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 사이버샷 DSC-W1
이번 추석에 시골 고향집에 다녀왔다. 명절 연휴이기도 하지만 주요 목적은 인테리어 공사 예정이라 어릴적부터 쌓아뒀던 물건을 치우기 위함. 도착하자마자 방안 가득 쌓인 박스를 꺼내주시는 엄마.
이게 다 니거야.
열어보니 중학생 시절부터 써온 일기장과 당시 좋아하던 아이돌 CD앨범, 옛 친구들의 사진과 편지들. 온갖 것들이 다 튀어나왔다. 어디서부터 정리를 해야할 지 난감하던 차에 내 눈을 번쩍 뜨이게 해준 것이 있었으니. 바로 보물처럼 하나씩 모아오던 디지털카메라와 옛날 휴대폰들. 엄마는 모두 버리지 않고 다 모아오고 있었다. 어린 시절 형편에 맞지 않게 최신 디지털 제품에 소유욕이 강했던 나였다. (물론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지만) 어떻게든 돈을 아득바득 모아 카메라를 포함한 최신 기기를 샀었다. 잊고 지냈던 그 시절의 보물이 한데 모여 눈앞에 나타나니 도파민이 싹 도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유독 눈에 들어오는 소니 은색바디의 카메라. 요즘 20대 초중반 젊은이(?)들이 빈티지 카메라라고 불리며 중고거래를 통해서라도 얻어 일부러 옛날 느낌으로 사진을 찍는다는 바로 그 카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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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카메라의 매력터지는 점은 바로 배터리. 집안에 하나쯤 있는 AA건전지를 두 개 넣어보니 또로롱 소리가 나면서 화면이 켜졌다. 그리고 나온 오늘의 날짜를 입력하라는 화면. '와!' 진짜 빈티지는 이런거구나. 전자음 가득한 비프음과 화면전환 UI 모두가 옛날 그대로다. 마치 타임캡슐을 꺼내 열어본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기분이 묘해졌다.
초반의 설레임과는 달리 메모리스틱카드에 남겨져있던 1n년 전의 사진들을 보니 기분이 아득해졌다. 젊은 시절 엄마의 모습이 있고, 지금도 그대로인 고향 집안 풍경들이 보이고. 나라는 사람의 인생은 이렇게나 달라졌는데 우리 엄마는 그때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지금을 살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드니 묘한 슬픔이 배어나왔다.
나이가 들수록 변화가 더디다. 1년전과 10년전이 별반 차이나지 않는 것 같다. 무탈하고 큰 변화가 없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 간 달라지지 않고 나아지지 않았다는 현실에 머리가 쿵 하고 울린다. 사진은 그런 의미에서 인생의 증거이자 단서다. 20년된 빈티지 카메라와 어제 출시한 최신 카메라는 시점일 뿐 인생의 순간을 담고 장면을 남기는 것에는 차이가 없다.
늘 들고다니는 핸드폰으로 별 고민없이 찍고 나중에 한번도 들여다보지 않는 그런 사진 말고. 한 장을 찍더라도 각도와 분위기 타이밍을 잡아 셔터를 누르고 찍은 사진을 소중한 눈빛으로 들여다보는. 그런.
소모되는 순간 말고, 나중에 다시 꺼내보고 싶은 그런 순간들을 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