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한 번, 독서에 흥미를 잃는 기간이 찾아온다. 올해도 그 시기는 어김없이 찾아왔고 흐름이 끊기는 순간부터 나의 일상은 조금씩 무기력해졌다. 아무리 책장 앞에 서서 읽을거리를 찾아봐도 활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나이를 먹을수록 예상되는 시간들, 사람은 어떻게 태어나고 늙어가는지의 흐름은 더욱 선명하게 보이는데 불쑥불쑥찾아오는 무기력한 시간에 앞에서는 여전히 속수무책이다. 누구나 겪는 웅덩이 같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나는 고민에 고민을 더해 신체에 무리가 가지 않으면서도 매일 할 수 있는 산책하기와 기록하기를 조금씩 해나갔다. 운동의 강도는 낮추고 대신 매일 아침 새로운 바람을 몸에 들이는 것, 자기 전 하루의 일과를 대여섯 문장으로 압축해서 기록하는 것, 마지막으로 아침에 마신 공기를 자기 전 침대 주위로 내보내며 하루를 마무리 짓는 것까지. 이건 책을 읽을 수 없는 기간에 웅덩이에 빠지지 않도록 해나갔던 나만의 작은 의식이었다.
칼 라르손, <꽃을 든 소녀>
그러다 갑자기 오늘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 소식을 들었다. 서둘러 예약주문을 걸고 나서 내친김에 도서관 홈페이지에 들어가 신착도서를 훑다가 눈길이 가는 도서에도 예약을 걸었다. 어김없이 찾아오지만 결국은 지나가는 나의 독서 권태기가 끝나가고 있다는 움직임이다. 꽉 채워 한 달, 이 한 달 동안 했던 산책과 기록의 행위는 다음 책을 만나기 위한 숨고르기였다. 내년에 다시 만날 독서 권태기에도 힘이 되어주길, 읽지 않는 나도 어제와 같은 나라는 걸 다정하게 말해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