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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의 개념과 변천

마을이 콘텐츠다(1)

by 윤준식


# 콘텐트와 콘텐츠의 개념적 차이


'마을 콘텐츠'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콘텐츠'라는 개념부터 명확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콘텐츠'라는 말이 본래의 영어 의미와는 다소 다르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영어에서 'content'는 '내용물'을 의미하는 단수형 명사이고, 'contents'는 그 복수형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콘텐츠'란 말이 대중적으로 확산된 시기는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로, 이때 우리나라가 IMF를 겪으면서 국가적으로 대외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IT 산업화가 시작됐습니다. 국민 컴퓨터가 보급되고 인터넷이 확산되면서 '콘텐츠'란 말이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콘텐츠란 말이 빠르게 확산되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그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쉽게 말해, 사람들이 어떤 언어의 의미를 배울 때 가장 쉽게 사용하는 방법은 유추입니다. "A는 B다"라고 계속 들으면 A가 B라고 생각하게 되죠. 그러니까 원래 의미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고 현재 사용되는 의미만 받아들이게 됩니다. 언어의 대중화는 항상 이런 형태로 진행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의 대표적인 예가 '햄버거'입니다. 햄버거의 어원은 독일의 함부르크(Hamburg)라는 도시에서 왔습니다. '함부르크에서 온'이라는 뜻으로 뒤에 접미사 '-er'가 붙어 '햄버거'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햄버거가 미국으로 건너가 샌드위치 형태로 발전하면서, 사람들은 '버거'를 '빵 사이에 무언가를 끼운 음식'으로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새롭게 개발되는 햄버거는 그 안에 들어가는 재료에 따라 접두사가 바뀌게 되었습니다. 치킨버거, 피시버거, 새우버거, 심지어 한국에서는 김치버거, 밥버거까지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언어가 대중 속에서 변화하는 방식입니다.


# 디지털 시대의 콘텐츠 개념


그렇다면 '콘텐츠'라는 말이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지금의 의미로 자리 잡게 되었을까요?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초기 인터넷의 구조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의 인터넷은 지금과 달리 까만 바탕에 하얀 글씨만 있는 단순한 형태였습니다. 느린 전송망 때문에 이미지도 거의 없었죠. 당시 인터넷 홈페이지는 상단에 메뉴가 위치하고, 좌측에 보조 메뉴가 있는 구조였습니다. 메뉴를 클릭하면 가운데 화면에 목록이 표시되고, 그 목록에서 다시 클릭하면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는 형태였습니다.


이런 구조가 책의 목차와 유사했기 때문에, 초기에 인터넷 '콘텐츠'는 '목차 구조의 내용물'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사전에서 'contents'를 찾아보면 '목차'라는 의미가 나오는데, 이것이 초기 인터넷 구조와 맞물려 우리나라에서의 '콘텐츠' 개념 형성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정보화 시대가 본격화되고 누구나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게 되자, 콘텐츠의 양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그 의미도 확장되었습니다. 이제 '콘텐츠'는 텍스트(책, 글), 영상물, 쇼트폼, 릴스 등 다양한 형태를 포괄하는 개념이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관광 콘텐츠, 부동산 콘텐츠 등 물리적 공간과 경험까지도 콘텐츠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 콘텐트(단수)와 콘텐츠(복수)의 구분


영어에서의 'content'(단수)와 'contents'(복수)의 구분을 우리나라 맥락에서 재해석하자면, 다음과 같은 구분이 가능합니다:


1. 콘텐트(content): 원천 소재로서의 내용물을 의미합니다. 가공되지 않은 원형 그대로의 자료나 정보를 말합니다.


2. 콘텐츠(contents): 미디어나 플랫폼에 담기 위해 가공된 결과물을 의미합니다. 원천 소재가 특정 형식으로 정리, 편집, 재구성된 상태를 말합니다.


이러한 구분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 원천 소재와 가공물을 구분할 필요가 있고, 둘째, 기획 및 제작 과정을 체계화하는 데 도움이 되며, 셋째, 저작권이나 권리 관계를 명확히 하는 데 유용합니다.


마을 콘텐츠의 맥락에서 보면, 마을의 역사, 주민들의 이야기, 전통문화, 자연환경, 생활 방식 등은 원천 소재로서의 '콘텐트'에 해당합니다. 이러한 원천 소재는 저작권법의 보호 대상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이러한 원천 소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마을 다큐멘터리, 여행 지도, 가이드북, SNS 게시물, 축제 영상, 팟캐스트 등은 가공된 결과물인 '콘텐츠'에 해당하며, 저작권의 보호를 받게 됩니다.


예를 들어, 마을 어르신을 통해 구전되어 오는 전설은, 그 자체로는 마을이 지닌 원천 소재(콘텐트)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이 전설을 바탕으로 만든 책, 영화, 축제 등은 가공된 콘텐츠가 됩니다. 전설 자체는 특정 개인의 저작물이 아니지만, 이를 재구성한 책이나 영화는 창작자의 저작권이 인정됩니다.


# 마을 콘텐츠의 개념적 기초


이러한 콘텐트와 콘텐츠의 개념적 구분은 마을 콘텐츠를 이해하는 중요한 기초가 됩니다. 마을 콘텐츠는 마을이 가진 다양한 원천 소재(콘텐트)를 발굴하고, 이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하여 새로운 가치를 지닌 콘텐츠로 만들어내는 과정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마을 콘텐츠가 단순히 관광객이나 외부인을 위한 상품이 아니라, 마을 주민들의 삶과 정체성을 담아내는 문화적 산물이라는 점입니다. 진정성 있는 마을 콘텐츠는 마을 주민들이 자신들의 역사와 문화를 인식하고 자부심을 느끼는 데서 출발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마을 콘텐츠는 단순히 '있는 그대로'의 마을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마을의 가치와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고 현대적 맥락에서 재구성하는 창조적 과정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마을은 단순한 지리적 공간에서 의미와 이야기가 살아 숨쉬는 콘텐츠의 공간으로 변모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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