~ 어려운 것 아니니까 금방 하면 되지!”

 

남편은 가져온 일을 일상처럼 가볍게 치부하고 차려놓은 저녁밥을 맛있게 먹는다. 저녁을 먹고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는데 남편이 주섬주섬 내 앞에 좌식 테이블 다리를 폈다. 종종 방에 혼자 있는 것이 싫다며 TV를 보고 있는 내 앞에 노트북 펴고 일을 했는데, 나는 알고 있다. 남편의 좌식 테이블 자리는 바로 뒤, 소파에 누워있는 나를 움직이지 않고 바로바로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는 것을…

나는 거실에 밥상 다리를 펴는 남편을 제지했다.

 

 

상 펴지 마~. 일하려면 방에 들어가서 집중해서 해,

오빠 타자 치는 소리 때문에 TV 소리 잘 안 들려”

 

 

앞에 앉아있는 남편 등을 발로 툭툭 밀어내며 한소리 한다.

 

 

이렇게라도 여봉봉이랑 같이 있고 싶은뎅 안되나-효?”

 

 

슈렉 고양이 같은 눈을 하고 얕은수를 쓴다. 나는 다시 한번 남편의 등을 발가락으로 밀어내며 거절의 뜻을 밝힌다. 남편은 단호한 나의 거절에 우는 시늉을 하며 서재로 후퇴했다. 






저녁 드라마 한 편을 다 보고 소파에 누워 볼 만한 방송이 없는지 채널 사냥을 하고 있는데 서재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여봉봉~~ 나 이것 좀 도와줘”

 

싫어- 혼자 해”

 

단칼에 남편 부탁을 거절한다.

 

결혼 전부터 혼자 애쓰는 남편이 안쓰러워 함께 밤을 새워가며 일을 도와주었다. 그랬더니 이 남자, 지금까지 이 버릇을 못 고치고 ‘네 일, 내 일’ 구분 없이 집으로 일감을 가져오는 것이다. 가끔은 나에게 공짜로 일거리를 하청 주기 위해 디자이너 부인을 얻은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

 

 

한 번만 도와줘~~~”

 

싫어- 누가 집으로 일 가져오래? 나는 내일 출근을 위해 충전 중이니 방해하지 마세요~”

 

도와줘~~ 이거 도와주면 오빠가 여봉봉 갖고 싶은 것 사줄게요”

 

 

훗! 이럴 줄 알고 얼마 전 쇼핑몰 장바구니에 신상 스커트를 담아 두었다.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서재로 갔다. 최근 도움 요청을 자주 거절하는 나에게 남편이 물질 보상을 제안하기 시작했다. 나는 못 이기는 척하며 야금야금 남편이 주는 보상을 받아먹었다. 하지만 휴식과 충전을 해야 할 집을 스트레스가 가득한 일터로 만들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남편은 책상에 앉아 세월의 흔적으로 드문드문 벗겨진 가족사진과 씨름 중이었다.

 

 

이걸 이렇게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는지 아나요~?”

 

이건 이렇게 저렇게 해서….”

 

여봉봉~ 그럼 이건 어떻게 해야 해?”

 

아니~ 그러니까 그건 이렇게 저렇게 해서~ 아- 나와봐!”

 

 

성격 급한 사람이 관에도 일찍 들어간다고 했던가, 급한 성격 탓에 남편을 자리에서 물리고 내가 직접 보정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남편은 본격적으로 작업하고 있는 내 뒤에 서서 ‘여봉봉이 있어 든든하다, 여봉봉이 없었다면 자기는 못 살았을 것이다, 내일 당장 오빠랑 꼬까옷을 사러 가자’ 등 온갖 감언이설로 나에게 아부했다.

 

사진 보정 작업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빨리 끝내도 될 일이지만 남편 회사 회장이 부탁한 사진이라 노비 근성이 작동되어 세심하게 작업을 한 탓이다. 






최종 저장 버튼을 누르고 오랫동안 경직되어 빳빳해진 허리와 목을 쭉 펴며 벽에 걸린 시계를 보았다.

새벽 두 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하….”

 

 

출근 시간 전까지 내가 잘 수 있는 시간을 계산하고 절로 한숨이 나왔다. 내가 내 회사 일을 이렇게 했다면 특진을 했을 것이다. 그제야 잊고 있던 남편의 존재가 떠올라 주변을 돌아보았다. 남편은 바로 뒤 방바닥에 이불도 깔지 않고 대 자로 누워 잠을 자고 있었다. 남편 발바닥에 얼굴을 묻고 자는 얼룩 고양이 미동이도 보였다. 둘 다 환상의 포즈였다.

 

일을 가져온 사람은 저렇게 속 편히 자고 있는데 정작 나는 내 일도 아닌 것으로 새벽까지 고군분투하고 있었다는 생각에 어이없는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내가 남편이 아닌 타인의 일도 이렇게 해 줄 수 있을까?’ 생각했다. 아마 나는 하지 않을 것이다. 남편도 내가 아닌 타인에게 부탁했더라면 저렇게 잠을 잘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생각을 하니 우리가 진짜 가족이구나 싶었다.



[환장의 캐미] 내 뒤에서 잠을 자고 있는 남편 & 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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