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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준식 Jun 04. 2024

수재민이 되었다

[MyBizStory(15)] 숙대 앞 PC미션 창업기 3편

숙대 상권을 배경으로 한 나의 창업이야기를 이어간다. 지난 2회는 A4 4장 분량이 넘어 상당히 길었는데도 굉장한 호응이 이어져 용기를 얻었다. 2016년에 펴낸 저서 <망하지않는창업>의 독자도 만나게 되고 소소한 행복을 느끼고 있다.

지난 회에서는 상권의 정지성에 이어 반쪽상권이라 불리는 대학상권의 어려움을 이야기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이뿐만이 아니었을뿐더러 어마어마한 천재지변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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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여름은 유난히 비가 많이 왔다.

지하 공간에 있었던 우리는 높은 습도가 불만이었지만, 에어콘이 없던 시절이라 덕택에 시원한 여름이라며 위안 삼곤 했다. 방학이 길어지며 매출이 저조해 불안했지만, B2B 영업을 통해 적자를 최소화하며 악착같이 버티고 있었다.

속이 답답한 나는 사람들을 만나러 다녔다. 마침 인근에 있었는데 전화가 울렸다. 갑자기 느낌이 불길했다.

"형!!!! 빨리 와봐!!!"

전화가 곧 끊어졌다. 무슨 사고가 난 것 같았다. 상황이 궁금해 다시 전화를 걸었으나 받지 않았다. 발걸음을 서두르며 멤버들에게 연락했다. 무슨 일이 생긴 거 같다고! 일단 매장으로 복귀해 달라고...!!!

다시 전화하니 여전히 다급한 목소리로 "큰일 났어! 물 난리 났어!" 머릿 속이 하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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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얘진 것은 단 1초 뿐, 걱정거리가 차례대로 몰려왔다. 꽤 깊은 지하라 걱정되는 점도 있었고 누전사고가 발생할 경우 인명사고가 날 수도 있다. 매장 구조와 배수구들을 떠올리며 하수가 역류했다면 어디서 역류했을까, 입구 도로 쪽에서 넘쳐난 빗물이 들어간걸까 온갖 경우의 수를 생각했다.

매장 문을 여는 찰나의 시간이 매우 길게 느껴졌다. 문을 열고도 계단을 한 번 내려가 나무 문을 또 열어야 우리의 공간이다. 첫째 문을 열었을 때는 몰랐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두 번째 문이 열려있었고, 불과 1초의 시간이었겠지만 그 사이에도 물이 차오르는 게 눈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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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욱하고 습한 공기와 역한 냄새가 올라왔다. 순간 천정을 봤다. 전등은 켜져있다. 다행히 전기는 나가지 않았다. 갑자기 뭔가를 들고 동생이 나타났다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온몸이 땀과 물에 범벅이 되어 있었다.     

"형! 주인집에 전화해!"

이 한 마디에 피해가 크다는 걸 직감했다. 주인집에 전화를 거는데 받지 않으시다가 한참만에 사모님이 전화를 받으셨다. 사모님은 관절 질환으로 한쪽 다리를 절고 계셔 몸이 불편하셨다.     

"이를 어째? 우리 아저씨 내려가보라고 해야하는데 지금 없어!"

그래도 잠시 후 사모님이 바가지와 바께스, 걸레 등을 가지고 와 전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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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는 그쳐가는데 갑자기 물난리라니!! "대체 어디서 올라오는 거야?" "조심해! 벽면 콘센트 봐봐!" 동생 혼자 매장을 지키다 일이 터진 거다.

이제 제대로 살펴보니 급한 대로 쓰레기통을 해체해 쓰레기통 뚜껑으로 파란 몸통에 물을 퍼담고 있었다. 당장 매장 밖으로 나갈 수 없으니 구석에 있는 개수대 하수구로 오수를 버리고 있었다.

나도 손에 잡히는 뭔가를 들고 문 밖으로 물을 퍼 날랐다. 1시간쯤 계단을 계속 오르내리다보니 너무 힘들었다. 이때 즈음 다른 멤버들이 도착했다.

잠시 교대하며 쉬는 사이 건물 사장님과 다시 연락했다. 사장님과 통화한다고 해결되는 건 아니지만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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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물을 퍼내었다 싶어서 잠시 숨 돌리고 있었다. 컴퓨터, 컴퓨터부품, 서류, 집기 등이 많이 젖어있었다. 이거 얼마나 살릴 수 있을 지 걱정되었다. 다들 지친 것도 있어 지하 공간에 서서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는데 '퍽'하면서 벽이 터지며 물이 거의 직선으로 쏘듯이 뿜어져 나왔다.

당시의 느낌대로만 표현한다면 직경 10센치미터의 물줄기가 2미터 정도 직각으로 뿜어져 나왔는데 작은 줄기로 잦아지며 모든 물이 다 쏟아져 나오기까지 30분은 걸린 것 같았다.

처음에는 온몸으로 물줄기를 막아보려고도 했다.

"하지마! 미친 짓이야! 그러다 감전돼!"

새나오는 물을 사람이 몸으로 막을 수도 없지만 전기 콘센트가 발원지라 진짜 위험했다.

그러고 보니 찌릿찌릿하는 누전이 없는 게 신기했다.

다들 미친듯이 물을 퍼 한 사람은 화장실에 버리고, 한 사람은 개수대에 버리고, 한 사람은 계단 위로 올라가 매장 밖에 버리고 누구는 들통을 계단 앞까지 옮겼으나 5분 지나 동생이 외쳤다.

"멈춰! 이거 어쩔 수 없어!" "다 끝나봐야 뭐라도 할 것 같아"


첨부 이미지는 AI 생성 이미지: 그런 상황 속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을 리가 없잖나?


다들 밖에 나왔다. 공기가 너무 좋았다. 하늘은 개이고 있는데 왜 우리 매장은 물 폭탄을 맞았을까...

흡연하는 후배들은 담배를 빼 물었다. "어째 그건 안 젖었네?" 다들 구정물에 젖은 데다 땀으로 범벅이고, 얼굴은 땀인지 눈물인지에 얼룩져있었다.

급히 달려온 방수 사장님 이야기를 들어보니 건물을 보호하는 방수벽이 파괴되며 방수벽이 막아주며 쌓였던 모든 물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와 이렇게 된 거라고 한다. 처음 물난리도 시작에 불과했고, 두번째 물난리가 본판이었던 거다. 문제는 이걸로 끝이 아니란 이야기였다. 방수벽이 파괴된 이상 다시 물난리가 날 거란다. 아직 장마철이고 태풍도 덜 지나갔으니 방수벽 깨진 곳으로 또 물이 들어올 거란다.     

"공사는 언제 가능할까요?"

"공사는 지금 안돼야!!"

비가 많이 와서 사방팔방 방수공사가 널렸고, 건물이 건조된 상태에서나 가능하기에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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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울고 싶다!"

다들 이런 말을 중간중간 뱉으며 묵묵히 물을 퍼냈다. 무릎까지 차오른 마당이라 모든 작업이 단순했다. 들통에 물을 담는다, 들고 올라간다, 물을 버린다, 다시 내려간다. 정강이 깊이 까지 물을 퍼냈을 때 다들 나를 위로했다.     

"형은 사장이니까 정신 차리고 있어 일은 우리가 할게"

이미 해가 졌지만 거래처 몇 군데에 전화를 돌렸다. 하루 정도 말미를 얻어야 할 곳들이 많았다. 피해를 극복한 돈을 벌기 위해서 영업을 위한 전화도 여러 군데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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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지쳐서 차 안에서 골아 떨어졌다. 일부러 음악을 크게 틀고 다마스를 몰았다. 강변북로 지나 동부간선도로로 오는데, 한강도 중랑천도 물이 불어 있었다. 하루 종일 눈 앞의 풍경이 물로 가득 차 있었다. 아 그래서 눈물이 나오지 않는 거였구나 싶었다. 

멤버 대부분이 같은 지역에 살고 있어 거의다 도착할 즈음 깨웠다. 다들 고생했고, 기운을 붇돋아주고 싶어서 고기라도 먹으러 가자고 했는데 거절했다. 핑계는 너무 피곤하고 몸에서 썩은 내가 나서 얼른 씻고 빨래 돌리고 자고 싶다는 이야기다.

말이 그렇지. 그날의 손해를 절감하기에 한 푼이라도 아껴주고 싶었던 거다. 좋은 동생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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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몇 차례의 물난리가 더 났다. 방수 사장님이 결정적인 이야기를 해주었기에 침수 피해가 최소화되도록 나름의 조치를 취할 수 있었다. 피해를 복구하는데 1달의 시간이 걸렸다. 피해 이후에도 피해가 계속되었다. 

방학이 끝나고 개강 시즌을 앞둘 즈음 방수공사가 들어왔다. 지하공간에 중장비가 들어왔고 뜯고 부수고 찢어내느라 시끄러운 건 둘째 치고, 어마어마한 먼지가 가득해 일을 할 수 없게 했다.

그래도 다들 열심히 일해 주었다. 고장 수리 들어온 컴퓨터를 고객이 있는 현장에서 어떻게든 처리하고, 노천에서 수리하고, 다마스 안에서 수리하고, 집에 가져가서 수리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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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야 매출을 일으킬까? 날마다 고심했다. 지인들에게 전화를 일일이 돌렸다. 숙대 상권에서 돈을 벌지 못하는 대신 서울 시내라면 어디를 가서라도 일을 했다. 하루 200통 정도 전화기록이 남았다. 나중에는 이런 말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다. "비 오는 날 전화하는 게  저의 비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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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얼마나 고된 상황었는지를 설명하다 과거의 흑역사 한 페이지를 또 이야기하고 말았다. 이때의 노력은 2가지 큰 의미를 갖고 있다. 우리의 열심을 보고 하늘이 감동한 건지, B2B 거래처들이 늘어났다.

다른 하나는 부정적인 건데 우리에게 심각한 갈등요소가 이때 잉태되었다. 우선 이 공간을 혐오하게 되었다. 어떻게든 여기를 뜨자는 말이 계속 불거져 나왔다. 그 가운데 업종을 다변화하면서 자연스럽게 전환하자는 나의 의견과 이 업종에 더욱 집중할 수 있는 곳으로 장소를 옮기자는 의견으로 갈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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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장소의 문제가 다시 대두되었고 이번에는 상권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가 아닌, 새로운 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의미에서 숙대 상권과 청파동 일대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깨닫게 된 것은 모이는 상권과 흩어지는 상권의 차이였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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