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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세시 Dec 24. 2020

크리스마스트리

201217


생애 처음으로 제대로 된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했다.

장식하는 내내 우리 부부가 가장 즐거웠던 것 같다.


가성비에 놀라고

배우자도 나도 처음 꾸미는 것에 즐겁고

완성된 그림이 제법 괜찮아서 뿌듯했던 순간.





종교가 관련이 있어도 내 손으로 트리를 장식한 것은 아이 때 뿐이었다.

어른이 되어서는 선뜻 꾸미게되질 않았다.

손이 많이 가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장식할 때도 철거할 때도, 보관도.


우리가 아이 덕분에 이런 걸 다 해보네.


아이를 위해.

부모는 아이의 즐거움과 기쁨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는 것 같다.

부모는 이것희생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아이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을 보는 것이 이미 그 보상이 때문이다.

하필이면, 그 보상은 너무 달콤하고 중독성이 강해서, 한번 맛보면 깊숙한 곳에 새겨져 떠나지 않는다. 그래서 아이가 좋아할만한 것, 아이를 신나게 할 만한 것, 아이가 기뻐할 만한 것을 찾아 이런저런 사이트와 맘카페든 소셜미디어든 여기저기를 어슬렁거린다.


하지만 아이는 참 변덕스럽고 시시때때로 취향이 바뀌기 때문에 부모는 종종 아이의 기쁨을 놓친다.

기대했던 것과 다른 반응이 나올 땐 아이보다 더 깊이 실망한다. 그런 일은 한 달에도 여러 번 일어난다.

최근에는 빨간색을 좋아해서 샀던 유명 브랜드 운동화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한번 신더니 쳐다도 보지 않고, 다 닳고 헤진 싸구려 특정 캐릭터 신발만 고집한다.

이런 경우는 정말 실망스럽고 아쉽고 아깝다.


어쩌면 오늘 저녁도 우리 부부에겐 그런 날이었겠다.

아이는 택배 상자를 뜯자 색색 구슬에 신나 했지만, 트리를 펼치는 동안 지루했는지 구슬과 이런저런 장식 몇 개만 달았을 뿐 이내 흥미를 잃었다.

트리가 다 꾸며지지도 않았는데 아이는 빨리 트리에 불이 켜지기만 기다리며 불을 끄려고 애썼다.

아이와 씨름하며 가까스로 완성이 되고 불을 끄자, 반짝이는 트리를 보며 아이는 말했다.


생일 축하해!


혹시... 아는 것일까?

그럴 리 없다. 그냥 불을 끄고 촛불처럼 작은 불빛이 반짝이니까 그런 것 같다.

며칠 전에 아이는 제사상에서도 오늘 생일 축하하는 거라며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우리가 절을 할 때는 사진 찍는 시늉을 하고 '모두 여기 보세요!'라고 외치기도 했다.

아이의 천진함이 제사 분위기를 즐겁게 했다.


아이는 불이 반짝이자 잠깐 좋아하는 듯했으나 이내 흥미를 잃고 자기 놀이를 하러 가버렸다.


하지만,

이상하게 실망스럽지 않았다.

트리를 장식하는 내내 우리가 즐거웠기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의 어릴 때가 생각나서일까?

여하튼 우리 부부는 아이가 떠난 뒤에도 한참을 같이 앉아 그 장식을 바라보며 말없이 서로 기대 있었다.


따뜻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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