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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는바람 Feb 20. 2024

삶과 시간이 남긴 흔적이 좋아요.

영화 <아녜스 V에 의한 제인 B>을 보고





“삶과 시간이 남긴 흔적이 좋아요. 결핍이 있는 몸이요. 완벽이 싫어요.” 



영화 <아녜스 V에 의한 제인 B>*에서 제인 버킨의 대사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말. 결핍이란 삶과 시간으로 남은 흔적이지. 인위적으로 만들 수 없고 살아냄으로 새겨지고 선명해지는 무늬. 결핍이 있는 몸은 그래서 아름답다. 결핍을 지우고 깎아내 다듬은 몸보다 흠결을 드러내 빛과 시간을 흡수하며 그만의 형태와 음영을 드리운 몸이 더 멋있다. 그 몸은 흉내 낼 수 없는 고유한 것이 되어 하나의 정의로 가둬 지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내게는 짝짝이인 눈과 휘어진 코뼈, 그리고 웃을 때 드러나는 뾰족한 덧니가 있다. 한 때는 교정을 해야 하나, 어떻게 균형을 맞출까 고민하기도 했는데. 언제부턴가 개성 있는 얼굴이 되어 간다고 생각을 바꾸었다. 오직 내게만 있고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것들. 눈과 코뼈와 덧니에는 나만 아는 이야기들이 숨어 있고. 한 번은 영화에서 나처럼 비대칭인 얼굴을 가진 배우의 환한 미소를 본 적이 있다. 한쪽이 더 많이 일그러지는, 단 번에 왼쪽과 오른쪽의 차이가 드러나는 웃음, 그런데 그 미소가 너무 좋더라. 그렇게 웃는 그가 참 멋지더라. 그때도 나는 비대칭인 얼굴이 부끄러워할 무엇이 아니라 나를 빛내 줄 무엇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결핍이 있는 내 얼굴과 더 사이좋게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아녜스 V에 의한 제인 B>는 아녜스 바르다가 찍은 제인 버킨에 대한 다큐 영화다. 아녜스 바르다는 평범한 다큐멘터리 형식에서 벗어나 인물의 실제를 촬영한 영상에 제인 버킨이 지닌 생각과 상상 혹은 환상을 영화화해 덧붙였다. 이는 제인 버킨의 내면에 대한 다큐멘터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신화와 그림(예술)을 차용하여 삶과 시간을 요리조리 은유한다. 영화를 보며 유명한 여배우이자 ‘뮤즈’, 한 시대를 풍미한 인물이 지닌 모순을 탐색하며 인간 모두가 지니고 있는 모순, 더 나아가 삶이 품고 있는 모순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유명인이면서 무명인이고자 하는 갈망을 품고, 자유분방하게 흐트러지는 웃음으로 인기를 끌었지만 정작 자신은 웃는 연기가 가장 어렵다는 제인. 아름다운 외모로 여성적인 캐릭터를 자주 연기하지만 그녀 내면에는 소년 혹은 남성적인 캐릭터에 대한 욕망이 있다고 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제인 버킨 내면의 은밀한 고백을 들으며 누구나의 가슴에 그런 게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모두가 어떤 모순적인 속성을 지닌 채 살아간다고. 강렬하게 바라는 것은 깊은 내면에 숨겨 놓은 채, 보이는 모습 혹은 살아온 형식에 젖어버려 내면과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존재뿐만 아니라 삶 자체도 그런 모순을 내포한다. 긴 듯하지만 순간이며, 실제인 듯 하지만 한낱 꿈일 수 있는 삶. 평범한 듯하지만 매순간이 엄청난 도박이기도, 가장 중요한 것을 좇는다고 생각하지만 어느 순간 부질없는 것을 따랐다는 걸 깨닫기도 하는. 앞면과 뒷면이 붙은 동전처럼 생(生)과 사(死)라는 모순으로 형성된 시간. 삶의 본질 또한 모순같다. 존재도 삶도 하나로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이것과 저것 사이를 유영하는 흐름이자 유동체일지 모른다. 그처럼 종횡무진 흐르며 장면을 넘나드는 이 영화는 세련되고 아름다우며, 유쾌하면서 신선하다.  



자신의 개인적인 면모를 찍는 이 영화가 어떤 의미를 갖게 될지 의문하는 제인에게 감독인 아녜스는 말한다. 계속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의미가 생기기도 한다고, 의미가 만들어지는 지점이 발생하게 된다고. 이 부분이 좋았다. 이는 영화뿐만 아니라 모든 일, 삶까지 통틀어 유효한 말일 테니까. 인생에는 돈과 사랑 외에도 중요한 것이 있다며 르네 마그리트 풍의 그림을 연속적으로 보여주는 씬도 인상적이었고. 어떤 이들에게는 삶 위에 예술이 있기도 할 테지. 삶을 예술에 헌신하는 이들에겐 돈과 사랑보다도 예술. 혹은 무언가를 위해 삶을 헌신하는 이들에게는 또 다른 무엇이 있을 것이다.     









“시간이 그렇게 흘렀죠. 쉽지 않았지만요.”


영화의 마지막 제인 버킨은 마흔의 생일을 맞는다. 데뷔 이후 스타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몇 명의 연인과 사랑을 나누고 아이를 낳고 삶의 정점을 지나, 오로지 상승이 아니라 떨어지고 구부러지는 구간을 지났을 것이다. 아마 영화 촬영 당시에는 여배우로서 나이가 꽤 들었다고 여겼을지 모른다. 하지만 스크린 속 그녀는 여전히 젊다. 영화를 찍을 당시에는 몰랐을 사실을 5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알아챈다. 지금은 그녀가 우리 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영화를 보는 동안은 잠시 잊힌다.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이의 현실을 대리 체험하며 모순 안에 머문다. 



자신다운 모습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그만의 스타일로 당당한 영상 속 제인 버킨이 멋있다. 익히 알고 있던 그 모습에, 그녀 내면의 모순적인 상상과 생각까지 들춰 볼 수 있어 진솔한 일기장을 읽은 기분. 누군가의 내밀한 삶 이야기는 언제나 매력적이고. 낡은 청바지에 늘어진 스웨터, 커다란 가방에 마구 담긴 소지품, 엉클어진 머리, 활짝 웃는 입술 사이로 보이는 벌어진 앞니. 인위적으로 만들 수 없는, 살아낸 삶으로 그려낸 흔적, 결핍까지 뒤엉킨 무늬로 그녀는 아름답다.  



뉴욕에서 길을 걷다 누가 옷이 멋지다고 말을 걸면 절대로 샀다고 말하지 말라고,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입던 거라고 말하라던 소설가 정지돈의 말이 떠오른다. 그도 옷 잘 입는 지인에게 들었다고 한 인터뷰에서 밝혔다. 새것, 인위적으로 곧장 만들어내 반듯한 것에는 멋이 깃들어 있지 않지. 시간의 흔적을 입고 결핍까지 스며야 진정한 멋은 탄생한다.   



봄을 맞아 색이 고운 니트를 사고 싶어 요리조리 눈팅 중이었는데 오래되어 늘어진 스웨터를 다시 꺼내 입자고 마음을 고쳐 먹는다. 타임리스 패션이라고 일컬어지는 제인 버킨의 패션이 꽤나 멋졌으니까. 영화 속 그녀의 패션이 50년 지난 지금의 내 눈을 사로잡았다. 낡은 청바지와 늘어진 화이트 티셔츠, 베이지 계열 체크무늬 재킷은 이미 내 옷장에 있고. 



내 몸과 생활에서 자연스레 낡아가는 것들을 수집하며 나이 들어야겠다. 나만이 지을 수 있는 표정으로 당당하게 웃어야지. 시간의 흔적이 덧대인 결핍의 무늬가 개성이라는 걸, 그걸 담대하게 드러내며 나만의 몸짓을 만들어 간다. 생활과 삶에서는 반듯함을 추구하면서도 깊은 내면에서는 자유분방하게 흐트러지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을 품고 있다는 기묘한 어긋남조차 내 무늬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모순을 부정하지 않는다면, 시간에 따라 얼룩으로 드러나는 흔적처럼, 내면의 욕망 또한 삶에 스며들 것이다.   






*영화는 1977년에 제작되었고, 제인 버킨이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각본을 쓴 영화라고 한다. 영화에서도 제인은 글쓰기를 좋아한다고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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