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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ewha Nov 12. 2019

밤의 노래

깊은 밤 당신에게만 들려주는 작은 비밀

‘나의 주인이 되어줘.’

‘네가 누군데?’


대체로 깨면 나를 잊어버려.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거든. 누구나 그래. 꿈을 그냥 보낸단 말이야. 매일 오늘 밤은 어디로 갈까 싶은 거지. 어딘가로 가면 이미 다른 꿈이 와있는 경우도 많아. 그러면 은근슬쩍 끼어들 때도 있고 재빨리 다른 곳으로 가버리기도 하지. 어느 날은 아주 잠깐 머물 때도 있고 어느 날은 세상 편하게 꿈 주인이랑 하염없이 놀다 오지. 그야말로 대환장 파티라고. 꿈은 경계나 이성이나 도덕 그런 거 필요 없잖아. 누가 죽어나가도 너희들이 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아.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옷이 바뀌거나 뿔이 나도, 맥락 없이 엉뚱해도 누구 하나 뭐라 하는 사람 없다고. 그러니 꿈 주인이랑 궁합만 잘 맞으면 우리는 오랫동안 한 곳에 머물기도 해. 그렇게 오래 머물러도 뭐 기억해주지 못한다면 허탕이지만.


사람들이 잠에서 깨어나면 우린 낮이 밤인 곳으로 옮겨가. 낮에 자는 사람도 많지만 경쟁률이 너무 치열하고 선잠 자는 탓에 단타로 치고 빠져야 하는 경우가 많으니 선호하지 않지. 꿈에서는 영어도 불어도 슈퍼맨처럼 잘하잖아. 그러니까 우리가 어느 나라로 가든 말이 안 통할 걱정은 없어.


어쩌다 아주 운이 좋으면 형체가 있는 상태로 태어나기도 해.

작가를 만나는 경우지. 작가들은 우리를 놓치지 않으려고 부지런히 적는 일이 자주 있거든. 일기장에 쓰이는 메모 형태지만 상당히 구체적이야. 그러면 우리는 기억되는 거지. 기억되는 것은 아주 영광스러운 일이야. 너희도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잖아? 우리도 마찬가지야. 꿈이 기억되는 건 훈장을 받는 것처럼 누군가의 가슴에, 기억 속에 새겨지는 일이지. 그러다 아주아주 성공적인 케이스가 되기도 하는데 그건 모두가 기억할 수 있도록 작품으로 남는 일이야.


미셸 공드리 감독 알지? 여기서도 유명한 걸로 알고 있는데 우리 세계에서도 굉장히 선호하는 꿈 주인이야. 경쟁률이 치열해. 어떤 형태로든 기록으로 남겨주거든. 그러다가 어떤 꿈에 대해 더 확신에 차게 되면 자기 작품에 출연시켜 주기도 해. 물론 아주 드문 경우지만. 그렇게만 된다면 꿈 주인이 아니더라도 모두가 우리를 볼 수 있게 되는 거지. 정말 멋지지 않아?

양지로 한걸음 나오는 것 말이야.


우리가 무슨 드라큘라도 아니고 밤에만 활동하는 게 가끔 불만이야. 그렇다고 병원 같은 데 가서 아픈 사람들 심란하게 하기도 싫고. 그런 데서는 농담이 잘 안 통해. 쓸데없이 과장해서 해석하는 바람에 여간 곤란했던 게 아니야. 오늘내일하는 사람 꿈에는 검은 옷을 입고 방문하면 안 되는 거였더라고. 내가 뭐라 한 것도 아닌데 지레 겁먹고 식음전폐해버린다니까. 그러다 그대로 영영 떠나버리면 기분이 정말 엿 같아져.


우린 어디서 왔을까? 질량 보존의 법칙이라는 게 있잖아? 수많은 영혼들이, 꿈들이 육신이라는 집에 살고 있다가 갑자기 그 집이 사라지면 어디로 가는 걸까? 사라지지 못하면 어딘가를 떠도는 걸까? 혹시 그게 우릴까? 그래서 우리가 꿈이 된 걸까? 왜, 너희도 잘 때는 영혼을 놓아주잖아. ‘오늘 밤 내 꿈에 놀러 와’ 이런 농담도 하고.


아! 그러면 너는 나구나!

아. 나는 너였어.


그래서 특별히 기억되고 싶었나 봐.

너에게.


부탁하나 있는데 들어줄래?


좋은 작가가 되어줘.

나를 기억해줘.

오늘 밤에도 찾아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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