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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준식 Jun 06. 2024

주말이 되면 변신하는 7일장 상권

[MyBizStory(16)] 숙대 앞 PC미션 창업기 4편

다들 장문의 글을 잘 읽어주셔서 가능하면 일일 연재하려 노력중이다. 지난 회는 반쪽상권의 충격에 이어진 여름철 재난 경험담을 전했는데... 단순한 감성팔이로 영웅담을 만들거나 남자들끼리 술 취해서 누가 더 빡센 군 생활을 했나 자랑하는 그런 취지에서 이야기를 늘어세운 게 아니다.

숙대 상권이라는 큰 상권을 놓고 이야기하다 보니 점포 창업에서 상권과 함께 반드시 고려해야 할 '입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감이 있어 생생한 경험담을 통해

1) 지하 매장의 입지 문제

2) 언덕길 입지의 문제

3) 점포창업에 따르는 천재지변 등의 리스크

...등을 있는 그대로 보여드리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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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 입지 고려사항은 의외로 많다. 그중 CCTV도 있는데, CCTV가 항상 같은 편이 되어 주지 않는다. 방범 CCTV의 사각에 있기에 겪는 피해도 있어서다. 지하에 있는 우리 점포 앞은 상대적으로 으슥한데, 누군가 용변이 급했는지 한 무더기 쌓아놓고 간 적이 있었다.

느낌적인 느낌이 있어서 그날은 매우 일찍 출근했고, 인적이 드물어 다행이었다. 잽싸게 쓸어 버리고, 물청소로 해결했지만 이른 아침에 하려던 일은 못했고, 지역 주민이나 상인 누군가에게 미움살만한 일을 하지 않았는지 곱씹고 반성하는 시간으로 하루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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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입장에선 "에이 더러워! 굳이 그 얘길 왜?" 하거나 하나의 촌극으로 생각해 큭큭 웃으며 넘어갈 수 있지만, 생리적 문제가 급한 딱한 사람의 미필적 고의가 점포에는 치명적일 수 있다.

만약 그날이 점포의 휴무일이었다면? 방치된 시간이 길어지는 만큼 점포를 찾아왔을 고객들에게 상당한 불쾌감을 주고, 그들 중 일부는 다시는 점포를 찾지 않았을 거다. 또한 이런 소소한 것 하나하나가 점주가 점포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불성실한 이미지를 만들기도 한다. 창업에 뒤따르는 리스크이기도 하지만, 이게 나의 잘잘못을 떠나 입지가 어떤가에 따라 달라지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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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드라마나 소설이었다면 물난리를 극복하면서 팀원이 단합하고, 우연한 기회에 만난 재벌 할아버지의 호의로 뭔가 대박으로 이어지고, 로맨틱 코미디까지 갔을 거다. 현실은 절대로 그렇지 않았다.

침수된 이후였기에 아무리 청소하고 조치를 취해도 어딘가에서는 곰팡이가 피어났다. 곰팡이 냄새에 취해 정신이 어질할 때도 있었고, 물티슈로 팔을 스윽 훔치면 푸른색 가루가 묻어나올 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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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에게 문의하니 에어콘과 제습기를 틀라고 하는데, 그나마 남은 건 에어콘 기능이 망가진 냉온풍기였다. 고치는 돈이나 새로 사는 돈이 같았는데, 300만원 이상의 돈이 드는데 당장 그 돈이 없었다.

신용카드로라도 구매하려 했으나 매일의 매출이 0에 수렴하는 가운데 멤버들의 반대가 컸다. 특히 친동생은 차라리 그 돈을 쪼개 막내들 월급으로 주는 게 낫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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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판국이니 사기는 떨어졌고, 조직 구성원의 점포 혐오는 매우 컸다. 기분을 풀어주려 회식을 하면 다들 속이 타서 소주를 컵으로 벌컥벌컥 들이켰고, 취하면 "형! 우리 얼른 여기 떠요!"를 노래처럼 불러댔다.

감정적 갈등보다 더 힘들었던 건 앞으로 어떻게 위기를 해쳐나갈까 의견을 모으는 데서 나왔다. 업태, 종목이 상권과 입지에 맞지 않는다는 나의 냉철한 판단과 그나마 우리가 잘하는 걸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입장이 부딪혔다.

결국 2가지를 다 시도하기로 결심했다. 이건 방만한 경영으로 이어지기도 했지만, 팀원들과 다양한 창업실험을 해봄으로써 지금의 내가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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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 환경이 엉망이라 계속된 정비가 필요했고, 게다가 조금이라도 매출을 올리고자 휴일 출근을 결심했다. 아직 더위가 가시지 않아 휴일이 지나면 곰팡이가 심했고, 매장에 오시는 고객들이 불쾌해해서 환기, 청소, 건조작업을 게을리 할 수 없었다. 우선 나부터 모범을 보이기로 했고, 2명씩 나올지, 1명씩 나올지는 진행해 가면서 결정하자고 했다.

특근수당 따위는 언급하지도 않는 악덕기업주 모드였다. 이후 워크샵에서 술에 취해 "형님은 우리의 폐를 이용해 실내 공기를 정화한 거야!" 한 술 더 떠 "악덕기업주!"라 부르는 녀석도 있었다. 물론 장난인 걸 알아 한바탕 웃었는데... 나중엔 평소에도 대놓고 그렇게 나를 놀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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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이때까지만 해도 중소기업은 5일근무제를 의무시행하지 않았다.(2005~2006년 쯤의 상황이니까) 그러다보니 기업 고객들은 토요일 오전 출장을 선호했다. 토요일을 미진한 일을 정리하거나 대청소나 재고를 정리하는 날이었다. 3~4시간 바짝 해놓고 12~13시에 퇴근하곤 했다. 

기업 고객들을 잘 응대하면 큰 매출로 이어지기도 했기에, 토요일 예약이 잡히면 이른 아침에 달려왔다. 아침 7시부터 업무를 진행한 적도 있었다. 물론 일을 다 마치면 7시 정도라 12시간 근무를 하기도 했는데 역시 특근수당을 줄 형편은 안 됐다. 대신 매출이 조금 올랐으니 기쁜 마음으로 동네 단골 중국집에 모여 탕수육 대짜를 시키고 컵으로 소주를 들이부으며 회포를 풀었다.

배경설명이 길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일시적이지만 일요특근을 시도했다는 점이다. 이 시점에서 이곳에 정착하고도 반년 넘게 간파하지 못했던 익숙하지 않은 풍경을 발견하게 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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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근 첫 주는 동생이 나섰다. 그런데 저녁에 집에 돌아와서는 "형! 여기 무슨 큰 교회가 있어? 큰 교회를 본 적이 없는데 성경책을 든 사람들이 엄청 많이 지나다녀!" 금시초문이었다.

사실 청파동에는 유서 깊은 교회들이 많다. 개신교 쪽으로는 청암교회, 청파동교회, 청파교회라는 같은 이름이지만 소속 교단이 다른 여러 교회들이 있다. 천주교는 청파동성당과 순교복자수녀회가 있다.

아무리 성도수가 많아봤자 1000명 이하의 교회 뿐이었는데 믿을 수가 없었다. 숙대 앞 삼거리까지 사람들이 바글거릴 정도면 성도수 1만 명 수준의 메가처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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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나름 교회오빠였지만 모르는 건 모르는 거다. 선배들에게 물어보니 "너 삼일교회 모르냐?"라고 하는 거다.

삼일교회. 익히 들어본 유명한 교회였는데, 용산구에 있다고만 알았지 이 동네에 있다는 건 몰랐다. 아직 청파동 1,2,3가의 모든 골목을 다 가보지 않았기에 삼일교회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금 핑계를 대자면 상권의 정지성 개념 때문에 고객이 우리를 찾아올 동선이 짧다고 보고 청파동2가 뒷골목 쪽만 의식하고 있었다. 숙명인재관까지를 고객동선으로 보고 반쯤 포기한 상태에서 다른 지역에서 올리는 매출에 힘을 실었기 때문이다. 당시 조립PC업체 몇 군데와 B2B 거래를 트고 AS 업무 대행을 하며 연명해 나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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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교회에 대해서는 필요한 설명만 하겠다. 용산경찰서 옆 골목에 있는 오래된 교회인데, 90년대 중반을 넘어서며 청년층을 중심으로 한 큰 부흥이 일어났다. 그러다보니 교회 공간이 좁아졌는데, 교회를 신축하기 보다는 숙대 강당을 빌려 종교행사를 하고 있었다. 정확한 기록을 찾아보니 1999년 4월부터 2009년 4월까지였는데, 다시 언급할 일이 있을테니 기억해주기 바란다.

대체 어느 정도의 규모인지 궁금해 삼일교회의 예배에 참석해 보았다. 강당에 접이식 의자를 펼쳐놓았는데 한 회차에 1000명 정도는 수용가능한 것 같았다.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은데

오전부터 늦은 오후까지 6부예배까지 드렸던가 그랬다.

청년들이 많다보니 예배를 마치고 작은 모둠으로 다시 모여 이런저런 활동이 이어졌다. 그러니 이들이 다시 헤처모이고 어딘가 모임 장소를 찾아 움직이다보니 숙대입구부터 삼거리 아래 쪽까지 사람들로 넘쳐나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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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지도 캡쳐)


진짜 신세계였다. 일요일 하루만은 오르막길 상권, 내리막길 상권이라는 숙대상권의 핸디캡은 의미가 없었다. 교회 하나 때문에 멀티플렉스를 가져다놓은 집객효과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상권의 정지성 측면에서 보아도 평일의 숙대상권과는 사뭇 달랐다.

사람들의 발걸음은 숙대 삼거리 상점가를 지나 큰 길인 청파로 남북으로 퍼져갔고, 삼일교회가 용산경찰서 옆골목에 있다보니 동선은 원효로를 타고 지금의 남영역 앞 열정도 근처까지 이어졌다. 일부 인파는 동쪽으로 더 움직여 숙대입구역 건너편까지 진출했는데, 지금 용리단길이라 부르는 곳까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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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권이 정지하는 지점이 이렇게까지 멀어진 건 단순히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가 아니라 역동적인 에너지를 지닌 청년층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걸 발견하고 나서는 머리가 더 복잡해졌다. 이게 우리 업체에게 기회가 될 것인가, 아니면 아무런 상관이 없는 걸까?

몇 가지 시도를 했지만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아무런 기회를 얻을 수 없었다. 사람이 아무리 늘어난들 이들의 목적은 컴퓨터 수리나 소모품 구입과는 관련이 없었고, 인파가 늘어나다 보니 사람에 가려 매장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길가에 잠시 세워둔 업무차량이 눈에 제대로 띄지 않아 잠깐 한눈 판 사이에 주차단속 딱지를 끊거나 견인까지 당했는데도 모르고 넘어가는 일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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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싼 대가를 치르고 교훈을 얻었으니 다시 정리해 보겠다. 연재 1회에서부터 상권의 정지성을 언급했는데, 상권의 정지성은 지형에 의해서도 발생하지만 집객요인에 따라 달라지고 집객된 사람들의 계층에 따라서도 달리 나타난다는 점이다.

앞에서 살짝 설명되다 말았는데, 우리 점포를 찾아올 고객동선을 점포를 기준으로 원을 그려 잡지 않고, 점포 뒷쪽 골목의 숙명인재관 정도로 축소해 잡은 것도 상권의 정지성과 관련성을 갖는다.

1만명이 오가는 대학이라 좋아할 수 없는 게 그 정도 인원을 수용하는 넓은 캠퍼스가 상권단절의 주범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숙대는 언덕 지형의 한계로 면적이 작은 학교인데도 주민 입장에서 학교를 가로지르느니 다른 내리막 샛길을 이용해 움직이니, 숙대상권은 사람이 모이는 상권이 아닌 '흩어지는 상권'일 수밖에 없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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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모든 대학이 흩어지는 상권은 아니다. 지금은 맛이 가버렸지만 이대 앞 상권, 연대 앞 상권은 우리가 숙대 앞에서 장사를 할 때만 해도 집객 최고의 상권이었다. 홍대 앞 상권도 마찬가지다. 뜨는 상권 중의 하나였고, 이때 아마 홍대 앞에서 상수, 합정방면으로 한참 상권이 확장되고 있었다. (이 이야기는 매우 중요한데, 속히 다루도록 하겠다.)

여튼 단순 관찰을 통해 내린 결론이지만, 흩어지는 상권에서는 소비가 억제되고 모이는 상권에서는 소비가 촉진된다. 말을 바꾸면 이렇다. 흩어지는 상권에선 어떻게는 돈을 아끼고 모이는 상권에선 어떻게든 돈을 쓴다. 즉, 숙대 상권에선 월~토요일까지는 돈이 돌지 않고 일요일 하루는 엄청난 돈이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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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어지는 상권에서는 정말 돈을 쓰지 않으면 안 되는 데서 소비가 발생한다. 그러니 생존욕구와 생리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품목 위주로 소비가 활성화된다. 컴퓨터수리와 판매는 이런 욕구와는 관련이 없다. 이러니 이곳에 컴퓨터 업체가 존재하지 않았던 거다. 경쟁업체가 없어서 좋은 곳이 아니라 경쟁업체가 하나도 없을 정도로 척박한 불모지였던 거다.     

1만의 학생, 2만의 주민등록인구, 출근시간 유동인구 2만명... 신기루와 허상에 지나지 않았고, 실고객 100명이 안 되는 사지나 다름없는 곳에 왔던 거다. 게다가 2년이라는 계약기간에 묶여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한 거다. 처음부터 들어와서는 안 되는 곳에 들어왔으니

무리를 해도 안 풀렸던 거다.

이런 일이 벌어진 건 초기자본이 충분치 못했고, 상권과 입지를 보는 안목이 너무 부족했고, 이를 도와줄 인맥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은 과거만큼 자책하지 않는다. 컴퓨터 수리업체를 위한 상권분석 전문가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나마 유사한 성격의 점포는 세탁소다. 세탁소의 입지를 보면 컴퓨터수리업과 유사한 점이 있다. 컴퓨터수리점 자리를 찾기가 애매하면 동네세탁소 들어갈만한 곳을 뒤지는 것도 하나의 해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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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15년 지났으니 생각정리가 되어 이 정도 정리라도 있는데, 당시는 너무 절박해 뭐라도 알아내려 조직원을 풀어 저인망 정보수집을 했다. 다들 어떻게 먹고사나 했더니 일요일 모인 삼일교회 청년성도들 덕에 큰 수익을 내고 있었다. 주말 매출로 고정비를 벌어내고, 평일 매출이 번외수입인 점포 사장님들이 알부자들이었다.

그제서야 이해가 안 되던 몇 가지 의문이 풀렸다. 그 의문은 이거였다.

1) 상점들이 숙대생들에게 의외로 불친절하다.

2) 사장님들이 장사를 열심히 안한다.

이건 이들에게 자연스런 선택과 집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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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대상권에서 버티고 버티며 얻은 교훈은 이것 외에도 많지만 여전히 상권 이야기는 많이 남아있다. 업종다변화와 업종집중을 동시에 꽤하다보니 우리는 다음 변신을 앞두게 되었다. 제조업을 시작하게 되었는데,그러다보니 상권과 입지의 성격이 달라졌다.

다음으로 우리가 자리잡은 청파로47길은 외부관광객이나 좋아하는 주말 거리임을 재확인했다. 고정고객을 확보하기 위해선 정주성이 특징인 골목으로 옮겨 가야함을 깨달았다. 이후 우리는 3개의 거점을 더 확보하게 된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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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BizStory #상권 #입지 #모이는상권 #흩어지는상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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