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자리에서 기다려
요즘들어 아이는 몇 년 전 다이소에서 나를 잃어버리고 울었던 기억에 대해 자주 말한다. 그 일이 큰 충격으로 다가왔는지 말할 때마다 똑같은 문장으로 말하고 나를 꼭 안는다. 나는 아이에게 '엄마는 무슨 일이 있어도 너를 꼭 찾을 거야'라고 말하며 안심시키려고 노력하지만 그럴수록 내 가슴팍을 더 파고든다.
내가 8살이었을 때 친오빠가 롯데월드에서 사라진 일이 있었다. 지방에 살던 우리 가족은 서울에 사는 큰 삼촌네로 놀러를 간 적이 있었다. 큰삼촌은 서울에 왔으면 롯데월드를 가봐야 하지 않겠냐며 우리 가족을 잠실로 안내했다. 그날 나는 내가 어떤 놀이기구를 탔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엄마의 비명소리는 아주 생생하게 떠오른다. 다홍색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빨간 립스틱을 칠했던 엄마는 갑자기 롯데월드 한복판에서 오빠가 없어졌다고 소리를 쳤다. 큰 삼촌네와 우리 식구들은 오빠의 이름을 부르며 찾으러 다녔고, 엄마는 미친 사람처럼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들만 보면 어깨를 잡고 얼굴을 확인했다. 한참 후 멀리서 어떤 여자가 오빠 손을 잡고 있는 실루엣이 보였고, 뒷모습의 오빠는 무언가를 구경하는 모습이었다. 내 기억으로 그 여자는 보호자가 나타날 때까지 오빠의 손을 잡고 그곳에 있었다고 했다. 얼굴은 생각이 안 나지만 긴 생머리의 여자였다. 엄마는 오빠에게 화를 냈다가 울었다가 끌어안았다가 하며 그 여자에게도 고맙다고 몇 번이나 고개를 숙였다.
이 날의 기억은 내 머릿속 어느 부분에 잠들어 있다가 아이가 한 번씩 다이소에서 엄마를 잃어버렸다고 말할 때마다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그러고 보니 나는 어느새 엄마의 나이가 됐고 내 딸도 엄마를 잃어버렸다는 기억을 가지게 됐다. 롯데월드만큼 큰 곳은 아니지만 5살의 나이에 다이소는 꽤 큰 공간이기에 그 두려움에 압도당한 것 같다. 엄마는 그날을 떠올리면 아직도 심장이 벌렁거린다고 하신다. 나도 그날 다이소에서 딸이 없어진 걸 알고 1,2,3층을 샅샅이 뒤지며 아이의 이름을 소리쳐 불렀다. 아이가 나를 찾는다고 밖으로 나가버렸으면 어떡하지? 누가 아이를 데리고 가버렸으면 어떡하지? 온갖 안 좋은 생각으로 가슴을 조이게 만들었던 날이었다.
계산대에서 직원의 손을 잡고 펑펑 울던 아이를 보자마자 뛰어갔던 내 모습과, 빨간 립스틱이 다 지워진 채로 오빠에게 달려갔던 엄마의 모습이 겹쳐보인다. 아주 잠깐 '아이가 사라진다면 내 삶은 어떻게 되는 걸까?'라는 물음에 처음 느껴보는 슬픈 감정에 압도되어 사실 나도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싶었다. 그동안 아이를 달래느라 숨겨놨던 내 감정이 이제야 선명하게 보이는 것 같다. 아이만큼 나도 큰 충격을 받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