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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는바람 Dec 11. 2023

한 사람의 성실한 하루

온아한 마찰



낮에 바게트 빵을 사다 두었다. 따뜻한 토마토 수프를 먹으면 좋겠어서. 외출했다 저녁 식사 때가 되어 집에 돌아왔고 수프를 끓이면 식사가 늦어질 것 같았지만 천천히 해보기로 했다. 잠잠히 무언가에 몰두하는 일은 거칠어지려는 나의 태도를 쓰다듬어 줄 때가 많으니까. 수프를 끓이는 과정이 나를 뭉근하게 잠재워 줄 걸 짐작할 수 있다.   


냉장고에서 가지와 호박, 양송이버섯과 양파, 그리고 토마토소스를 꺼냈다. 야채들은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르고 냄비는 불에 올려 올리브 오일을 둘렀다. 다진 마늘을 볶다 잘라 놓은 야채를 넣었다. 지글지글, 달구어진 냄비에서 야채들이 기름에 섞여 코팅되는 소리가 경쾌하게 터졌고 야채를 휘젓는 나의 손놀림이 빨라졌다. 음식의 흐름에 빠져들자 모든 게 잊혔다. 눈앞의 요리에 집중하는 사이 내 마음에 재채기를 일으키던 생각의 먼지들이 잦아들었다.


아침부터 아이의 투덜거림에 신경이 곤두섰던 날이다. 겨울로 접어들면서 기상 시간이 계속 늦어지고 있다. 밤에 잠자리에 드는 시간도 미뤄지면서 아이는 아침에 일어나는 걸 힘들어했고. 학교 가기 싫다, 집에 일찍 오고 싶다는 칭얼거림이 아침부터 시작되었다. 작은 아이가 학교에서 견디는 시간이 안쓰러워 내 마음은 갈등하다 서서히 아이의 하교 시간을 앞당겼다. 일에 쓸 수 있는 시간이 줄면 일과 아이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아슬아슬한 기분이 되고 하루가 알 수 없는 긴장으로 팽팽해 지는데.  


바쁜 아침 아이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고 싶어 애를 쓰지만 아이가 계속 투정을 부리다 토라져 울상을 지으면 그 모습에 나도 속이 상하고 만다. 어느 순간 아이의 짜증과 토라짐을 더 이상 받아줄 수 없는 상태가 되면 큰 소리를 내지 않게만 주의하며 간신히 아이를 학교에 보낸다. 그랬는데 저녁에 또다시 아이의 투정이 시작되었다. 밥 먹기 전에 숙제를 끝내자는 말에 힘들다고 우는 소리부터 냈다. 받아 쓰기 2번, 수학 문제집 2장은 잠자코 앉아 20분이면 끝낼 수 있는 분량인데, 아이는 자주 하기 싫어 뒤로 미루다 툴툴 거린다.


여유가 많은 날엔 엉덩이 토닥여주며 천천히 해보자 살살 달래지만 그렇지 않은 날엔 불필요한 말들이 쏟아져 나온다. 지난 일까지 들춰 내 꾸지람을 주고 아이가 하고 싶은 일을 금지하겠노라 협박하면서. 한숨 고르고 나면 그럴 일인가 싶어 후회하면서도 내 안에서 끓어오르는 열기를 못 참는 순간에는 넘쳐흘러 흉해지고 마는 것이다.  


숨 고르기가 필요한 순간. 감정의 뚜껑을 열어 뜨거운 열기를 휘, 날려주어야 하는 때엔 잠자코 다른 일에 시선을 돌려 본다. 혼자 길을 걸을 수 있으면 딱 좋겠지만 그럴 수도 없을 때엔 화장실에라도 간다. 잠시 방에 들어가 책상 앞에 앉아 눈에 들어오는 책을 휘리릭 넘겨 보기도 하고. 아니면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집안에서 키우는 식물의 잎사귀에 내려앉은 먼지를 닦아준다. 이번엔 말없이 부엌에 들어가 냉장고에서 저녁거리를 꺼냈다. 호박과 가지, 양송이버섯을 흐르는 물에 씻고 도마 위에 올려 꼭지를 잘라 싱크대 속으로 던져 넣었다. 불필요한 감정의 꼭지를 떼어 내듯 툭. 못난 마음이 싱크대 모서리에 떨어졌다.


내가 가만히 내 일에 집중하는 사이 아이도 말없이 책상에 앉아 숙제를 했다. 더 이상의 투정도 내가 채근해야 할 일도 없었다. 뚝딱 숙제를 마친 아이가 기분 좋게 외쳤다. “다 했다!”  





사진관에 다녀온 날이었다. 지난봄 일본 여행 때 찍은 1회용 필름 카메라 두 개를 맡기고 왔다. 근처에 현상할 곳이 마땅치 않아 차일피일 미루다 시간이 흘렀고 더 늦으면 안 되겠다 싶어 몸이 움직였다. 하교한 아이를 데리고 미리 검색해 둔 현상소를 찾아 동대문역사공원 근처로 향했다.


동대문역사공원 역에서 내려 DDP 방향이 아닌 을지로 방향으로 나가니 허름한 골목이 이어졌다. 인쇄소로 보이는 소형 공장형 가게들이 늘어선 좁은 골목을 빠져나가자 큰길에 닿았다. 핸드폰 속 지도에 따르면 건널목 맞은편 1층에 과일 가게가 있는 오래된 건물의 4층이 사진관이다. 옅은 베이지색 타일이 붙은 아담한 건물은 주변의 높은 빌딩 사이에 어색하게 서 있다. 건물 1층 오른편에 있는 입구에 다다르자 엘리베이터는 없고 꽤나 가파르게 이어지는 좁은 계단이 보였다. 4층까지 올라 문을 열자 필름과 카메라로 꾸며진 아늑한 공간이 나타났다.


노란색 스웨터에 검은 앞치마를 두른 머리가 희끗희끗한 아저씨 한 분이 기기가 있는 한쪽 방에서 걸어 나왔다. 어떻게 왔냐는 아저씨의 물음에 가방에 넣어 온 일회용 필름 카메라를 꺼냈다. 아저씨는 "아이가 찍은 건가요?"라고 웃으며 물었다. 그리고 신청서를 건네며 현상과 인화 방법을 알려주었다. 카메라의 수준에 맞는 현상도와 현상 후 인화 절차까지. 세세한 내용을 차근차근 서두르지 않는 목소리가 편안했다. 필름의 종류를 설명하면서 호기심을 유발할 때엔 자신의 일과 지식에 애정을 가진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고. 내내 진지하면서도 호의적인 태도가 느껴져 계속 대화를 이어가고 싶었다. '어떻게 이런 장소에 작은 사진관을 내고 일하게 되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나도 모르게 일었고. 첫눈에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을 알고 싶어 지는 마음이 오랜만이었다.


표정과 태도, 말투에서 단번에 그 사람의 온아한 인품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동그란 안경 때문에 유난히 동그랗게 느껴졌던 아저씨의 눈이 맑았다. 모든 게 진심이라는 걸 훤히 보여주는 그런 눈. 이 사람은 자신의 몸과 태도, 목소리로 투명하고 진실되게 자신을 내보이는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그러니 그 앞에서는 '나는 어떤 사람일까' 하는 물음이 자연스레 떠올랐고. 내 몸과 태도, 목소리도 그처럼 나를 투명하게 보여주고 있을까. 그렇다면 그건 어떤 성질과 분위기를 띠고 있을까. 상대를 기분 좋게 하고 계속 대화를 이어가고 싶은 사람일까. 온아한 아저씨처럼 나도 상대에게 그런 사람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사진관 아저씨의 모든 것이 어찌나 인상적이었던지 가게를 나와 전철역을 향해 가면서도 아이에게 계속 그 이야기를 했다. "아저씨 너무 좋지? 가게 분위기도 참 멋지더라. 작고 아담한데 아늑하고 예쁘고…" 따뜻한 분위기 때문에 계속 머물고 싶은 공간이었다. 좋아하는 일을 고요히 해 나가는데 최적일 것 같은 장소. 몇 년 전 접어버렸던 바람을 살포시 들춰 보게 되었다. 그런 작은 공간 하나 갖고 싶다고. 공간에 어울리는 몇몇의 사람들과 소박하게 마주 않아 내게 좋은 것을 나누고 싶다고 생각했다.


습관이 태도가 된다는 말이 있다. 내가 지닌 습관을 반복하면 태도가 된다. 사람들에게 상냥하고 온화하게 대하는 것을 반복하다 보면 습관이 되고 기본적인 태도로 몸에 붙는다. 사진관 아저씨의 태도는 그렇게 만들어졌을 것이다. 자신의 일에 대해서는 무엇도 하찮게 여기지 않고 진중하고 귀하게 대했던 날들이 쌓였을 것이다. 몸에 익은 태도는 단숨에 만들어지지 않는 법. 긴 시간이 헤아려져 아저씨에게 신뢰가 갔다.


습관이 태도가 된다면……. 집이라는 편안하고 익숙한 공간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나는 예의를 갖추고 친절을 더하는 태도에서 한 발 발을 빼고 있는 건 아닐까 싶었다. 아이와 남편, 가까운 이웃을 마주하는 게 전부인 일상에서 나를 다듬어 좋은 모습을 만드는 노력을 게을리하고 있지는 않은지. 부박한 말과 몸짓을 거침없이 내보이고 있는 건 아닐지. 사소한 순간에도 상대를 아끼고 존중하는 모습, 진실되게 나를 보이고자 하는 태도가 내 몸에도 붙어 있을까. 나는 누군가를 기분 좋게 하고 알고 싶다는 호기심을 일게 하는 사람일까. 내게 되묻고 있었다.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한 번 더 돌아보게 되는 사람을 만나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 내게 선하고 긍정적인 기운을 전하는 사람을 만나면 선물이라도 받은 듯 오늘 하루가 기쁘고 감사하다. 오늘의 만남은 그런 이들과 닿기 위해서라도 종종 집 밖으로 나가야겠다고 다짐하게 한다. 그런 스침은 나를 닳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둥글려 주니까. 세계에서 미끄러지지 않고 제 위치를 잡으려면 마찰력이 필요하듯 내 자리를 찾고 본래의 모습을 빚어내기 위해서는 마찰이 필요하다. 나와 이질적인 세계와 부딪히며 나를 발견하고 다듬으며 내게 적당한 자리를 찾아가는 게 삶이라면 나를 스치는 사람들에게 기분 좋은 마찰이 될 수 있게 태도라는 옷을 날마다 정돈해 입고 싶다.


아저씨의 태도를 설명할 단어를 찾다 온아하다는 말을 발견했다. “성격, 태도 따위가 온화하고 기품이 있다”라는 뜻의 말. 사진관 아저씨의 모습이 정확히 그러했고, 내가 입고 싶은 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따뜻하고 친근하지만 기품이 느껴져 함부로 할 수 없는 태도. 그러므로 나도 한 번 더 예의를 차리고 친절하게 몸가짐을 돌아보게 되는 기운. 온아하다, 입 속으로 한 번 굴려보니 말이 품은 기운이 곱고 단정하다. 온아하다, 온아하다, 입안으로 두 번 굴려보니 꼭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자신의 자리에서 자기 몫의 성실을 행하고 나를 스치는 사람들에게 진실되게 친절한 것으로 한 사람의 삶이 충분하고 아름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내가 머무는 자리를 환한 흰 빛이나 산뜻한 모과 빛으로 물들일 수 있으면 된다고. 내가 있는 자리에서 자잘한 아름다움을 지으며 곁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말간 기운을 나누고 싶다. 언제나 그런 삶을 꿈꾸었던 것 같은데 앞으로도 그 꿈만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숙제를 마친 아이와 마주 앉아 토마토 수프에 바게트 빵을 찍어 먹었다. “음, 맛있다!” 하는 말로 조금 전의 투정과 껄끄러운 마음이 말끔하게 닦였다. 수프를 끓이는 뭉근한 사이 감정은 이미 잠잠해진 상태. 괜한 말로 아이를 꾸짖거나 거친 말을 내뱉어 너와 나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지 않아 다행이었다. 따뜻한 수프를 호- 불어 천천히 입에 넣는 저녁이 온아했다.


낮에 맡긴 필름이 생각났다. 오래전 찍고 잊었던 사진이 어떻게 나올까 기다려졌다. 일이 밀려 많이 늦어질 수 있다는 아저씨의 귀띔과 달리 9시 즈음 사진관에서 연락이 왔다. 사진 파일로 연결되는 링크가 카톡 메지지 창에 떴고 빛이 충분하지 않아 제대로 찍히지 않은 사진이 있다는 설명이 덧붙어 있다. 뒤이어 보기 편하게 이미지로도 보낸다는 메시지가 들어왔다. 사진 파일만 전달하면 되는데 메시지 창에 바로 이미지가 생성되도록 한 번 더 가공을 했나 보다. 클릭, 클릭, 클릭… 아이와 사진을 보며 기억에서 사라지려던 지난 시간을 되감았다. 한 사람의 성실한 하루가 건넨 한 줌 햇살 같은 기쁨을 손 끝으로 더듬었다.



아이가 찍은 필름 사진-필름 사진이 지닌 닳은 듯한 마찰감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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