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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우라 고리유 Jan 27. 2024

제49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인터뷰 화법

자극적인 소재를 정갈하게 말하고 싶다면, 고레에다 감독이 좋은 예시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개인적으로 고레에다 히로카즈를 좋아하는데요. 그 감독님의 화법이 있더라고요. 굉장히 상냥하면서 세밀하기에 메시지 전달 시에 빈틈이 없을 정도랄까요. 제구력이 완벽한 피처가 너클볼로 스트라이크존 한가운데를 꽂아버리는 느낌이 듭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이론 생각도 들더군요. 저는 이것이 일본인 특성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일본인에 대해서도 잘 모를뿐더러) 상냥하면서 부끄럽지만 자기 소신을 말하는 태도는 굉장히 세련된 사람만이 가지는 소양이라고 생각해요. 인간에 대한 이해력이 매우 풍부해야 생길 수 있는 능력이기도 하고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인터뷰 내용이나 대담들을 보면, 불편한 내용이 굉장히 많이 나옵니다. 그의 영화 주제들이 굉장히 예민한 사회 이슈적인 부분들을 건들기도 해서인데요. <걸어도 걸어도>, <어느 가족>, <괴물>,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모두 도덕성 이슈가 끼어듭니다.


 그럴 때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진가가 드러납니다. 더럽지도, 징그럽지도 않고 오히려 차분한 느낌이 더 강합니다. 그는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일단 긴가민가한 표정을 하면서, 당당한 자세를 유지합니다. 거기에 상냥하기까지 지 더해서요.


 예컨대 이런 추임새를 하면서 시작해요.

"음... 뭐랄까요. 뭐라고 말해야 할까요"라고요.

 

 듣는 사람 입장에서. 즉 수화자 입장에서 이런 서두를 먼저 접하게 되면 기분이 어떨지 상상해 보세요. 벌써부터 마음이 편안해지죠. 예민한 주제를 다루는 사람이 이렇게까지 고민이 많은 흔적을 비춘다면, 듣는 사람과 의견이 정반대라도 일단 경청은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으세요? 저는 그렇게 생각됐습니다.


 그래서 저도 문체를 바뀌었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처럼은 아니겠지만, 상대방이 듣는다는 전제하에 생각하면서 글을 쓰면, 지금처럼 쓸 수 있겠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예전 문체와 지금 제 문체를 비교해 보면 참 많은 차이가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독자를 고민한 글인가 아닌가 유무죠. 굉장히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만 어쨌든 그렇습니다. 그러니 더욱더 제 생각이나 제 소설 혹은 제 이야기를 더 성실하게 쓸 수 있겠다는 에너지가 생기더라고요. 덤으로 무언가를 더 얻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또한 위 내용과는 별도로 다른 생각도 생각났어요. 고레에다는 왜 배려심이 가득 묻어나있는 글을 썼을까 잠시 고민해 봤어요. 그러자 역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어쨌거나 대중예술가, 상업예술가라는 점이었요. 즉 자신의 창작물로 밥 벌어먹고사는 사람이라는 거죠. 꽤나 유명한 그리고 성공한 사람으로서요. 좋은 본보기가 될 정도로요.


 정리하자면, 민감한 소재일수록 서두에 많은 밑밥을 깔아 두는 것이 핵심입니다.  본론으로 들어가면서부터는 조심스럽게 삶은 달걀을 까듯 천천히 벗겨 말하면, 듣는 이 입장에선 불쾌하지 않다는 거죠. 물론 제 생각입니다.


  어쨌든 저도 그를 따라 하지 않고선 어떠한 판권 및 출간 계약도 하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이 명확하게 났어요. 독자 혹은 팬들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돈을 벌 수가 없는 것이죠. 조금 더 깊게 생각해 보니, 정말이지 그것도 고려하지 않고 상업예술을 한다면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네요. 혹시 싸가지없게 상업예술, 대중예술을 하는 아티스트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이 글을 왜 쓰냐면요. 개인적으로 이런 맥락을 기록으로 남겨두고자 해서 쓰는 게 첫 번째이고요. 두 번째는 언제 즈음, 어느 날 문득, 유명한 출판사의 제안서를 기대하면서  씁니다. 나중에 제가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요. 사람 일은 정말 모릅니다. 어떻게 될지요. 잘 될지, 못 될지, 사라질지, 없어질지, 어떻게 죽을지, 어떻게 망가질지 등 말이에요. 저도 살아보니까 확실히 종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어쨌거나 이야기가 길어졌네요. 칼럼치곤 너무 길죠. 지금까지만 해도 아직 서론 밖에 안 되는 내용뿐이네요. 참 민망하네요. 다음 칼럼으로 또다시 쓸게요. 또 다른 생각이 있긴 합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떤가요. 어쨌든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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