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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희정 May 28. 2024

마흔, 엄마가 됐다

어쨌든 시작됐다.

2020년 10월, 출산 일주일 전인 39주 0일 까지도 아이는 소식이 없었다. 그리고 예정일에도 소식이 없으면 유도분만을 하기로 했는데, 일할 때는 조금 힘들더니 출산휴가와 함께 눕눕 했더니 소식이 없는 걸까? 뱃속에서의 하루가 밖에서의 한 달과 같으니 꽉 채우고 나오면 좋다는 말들이 위안이 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무 소식 없는 아이에 대한 걱정이 함께 온다. 


예정일을 일주일 앞두고 출산을 위한 운동을 시작해 본다. 다행히 집 근처에 산책로가 잘 되어 있어 하루 한 시간쯤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걸으며 아이에게 말을 걸어본다. '아가야.. 언제 나올꺼야? 예정일을 다 채우면 좋다고하니까 예정일쯤 나오자. 그런데 또 예정일까지 안 나오면 엄마 불안하니까 월요일에 나오면 어떨까? 아빠 회사 회의 안 가게 월요일에 나오면 좋겠다. 어때? 할 수 있지, 우리딸? 엄마도 잘 해볼께'






예정일을 앞둔 주말, 알싸한 배아픔이 시작됐다. '아이가 나오려나 보다. 뱃속에서 내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걸까? 아이는 세상에 나올 준비를 하는 것 같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새벽 4시, 갑자기 배가아프더니 본능적으로 이제 진짜 나오는구나 싶어졌다. 진통이 시작되고 진통주기가 짧아지며 피가 나왔다. 5시30분에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기존에 출산 징후 없고, 유도분만 예정이고, 초산이니 더 참고 9시쯤 외래진료를 보라'는 딱딱하고 사무적인 이야기가 들려왔다.


온라인 검색을 통해 심호흡을 하고 자세를 바꿔가며 자는 신랑을 깨웠다. 신랑에게 병원 통화 내용을 전달하고 병원에 가자고 했지만, 신랑은 잠에 빠져 씻으려 하지 않았다. 더는 못기다리겠다고 하자 그제야 씻으며 출근준비를 했다. "진짜 나올 것 같다고, 어차피 출근 못한다고, 모자쓰고 가자"고 했지만, 신랑은 출근 준비를 마치고 8시가 넘어서야 병원으로 출발했다.


너무 아픈데도 일단 순서에 따라서 접수를 해야한다. 앉지도 서지도 못하겠는 어정쩡한 상태에서 혈압을 재고, 체중은 패스한 채 어찌할바를 몰라 안절부절했다. 가족분만실을 할지, 병실은 어떤걸 할지... 나는 모르겠고, 의사나 간호사가 나 좀 봐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입원 수속을 마치고 정신을 차리고 시계를 보니 9시 20분이었다. 아파 죽겠는데 병원 오픈시간을 기다리고 접수가 된 걸까? 그래도 누웠으니 다행인 걸까? 원망과 안도가 함께 온다. 간호사가 들어오고 이런저런 질문을 하고 상태를 확인하더니 "풀"이라는 말과 함께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이미 출산이 시작되었다. 늦었다..... 무통주사는 맞을 수 없었다.



그렇게 호흡과 힘주기를 몇 번~ "으앙~으앙~"하는 우렁찬 울음소리와 함께 몸에서 묵직한 무언가가 빠져나간 느낌이 들었다. "탯줄이 감겨 있었구나~"하는 의사 선생님의 이야기가 들렸고, 고생했다는 신랑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낳았구나'


신랑이 탯줄을 자르고 간호사가 갓 태어난 아이를 보여주며 아주 잠시 젖을 물리고 데려갔다. 순식간에 뭔가 훅 지나갔는데, 시간이 지난 지금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첫 만남은 울음소리가 엄청 컸고, 파랗고, 빨갛고, 까만 아이였다.(머리숱이 많았다) 다만 '드디어 엄마가 됐구나..' 싶었다.






의료진과 신랑, 아이까지 모두 나가고 병실에 홀로 남았다. 고개를 들어 분만실 시계를 보니, 분만실 침대에 누운지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다. 끝났구나 싶으면서 오랫동안 함께하던 아이가 없는 나의 배가 허전고 공허했다. '나는 누구? 여긴 어디?' 하는 느낌으로 멍하게 있었다.


그리고 옮겨진 병실, 신랑이 보여주는 낯선 아이.. 3.48kg , 51cm의 파랗고 빨갛고 띵띵 부은 내 아이. '누굴 닮은 거지?' 첫 면회 시간에는 움직이기가 어려워서 사진으로 만났었는데, 두 번째  면회시간엔 유리창 너머로 실제로 만날 수 있었다. 그 사이 아이는 조금 더 뽀얘졌다. 나를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신랑을 닮은 것 같기도 했다. 영상 속 아이가 꼬물거리는데 신기하기도 하고 낯설기도 했다.


드디어 첫 만남. 사진이나 영상과 달리 엄청 작았다. 작은 아이가 꼬물꼬물 움직이고, 하품을 하고, 입을 앙 다문다. 이제야 귀엽고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안녕 아가? 내가 엄마야. 앞으로 잘해보자"


그렇게 매번 아이를 볼 때마다 더 사랑스러워졌다. 더 귀엽고, 더 예쁘고, 움직임 하나하나가 신기하고 몽글몽글 간지러운 느낌이었다. 뭔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들었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아이에게 빠져들어갔다. 마흔, 엄마가 됐다. "우리에게 와줘서 고마워, 아가야. 사랑해, 내 딸. 공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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