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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뭍톰 Oct 29. 2019

여동생과 서울에서 따로 산다는 것

대판 싸우고 동생은 일주일 뒤 자취방을 구해 집을 나갔다

 두 살 터울 여동생은 내가 3년 동안 서울 생활을 닦아둔 뒤 상경했다. 혼자 살던 원룸은 나에게도 작아 두명이 살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겨우 이불을 깔고 누우면 우리 둘이 방바닥을 다 차지할 정도였다. 그 집은 3년동안 열심히 모아 보증금을 마련해 처음으로 신축 원룸을 구해 살던 집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교 기숙사에서 따로 살다 만난 우린 생활패턴이 무척이나 달랐다. 그도 그럴것이 엄마의 품에서 벗어나 사실상 둘의 생활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동생은 쓰레기를 어떻게 버리는지조차 몰랐고 화장실 청소는 자기 인생에 없는 것과 다름 없었다. 머리카락이 수채구멍을 막아도 절대 두 손을 쓰지 않는 신여성. 방바닥 청소는 알아서 깨끗하게 되는줄 알던 녀석. 거진 1년을 잔소리를 섞어가며 살긴 살았지만 아무리 말해도 달라지지 않는 생활방식에 어느날은 너무나도 화가나 큰소리를 냈다. 그리고 동생은 당시 만나던 남자친구와 합심해 강건너 집을 구해 일주일만에 나갔다.

 일채 나간다는 어떤 말도 하지 않은채, 퇴근해 집안에 들어오니 동생의 작은 짐이 텅 비어있었다. 맞다, 옷도 다 내것만 입고 악세사리도 살줄 모르던 앤데.. 신입사원이면 쇼핑도 하고 돈쓰는 재미에 정신없을 시기이기도 한데 동생은 작은 디자인회사에 다녔고 월급은 내 반정도 였다. 매번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차이가 이정도나 되냐 라며 한탄하던 동생이었다. 나는 가슴 한쪽이 미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시원섭섭, ‘그래 너도 이 삭막한 서울에서 집 구하고 이사하고 살아가는 쓴맛을 좀 경험해봐라.’라는 마음도 들었다. 홀로 서울로 올라와 집을 구하던 나의 3년 전 쓴 기억들이 동생에겐 모두 절로 되는 것인줄 알았을 터이기에. 그렇게 동생과 연락을 하지 않아도 시간은 흘렀다. 그리고 문제가 터졌다. 엄마가 갑자기 서울로 올라오신다는 소식. 집이 좁아 셋이서 한 곳에서 잠도 자기 힘들었는데, 동생이 얼마나 좋은 집을 구했나 궁금하기도 해서 동생집으로 간다는 엄마의 말을 듣고 나도 한번 같이 찾아가보자 했다.

 위치는 낙성대역. 대학생들이 주로 사는 동네 같았다. 작은 골목을 굽이 돌아 들어가니 오래된 빨간색 벽돌로 된 다가구주택이 나왔다. 그 허름한 현관에서 동생이 얼굴을 비췄다.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난 표정이 굳어짐을 느꼈다. 동생은 익숙한 발걸음으로 지하 반칸 계단을 내려가 반지하 원룸집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엄마는 내리 한숨을 푹푹 쉬었다.

 심란한 푸른 빛이 도는 하얀색 형광등은 침침했고 낡은 장농은 주인집이 쓰라고 놓아준거라 말하며 해맑기 그지없던 동생. 아니 그냥 그지였다. 반지하 방의 시크름한 냄새가 진동을 했고 이불은 한켠에 쌓여져 눅눅함을 풍기고 있었다. 방과 바로 연결된 화장실은 또 어떠한가. 문을 여는 순간 하수구향?이 확 올라와 깜짝 놀랐다. 동생은 함께 살때와 별반 다르지 않게 수채구멍에 머리카락이 한가득 쌓여 심지어 물도 내려가지 않는 습지 지대를 개발해뒀다. 샤워 한번 하면 물이 역류해 방안으로 들어갈 것만 같았다.

 그 끔찍한 장면을 마주하고 정확히 한달도 채 안되어 바로 사당쪽에 있는 두배정도 되는 크기의 긴 직사각형의 원룸으로 이사를 했다. 그곳은 사람이 살만한 장소였고, 우린 이사를 하고 첫날 밤 빈 박스위에서 짜장면을 먹으며 ‘이번에는 싸우지 좀 말고 잘 살아보자.’ 결의를 다졌다. 그리고 신입사원과 눈맞아 바람난 동생의 남친 이야기로 밤새도록 안주를 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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