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키트도 맛있지만 그래도
떡볶이가 참을 수 없이 먹고 싶은 날이 있다. 그런 날엔 슬리퍼를 신고 동네에 있는 분식집에 들어가 떡볶이를 한 접시 먹으면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며칠 동안 묵혀두던 스트레스는 고작 떡볶이 한 숟가락에 사라져 버리고 왜 그렇게 심각했나 싶어 웃음까지 난다. 내려가는 길에 설레고 올라오는 길엔 후련해진 마음에 발걸음까지 가벼워진다. 한 달에 세네 번 있는 이 풍경은 언제고 다시 찾아 올 스트레스를 달래기 위한 나만의 계략이지만 그때마다 설레서 멈출 수가 없다.
그런데 작년 겨울, 아파트 상가에 있는 분식집이 문을 닫았다. 그나마 딱 하나 있던 프랜차이즈 분식집이었는데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로 바뀌었다. 스트레스를 달래기 위한 내 마음의 안식처가 여름날에만 반가운 아이스크림 가게로 바뀌다니. 가게가 오픈한 날, 이젠 어떻게 해야 하나 가게 앞에서 한참을 우두커니 서 있었다. 내 푸념을 듣던 친구는 요즘 떡볶이 맛집은 인터넷에 있다며 그중 베스트를 몇 개를 보내주었다. 처음에는 학창 시절 학교 앞 분식집에서 먹던 그 맛이 나서 깜짝 놀랐다. 찾아 보니 인터넷 쇼핑몰에는 내가 다니던 대학교 근처에 있던 분식집과 안국동에서 줄 서서 먹던 그 집의 떡볶이도 있었다.
친구 덕분에 나는 몇 달간 떡볶이 밀키트의 세계에서 헤어 나오질 못했다. 특히 마법이 시작되기 일주일 전부터 밀키트를 사서 냉동실에 쟁여두면 마음이 편안했다. 잠옷 차림으로 집에서 조리하니 편하고 맛도 훌륭해서 내내 흡족해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뭔가 허전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식탁에서 나 혼자 떡볶이를 먹고 있다는 사실을 직면한 것이다. 학창 시절 친구들과 함께 돈을 모아 사 먹던 밀떡, 종로 영어 학원가에 길게 늘어선 포장마차에서 먹던 김떡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가던 동네 분식집...이제 더 이상 내가 떡볶이를 먹는 장면에는 주문이 오가는 소리와 사람들의 어깨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저 식탁에서 혼자 2인분의 떡볶이를 만들어 약간 배부르게 먹다 남기는 장면이 전부다.
그동안 떡볶이를 먹으며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지 모른다. 앉아서 먹든 서서 먹든 옆에 있던 사람과 이런저런 일상을 나누며 먹던 떡볶이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