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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준식 Jun 11. 2024

1억짜리 얼굴신용으로 기사회생

[MyBizStory(19)] 숙대 앞 PC미션 창업기 7편

모니터 100개 입출고 퍼포먼스는 제조업 시작의 활로로 이어졌다. 사실 제조업을 하려면 제조설비 투자가 이루어져야만 하는 줄 알았다. 사업아이템 변화를 시도하며 여러 사업자들을 만나고, 벤치마크를 하다보니 제조업의 문턱이 생각보다 높지 않은 걸 알게 되었다.     

제조업의 시작은 '임가공 계약'을 통해서 가능해진다.

1) 설비, 공간, 인력이 없어도 제품기획력과 판로만 있으면 제조업을 시작할 수 있다. 구상한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찾아가 임가공계약을 맺으면 이 계약서를 근거로 사업자등록에 제조업을 추가할 수 있다.

2) 반대로 설비, 공간, 장비가 부족해도 임가공계약을 통해 공장을 시작할 수 있다.

반제품의 완제품화나 부분적인 가공만으로도 임가공계약이 가능하고, 이 계약에 맞춰  공정이 이루어진다는 걸 증명할 수 있으면 사업자등록에 제조업을 추가할 수 있다.     

1)처럼 공장이 없어도 분업과 협업 형태로 공장을 확보하면 제조업을 시작할 수 있고, 2)처럼 완제품을 제조할 수 없어도 분업과 협업 과정이 공장 형태의 사업장을 운영하게 하면 그것도 제조업이다.

봉제 하청공장들을 떠올려 보면 재봉틀 1~2대나 공업용 다리미 2~3대만 가지고도 한평짜리 공장이 돌아간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그런 형태로 제조업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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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우선 순위가 뒤죽박죽이긴 한데, 본격적인 임가공 제조의 길을 열어준 건 또 다른 기회도 작용했다. 너무 극적인 일이라서 에피소드를 구체적으로 소개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여름철 물난리 이후 매출이 너무 저조해서 몇 달 동안 적자가 누적되었다. 얼마 주지 못하던 월급인데 2달치나 밀려서 심각하게 고민하던 중이었다. 

숙대 앞에 오기 전까지 수년간의 이야기를 생략하고 넘어왔는데, 그 당시에도 두어번 같은 위기를 겪은 적 있다. 멤버들이 뿔뿔이 흩어졌고, 유통기한이 지난 초코파이 수십박스를 얻어 그걸로 점심식사를 대신하던 때도 있었다. 당시 고생을 함께했던 멤버는 내 뱃살 시작이 당시 먹었던 초코파이 속 마시맬로우가 체내에 축적되어 형성된 거라고 놀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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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을 얼마 앞둔 시점인데 빈손으로 고향을 다녀오게 할 수 없어 백방으로 뛰어다녔지만, 뾰족한 수가 나지 않았다. 너무 절박해서 조급함이 극에 달했다. 잠을 자든, 만화책만 보든, 살려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든, 차라리 맘 편히 웃고 울든 조용히 어딘가 짱 박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정신적으로 쫓기는 하루하루가 계속 누적되니 밤에 잠도 못 자고, 짜증만 늘었다. 화를 참지 못하는 상황도 계속되어 잠시 무리에서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망했다"고 선언할 때 선언하더라도 좋은 관계를 회복한 다음에 말해야

각자의 갈 길을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마음을 다잡기 위해  2박3일 일정으로 버스를 타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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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 후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았는데 갑자기 매장에서 찾는 전화가 울렸다. 돈 없이 떠나보니 내가 묵은 숙소는 전화가 터지지 않는 곳이 많았는데, 때마침 잘 연결된 거다.

동생의 다급한 전화다. "무슨 학교라고 하는데, 와서 하드디스크를 교체해줄 수 있느냐는데 견적서를 보내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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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견적서 작성은 내가 직접 했다. 컴퓨터및주변기기 업종의 애매한 점이 다품종 소량 부품의 조합이라 원가에 마진 붙여 견적을 작성하는 게 까다로운 면이 있다.

일반적이 개인고객의 경우, 업자에게 눈탱이를 맞지 않으려고 근거자료로 견적서를 달라고 하기 때문에 사전견적서로 인한 트러블은 거의 없다. 말로 어느 정도 협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업고객의 경우, 견적서를 토대로 품의를 올리고, 품의가 떨어져야 발주를 주기 때문에 최소 1~2주의 재고와 시세를 감안해 견적하지 않으면, 추후 재고가 없어 난감해질 경우가 있다. 그래서 견적서 작성은 달랑 1장 짜리 문서 작성의 수준이 아니라 손해 볼 각오, 최종적인 책임이 수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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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업체는 쉽게 장사했지만, 우리 업체는 어렵게 장사하다 보니 동네 가게에서 경험하지 못하는 희귀한 사례가 많았다. 한 기업의 경우는 컴퓨터 및 주변기기 개비에 앞서 회사 내 컴퓨터에 대한 진단서를 요구해왔다. 알고 보니 다른 업체들이 그런 거 못한다고 거부해 우리 업체에 일이 들어온 케이스다.

입고증, 출고확인서, 수리내역서, 유지보수 내역서, 진단서, 경위서 등 창의적인 서식을 작성했던 기억이 새롭다. 이런 것 하나하나가 모여 브랜딩으로 연결되었고, 나중에는 고객의 신뢰가 가득해 미수금 제로라는 진기록이 나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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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이야기로 돌아가면, 당장 견적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내가 자리에 없다 보니 동생이 대신 견적서를 작성해야 했다. 

발생한 문제는 2가지였다. 거래처 업무를 내가 주도하다보니 부품단가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다. 다음으로 서식에 익숙하지 않다보니 작성이 간단하게 느껴지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오기재하게 된 거다.

그런데 이 2가지가 크나큰 행운으로 이어졌다. 학교 측이 원한 HDD는 삼성전자가 생산하는 특정 모델로, 일반 유통시장에서는 구할 수 없는 거였다. 나중에 알고보니 학교가 사용하던 PC가 삼성전자 PC였는데, 여기 장착되어 있던 삼성HDD의 모델명으로 주문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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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들은 HDD 제조사와 용량 정도로만 제품의 종류와 존재유무를 파악하지만, B2B 영역으로 들어오면 복잡해진다. 당시 HDD 회사들은 OEM제조사 대상으로도 HDD를 납품했다. 제품 자체가 다르다기 보다는 OEM제조사와의 거래조건에 따라 제품코드를 다시 부여했고, 제품코드가 달라지니 유통채널에서는 다른 제품으로 취급했다.

예를 들면 제조사에 파격적인 할인을 제공하는 대신 AS조건에 제한을 두는 거다. 유무상 AS기간의 차이를 두거나 삼성전자 AS센터에서 AS가 가능 여부의 차이다.

원래 상법에 의해 전자기기의 핵심부품은 3년 무상으로 AS를 해주도록 되어 있다. (지금은 2년 무상으로 변경됨) 이 법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 제조사 정책조차 제각각이었다. 또 부품으로만 판매할 경우에는 법의 적용이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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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잘 나가던 조립PC업체들은 구매규모 이용해 공급가 할인을 끌어냈는데 그 방법 중의 하나가 AS조건을 제한적으로 가져가는 방법이었다.

싸게 받는 대신 AS는 DOA분량으로만 한정한다든가... DOA는 Dead on Arrival의 약어로 초기불량율만큼의 수량을 추가수령해 그 물량으로 AS처리하는 경우다. 이를테면 DOA가 5%로 잡혔다면, 100개 주문시 105개를 배송받고 여분 5개로 자체적으로 AS를 감당하는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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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AS 기간의 조정이다. 시판부품이 무상 2년이라면 무상 1년으로 제한한다든가... AS 대리점을 통한 편의를 포기하고 본사와 직거래 한다든가... 엄밀히 말해 기술적인 문제 해결이 아닌 유통망을 어떻게 효율화하느냐로 가격의 특혜를 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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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떻게 OEM 모델을 주문했냐고? 추측하건대 2가지 이유다. 우선 우리 업체가 용산구에 있어서고, 담당자는 다나와와 에누리 사이트만 보고 업체 컨택을 했을 거다.

다나와, 에누리 등록업체들은 최저가 장사만 하는 곳으로 까다로운 B2B 고객은 상대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처럼 복잡한 서식은 작성하지 않는다. 아니 그런 걸 작성할 줄 모르고, 만들 줄도 모른다. 온라인 쇼핑몰 엔진이 자동으로 생성하는 견적서와 거래명세표 기능이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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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가 제조하는 OEM용 HDD도 다나와, 에누리 사이트에서 조회되지만, 몇 개만 구입한다면 가능하지만 대량으로는 거래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그럼 그런 품목이 왜 올라오는 걸까? 여러가지 경우가 있지만, 가장 심플하게는 이런 경우에서 시작한다. 

삼성전자 본체를 취급하는 점포에서 기업체 대량납품 과정에서 HDD를 업그레이드 요청을 받는 경우다. 이럴 때 업그레이드 부품은 일반유통용 삼성HDD로 대체해 납품하고, 남은 OEM용 HDD는 별도로 판매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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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을 업계에선 '바라시해서 팔았다'고 표현한다. '바라시'란 말은 '바라스'라는 일본어에서 굳어진 말로, 말 그대로 분해했다는 뜻이다. 대체로 이렇게 바라시해서 나온 부품은 조립PC 업체에서 아도쳐서 가져가는데....

여기서 '아도친다'는 말도 일본말 '아도'(한자로 後)에서 온 말이다. 뒤에 남은 나머지를 떨이로 사고 판다는 의미다. 간혹 몇 개 남으면 일반소비자에게 개별판매하기도 하는데 그러다보니 다나와 가게에 전화하면 구하기가 어려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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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우리에게 부품을 공급하는 거래업체가 해당 OEM 모델을 대량 공급해줄 수 있었다. 다만 가격을 정확히 알 수가 없다. OEM 모델이다보니 OEM 제조와 관련이 없으면 공급이 안 된다. 시장교란을 막기 위해서다. 우선 최종소비자(OEM생산자)로부터 정식 발주서가 들어가야 하고 발주서가 들어가 품의가 되어야 공급가가 나온다.

역시 이런 일 또한 동네 컴퓨터 업자는 경험하기 어려운 일인데 그 어려운 걸, 

잘도 경험하는 신박한 업체였다. (이 일은 나중에 컴퓨터가게들의 연합활동으로 이어진다. 이 이야기도 기회가 닿으면 하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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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면... 이런 까다로운 이유 때문에 사장 부재시 대리업무를 수행했던 내 동생은 제대로 된 견적서를 만들 수 없었다. 그런데 그게 트리거 효과를 가져왔다.

학교 측에선 발주가 된다는 사실에 발주 수량을 늘리게 되었고, 발주 수량을 늘리는 과정에서 학내 PC 소요를 조사해 조립 PC 납품까지 요청하게 된 거다.

그래서 조립PC 납품, 학교가 보유한 저사양PC의 HDD 교체, 모니터 교체 및 설치 등 이것저것 다양한 것을 요구했다. 까다로운 요구를 해서 미안하다며 개별 설치비를 책정하고 이를 견적에 반영해달라는 거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피봇기능이 있는 LCD 모니터까지 요청했는데 이게 또 재밌는 해프닝을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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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처 쪽에선 윗 단계의 공급처 쪽에 단가를 받는 과정에서 해당 부품의 재고가 없어 외형상 동일 부품이지만, 모델명(코드)만 다른 부품을 재견적하면서 가격이 추가할인되는 일이 벌어졌다.

아마 삼성전자 AS센터에서 AS를 제공하지 않는 좀 더 조건이 박한 모델이었던 것 같은데, 우리에게 납품하는 HDD의 개별 시리얼 번호를 등록해 삼성전자 AS센터에서도 AS가 가능하도록 해결해준 것 같았다.


AI 생성 이미지


지난 6회에서 용산전자상가의 유통업체들이 1% 마진으로 살아간다고 언급한 적 있는데, 그 비율로 따지면 마진율이 어마어마하게 올라간 셈이다.상황이 이렇게 되자 우리 공급처에선 우리 명의로 HDD, 모니터 등을 넉넉하게 추가발주 해달라고 부탁해왔다. 덤핑이 아닌 공식 거래를 통해 평소보다 높은 마진을 올릴 수 있는 높은 물량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였다.

추석을 앞두고 있어 제조사마다 재고정리 중이었으니 아도 쳐서 다 가져올 수 있으면 추석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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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런 모든 일들은 내가 서울로 다시 돌아와서 본격화된 일이긴 하지만, 기도하는 마음으로 떠난 나의 간절함 때문인지, 자리를 지켜준 동생의 행운 때문인지 지옥행 급행열차가 길을 잘못 접어들어 천당행으로 바뀐 건 확실했다.

2박3일의 칩거일정을 깨고 다음 날 버스를 타고 올라와 서둘러 매장으로 뛰어갔다. 하루가 지났음에도 어리둥절해하는 동생들을 격려하고 거래처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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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현실적인 문제가 있는데, 용산전자상가는 선입금해야 물건을 받을 수 있다. 마진이 워낙 박하기 때문에 외상거래는 하지 않았다. 과거에는 어음거래나 외상거래를 했는데, IMF 터지면서 연쇄부도가 났고, 이후에도 사고가 많이 터져서 선입금 후출고가 국룰이었다.

현재 견적금액이 8천만원을 넘어갔는데 바꿔 말하면 8천만원을 입금해야 부품들이 출고된다는 거다. 2달치 임금이 밀릴 정도로 자금사정이 안좋다는건 은행이든 어디든 돈 빌릴 데도 없다는 건데 막막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때만 해도 지옥에서 더 깊은 지옥으로 굴러떨어지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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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에는 이른 아침부터 은행을 찾아가 급히 대출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았다. 이 정도 규모라면 부동산 담보 대출 아니면 자금을 조달할 방법이 없었고, 그 방법 또한 1개월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큰 돈을 만지는 선배에게 전화해 간절히 부탁해 보았지만 우리 업체의 부진을 알던 참이라 부정적인 대답만 왔다.

결국 내 얼굴이 보증서라는 결론이었다. 납품하게 도와달라고 가서 빌기라도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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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다행하게도 거래처에서 1개월간 여신을 잡아주기로 했다. 우선 우리 덕분에 추가 마진을 볼 수 있는 품목이 생겼고, 발주량이 더 늘어날 것 같은 기대가 있어서다. 나중에 업체 사장님께 들은 이야기인데 3년간 거래하며 우리 업체의 성실함을 알고 있었고, 이상하게 느낌이 좋았다고 한다. 이번에 도와주면 큰 거래가 이루어질 것 같은 예감이 있었다고...

실제로 거래 규모는 1억 2천을 넘어갔다. 이걸 1개월 여신으로 받았다 하니 용산전자상가의 다른 업체들이 신기하게 여겼다. 나중에 내가 소개될 때마다 "얘가 학교에 1억씩 납품하는 놈이야"란 말을 들었고, 이 소문을 듣고 학교 납품을 뚫겠다고 나를 찾아오는 사람도 있었다.

또 "얘가 얼굴신용이 좋아. 외부업체가 용산에서 1달 여신으로 1억을 땡겼어", "저희도 1달 여신 드릴테니 영업 좀 많이 하세요" 이런 소리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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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튼 일이 될라고 하면 어떻게든 된다. 트럭 한 대를 꽉 채운 부품이 도착하던 날, 그때의 가슴 벅참을 잊을 수 없었다. 다행히 우리 지하매장의 면적은 꽤 넓었다. 집기와 책상의 배치를 바꾸니 작업대가 구성되었고, 얼추 작업공정이 흘러갈 공간이 확보되었다. 제품 검수 후 재포장하여 조적할 수 있는 공간도 충분했다.

납품을 앞두고 밤새 PC를 제작했다. 우리 팀이 조직력이 강하다보니 이럴 때 큰 힘을 발휘했다. 출장AS는 출장AS대로 쳐내면서 매장에선 매장대로 공장을 구성하고 가동해냈다. 식사 추진, 추가 인력 보강 등 업무 외적인 건 내가 담당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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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납품과정도 큰 일이었다. PC는 매장에서 출발시키고, 모니터는 총판에서 출발시키고, 학교에서 순서대로 받고 각 강의실별로 재배치하고, 우리 팀원과 추가 인력들을 보내 개별 설치를 진행했다. 포장폐기물을 수거해 뒷처리하는 것도 내가 조정해야 할 일이었다.

감사하게도 학교에서 결제를 서둘러주어 1달이라는 여신기간을 확보했지만 보름만에 수금해 바로 입금해줄 수 있었다. 수익도 꽤 많이 남아서 밀린 급여, 적지만 추석 떡값, 밀린 부가세, 대출금 일부 등을 갚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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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회에서 이야기한 모니터 덤핑 에피소드도 제조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인 건 맞다. 다만 용산전자상가의 업체들로부터 OEM 임가공을 수주하게 했다는 정도고, 오늘 소개한 사건이 우리 스스로 제조업을 영위할 수 있는 조직적 훈련과 준비를 가능케 했다는 점에서 더 큰 의의를 갖고 있다. 단순히 사업자등록증에만 제조업이 들어간 게 아니라 제조업이 사업의 한 분야가 되었다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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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에 걸쳐 제조업 이야기를 한 건 상권과 입지의 이해와 적용에 도움이 되는 구석이 커서다. 일반 대중 위주의 서비스 제공과 판매라는 점에서 숙대 상권과 대로변 지하 입지는 공간적으로 매우 불리했다. 먹고 살자고 창업한 건데 사지나 다름없는 곳에서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친 격이었으니...

1회에 불과하지만 PC 제조를 경험하며 느낀 점은 작은 임가공 공장을 운영한다고 보면 우리 매장의 위치, 면적, 임대료는 나쁘지 않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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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서야 떠오르는 익숙한 광경이 있었다. 중랑구와 동대문구 일원의 작은 봉제공장들이었다. 빠듯하게 돌아가는 업체들이다 보니 고정비를 아끼기 위해 지하나 반지하같은 임대료가 저렴한 곳에 자리잡고 있는데 이런 작은 임가공 공장들은 임대료가 저렴해야 하는 입지 외에도 공장끼리 밀집해  클러스터 구조를 이룬다는 특징이 있다. 동일업종의 밀집성이 입지의 특징이다.     

한편 동일업종이 밀집했다고 해서 이걸 '상권'이라 부르지는 않는다. 소비자-고객을 유입하지는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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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우리 업체가 위치한 곳은 숙대 소비 상권과는 아무런 관련성 없지만, 용산전자상가를 거래처로 하는 임가공 공장으로서는 적절한 장소라는 귀결로 이어졌다.

을지로 인쇄골목이나 동대문 봉제골목처럼 도시형 제조업이 발달한 지역처럼 동종, 이종 협업이 가능한 클러스터는 아니지만 부품의 조달, 불량부품의 AS 처리 등 용산전자상가 개별업체와의 협업차원에서는 꽤 괜찮은 위치에 있었던 거다.

이걸 진작에 간파했더라면 우리 업체의 판도가 달라졌을 거다. PC방 납품 등 조립만 대행해주는 '봉구네' 같은 점포도 있었는데 선인 던전을 돌아다니면서도 보기만 했지 지나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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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성공 경험으로 강해진 우리는 계속해서 다음 단계를 향해야 했지만, 여전히 

업종 다변화냐, 동일업종 집중이냐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이 일에 집중하기엔 안정성이 떨어졌다. 우선 임가공업무가 매일 들어오지 않았다.

다음으로 앞선 회차에서도 말했지만 물류가 오가는 광경이 지역 주민들의 눈에 띄면서 "여기에 이런 가게가 있었네?"하며 찾아오는 분들이 하나둘씩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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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있으면 아무 것도 얻을 수 없었다. 우선 업종 다변화를 위해 내가 먼저 나섰다. 지하 공간을 벗어나야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회복된 신용을 이용해 천만원을 대출했고, 팀을 꾸려 작게 시작할 수 있는 별도의 사업을 계획했다.

청파동1가 대산빌딩 시대를 개막했다. 여기서 몇 가지 실험창업을 경험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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