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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석 Sep 13. 2020

그들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나의 이야기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김원영 작가]

최근, 좋아하는 지인들과 시작한 작은 모임에서 일정기간 동안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김원영 작가)'을 읽었다. 저자는 1급 지체장애인이자 변호사이며 연극을 하는 배우이자 책을 쓰는 작가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한 '인간'이며 누군가의 가족이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장애에 대한 나의 시각은 이 책에서 말하는 장애를 향한 일반인들의 보편적 시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저 불쌍한 존재, 도움이 필요한 존재, 나와는 다른 제3의 존재. 아니, 사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그들 존재 자체에 나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저 나와는 동떨어진 존재이자 나와는 접점이 없는 특정한 대상일 뿐이었다.


이 책은 그런 나의 무지와 착오를 일깨워주고 교정해줬다. 그들과 나 사이의 인식의 거리를 줄이는 작가의 서술은 상당히 객관적이다. 감정에 호소하는 외침이 아닌 응당 받아야 할 권리를 담담하게 풀어내는 그의 시각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또한 그저 동정의 대상, 배려의 대상으로서의 장애인이 아닌 조금은 불편한 신체적/정신적 특징을 가진 '한 인간'으로서 주목하길 바라는 주장과 논거는 상당히 설득력 있다.


그러나 여전히 한 가지 거리감은 끝까지 남아 있었다. 분명히 보이는 신체 외부 다름으로 인한 인식의 차이였다. 나는 그들과 신체적으로 다르고 그들의 기본 전제와 시각을 온전히 공유할 수 없다. 그리고 그 단절은 이 책을 읽으며 애써 좁혀온 나와 그들 간의 차이를 아주 미세하게 유지시켰다. 나와 그들 사이의 아주 작은 심리적 거리감은 극복이 되지 않았었다. 이 책의 종반부까지 나는 작가의 서술을 이해하고 존중했으나 근본적 다름으로 비롯되는 거리감을 여전히 극복할 수 없었다. 그들과 내가 동등한 권리를 가진 존재임에는 동의하나 역시 여전히 나는 그들과 다르다는 은연 중의 거리감은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그 거리감을 좁히고 싶었다.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조금은 더 좁힐 수 있기를 바랐고 이 책에서 그 실마리를 찾기 원했다. 이 책은 이미 상당히 멀리 있었던 심리적 거리감을 충분히 많이 좁혀줬기 때문이다.


그러다 결국 그 마지막 남은 거리감을 좁혀준 문장을 이 책에서 찾았다.


장애를, 예쁘지 않은 얼굴을, 가난을 지닌 채 살아가면서도 모든 것을 당당히 부정하고, 자신의 '결핍'을 실천적으로 수용하고, 법 앞에서 권리를 발명하는 인간으로 설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렇게 서야만 우리가 존엄하고 매력적인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을 수용하고 돌보려 노력하지만 결코 완전하지는 못할 이 '취약함'이야말로, 각자의 개별적 상황과 다른 정체성 집단에 속해 있는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 공통분모일 것이다. (E-book 기준 p.126)

이 문장을 읽은 나는 애초에 이 책을 읽고 종반부까지 계속해서 갖고 있었던 출발점 자체가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결국 우리는 모두 각기 다른 특징을 가진 저마다의 인생이자 인간이라는 것.  상대방이 장애를 가진 사람이든 평범한 사람이든 내 친구이든 나는 근본적으로 그 사람이 될 수 없다. 다름으로 인한 인식의 거리는 인간 존재라면 당연히 가질 수밖에 없는 인식의 거리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신체적/정신적/환경적으로 표출되는 저마다의 특징을 갖는다. 애도 그 여러 특징 중 하나다. 결국 나와 그들은 표상은 다를 수밖에 없으나 결핍을 갖고 있다는 본질은 같다.


마지막까지 읽어보니 이 책은 장애인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했으나, 장애는 하나의 예시일 뿐 결국 장애인에게 국한되는 책이 아니라 우리 모두, 각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다.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는 저마다 각자의 사연과 이유로 갖는 다름이 있다.


누군가에게는 그 다름이 '장애'라는 신체적 특성으로,

누군가에게는 그 다름이 '가정사'라는 환경의 특성으로,

누군가에게는 그 다름이 '열등감'이라는 정신적 특성으로,   


저마다 그 이유는 다르겠으나 그 본질은 서로 다르지 않다. 이 책에서 서술하는 장애라는 신체적 다름을 우리가 저마다 속에 갖고 있는 깊은 마음의 이야기들로 치환하고, 다시 읽는 순간 이 책은 더 이상 그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 나의 이야기가 된다.


꼭 권하고 싶다. 각자만이 갖고 있는 고유의 특성, 혹은 다름을 이 책에 대입해서 읽어보라고. 생각보다 더 큰 사고의 전환을 경험할 수 있다. 그리고 동시에 '담대함'이라는 부산물도 얻게 된다.


결국 우리는 모두 저마다 하나씩의 다름을 안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 다름은 때로는 우리의 마음을 힘들게 하고 우리를 다른 사람들과 단절되게 만드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생각을 갖는 우리에게 말한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 각자의 존재만으로도 가치 있는 존재라고, 그 가치의 의미는 어떤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고. 혹은, 처절하게 요구되어야만 얻어지는 성취물이 아니라고.


우리 모두는 존중받을 권리가 있는 동등한 '한 인간'


우리는 그저 우리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소중하다.   


인간의 존엄성이 모든 이념의 중심에 오는 세상[E-book기준 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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