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그작.
발 밑에 은행이 밟혔다. 피한다고 피하며 걸었는데도 피할 수 없는 한알의 노오란 은행 알맹이가 아그작 소리를 내며 깨졌다. 산다는 게 그렇지.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는 없는게 있는 법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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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E의 남편이 아프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암이라고 한다. E의 성격이 밝고 명랑해서 잘 치료받는 중인가 보다 했었는데, 투병생활 3년 만에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 2남 1녀의 아이들이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홀어머니 아래서 자라는] 경우가 됐고, 내 친구가 이제는 "홀어머니"의 역할을 하게 되다니 머릿속이 뿌옇게 흐려졌다.
그로부터 또 1-2년쯤 흘렀을까. 이번에는 그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것도 가족이 함께 떠난 해외여행 중에 돌아가시는 바람에 더욱 당황스러웠다. 남편을 잃은 딸을 바라보는 마음이 얼마나 괴로우실까 싶어서 세 아이들과 아버지를 모시고 떠난 미국 패키지여행이었다. 긴 비행이 힘들었는지 아버지는 미국에 도착한 그날부터 속이 불편하다고 하며 통증을 호소했으나, 여행사에서는 병원을 연결해주지 않은 채 스케줄을 진행했고 E는 현지에 살고 있던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이야기 한 뒤, 아버지를 응급실로 모셨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몇 달 전에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이셨는데, 겉으로는 다 나은 것처럼 보였지만 연세가 많다 보니 젊은 사람 같을 수는 없으셨나 보다. 응급실에서의 입원비와 시신을 한국으로 모셔오는 과정까지 그 비용도 만만치 않았지만, 고객의 건강을 나몰라라 했던 여행사 측의 무심함에 분노가 쌓였고, 무엇보다도 자신이 주도한 여행에서 생긴 불상사에 대한 죄책감이 E의 마음을 강하게 눌렀다. 이따금 친구들이 모여서 술이라도 한잔 하며 각자의 밥벌이에 대한 고충을 늘어놓다 보며 E가 쓱 웃으며 한마디 거든다. "나보다 더 힘들어? 나는 과부에다가 고아야!"
40대. 우리는 이제 '고아'가 되는 나이고, 과부나 홀아비도 될 수 있는 나이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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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진 연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회의 중이라 전화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고 딱히 받고 싶지도 않았다. 전화가 걸려온 시간은 아직 해가 떨어지지 않은 오후 5시 무렵이다. 12시 넘어 걸려온 전화라면, 이 인간이 어디서 술 마시다 전화했겠군-했을 텐데 시간이 이르다.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닐까. 짧게 염려하는 사이 메시지가 도착했다. [나는 낮술을 좀 마셨어. 혹시 만날 수 있을까]
우리는 말이 잘 통하는 사이라서 연인이 아니라 친구로 남는다면 꽤 오랫동안 좋은 관계가 유지될 거라는 걸 알고 있지만, 한번 연인이었던 사람이 다시 친구로 돌아가려면 꽤 많은 감정적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가능하면 만나지 않으려고 하고, 업무 특성상 여럿이 모여서 식사를 하기는 해도 이렇게 단둘이 만나는 일은 피해왔다. 9년을 사귀다 헤어진 연인이 만나서 할 수 있는 일은 몇 가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회의가 끝나는 대로 그를 만나러 가겠다고 답장을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가 보고싶었기 때문이다.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휴대폰으로 뉴스를 검색해보니 잠실에서는 기아와 두산의 한국시리즈 마지막 경기가 진행 중이었고, 배우 김주혁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내용이 속보로 처리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어머머머머"소리가 튀어나왔다. 김주혁? 내가 아는 그 김주혁?
[프라하의 연인]에서의 김주혁의 목소리가 좋았고, [아내가 결혼했다]에서 순진한 그가 좋았고, [1박 2일] 예능 프로그램에서 조금 어색한 그가 좋았고, [아르곤]에서 열정적인 그가 좋았다. 열렬한 팬은 아니었지만 그가 좋았다. 그래서 그의 사고소식은 진심으로 마음이 아프고 슬프기까지 했다. 직접 만나지 못하고 꽤 오랜 세월을 함께 지낸 지인을 잃은 듯 마음이 아팠다. 눈을 감는 그 순간에 너무 아프거나 두렵지 않았길.. 그리고 혹시 그 생명의 한 끄트머리가 아직 여기 이 세상 어디에 남아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그대를 좋아했다는 것을 알아주면 좋으련만. 사랑을 충분히 받았다는 걸 알고 가면 좋을 텐데.
잠시 후, 마포에 있는 건물 21층에서 작고 네모난 회색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옛 연인과 나는 마주 앉았다. 그 사람과 나 사이에는 칭다오, 하이네캔, 필스너, 처음처럼. 육포와 생수가 놓여있었고, 오랜만에 서로를 만져보고 싶은 욕구도 숨겨져 있었다. 익숙한 행동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취중에도 고삐를 단단히 붙잡고 서로의 근황을 나누었다. 조금 살이 찐 것도 같고, 술을 많이 마셨을 때 짓는 특유의 눈빛이 여전한 그에게 내가 물었다.
- 날 사랑했었어?
- 사랑했지.
- 아니 그렇게 말로 하는 사랑 말고. 나를 안쓰럽게 여기고 걱정하는 마음.
- 당연하잖아. 나는 늘 너를 걱정하고 미안해하지.
사랑한다, 가 아니라, 사랑했었다는 말- 이걸로 됐다. 나는 그동안 그의 마음이 불안했다. 충분히 사랑받지 못했다는 느낌 때문에 자주 아쉽고 억울했지만 차마 묻지 못했다. 그는 지독하게 솔직한 사람이라서 날 사랑하긴 했었냐고 물어보면 "글쎄..."라고 대답할까 봐 오래 묻어두었는데, 뒤늦은 고백이라도 들었으니 이제는 진짜 헤어질 수 있겠다. 40대. 우리는 이제 사랑보다 이별이 쉬운 나이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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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그작.
조심하려 했지만, 피할 수 없었던 은행 알맹이가 내 발아래서 깨졌다. 살다 보면 그런 일들이 점점 많아진다. 조심했지만 피할 수 없는 일. 그것은 주로, 이별에 관한 일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