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게 받은 선물, 신비
몸은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는 걸까? 엊그제부터 혈흔이 보이면서 허리와 골반, 무릎이 아팠다. 9년 전 이즈음 출산을 준비하느라 뼈의 마디들이 벌어졌을 것이다. 그때의 움직임과 통증을 몸은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는 걸까. 그때의 통증을 다시 통과하고 있는 걸까. 글을 쓰는 지금도 손가락의 마디와 손목이 쑤신다. 산통을 통과하던 시간이다. 당시 몸의 내부에서 벌어진 세세한 일에 대해서는 몸의 주인인 나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장기와 뼈와 살이 출산을 위해 긴박하게 움직이고 조율했을 것이다. 세상에 한 생명을 내놓기 위해 긴밀하게 협응하며 생애 최대의 고통을 넘겼을 것이다. 기억 속 통증의 강도, 양상, 몸부림은 거의 지워졌는데도 몸은 그걸 잊지 않고 신호를 보낸다.
오늘은 딸 아이의 생일이다. 어제 친구들을 초대해 미리 생일 파티를 열었다. 최근 몇몇 친구들의 생일 파티에 초대받아 다녀온 뒤 아이는 자신도 파티를 하고 싶다고 했다. 아이가 자주 같이 노는 친구들과 좋아하는 친구들로 초대 인원을 추리니 열 명이 넘었다. 친구들에게 초대장을 돌리고 파티 계획을 세웠다.
파티 전날 남편과 아이가 마트에서 파티용품과 간식, 과일 등을 사 왔다. 아이는 아빠와 함께 자신의 생일 파티를 위해 거실을 꾸몄다. 오색으로 빛나는 비닐 리본이 늘어진 가렌트를 창문에 달고 그 위로 ‘HAPPY BIRTHDAY’ 모양의 풍선을 붙였다. 그동안 나는 아이가 요청한 치즈 케이크를 만들었다. 올해는 치즈 케이크가 인기다. 지난번 남편 생일에도, 집들이 선물로도 치즈 케이크를 만들었는데, 아이는 자신의 생일날에도 치즈 케이크가 먹고 싶다고 말했다. 생일상에 올릴 다른 음식들은 주문할 예정이라 아이를 위해 직접 만들어 주는 건 케이크밖에 없었다.
다음 날, 친구들이 오면 할 놀이와 상차림 막바지 준비로 금세 시간이 흘렀다. 약속 시간이 되고 주문한 음식이 테이블 위에 차려지자 아이들이 밀어닥쳤다. 여남은 명의 여자아이들이 집안을 채우자 시끌벅적 소란스러웠다. 어린이집을 같이 다닌 친구,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 2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 더 어릴 때부터 보았던 아이들인데 부쩍 자란 모습이 보였다. 마냥 아기 같던 아이들이 이렇게 자라 생일 파티도 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저희만 아는 이야기를 나눈다니 신기했다. 아니 신비로운 일이었다. 뱃속에서 콩알만 한 크기로 시작되었던 생명이 무럭무럭 자라 자신이 되어 가는 일은.
밥을 먹고 케이크에 촛불을 밝혀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선물을 주고받고 밖으로 나가 보물찾기와 피구를 했다. 집으로 돌아와 보드게임과 퀴즈 게임을 하고, 케이크를 나누어 먹었다. 어떤 순간엔 아이들 열두 명이 각자 떠들어대는 목소리에 정신이 나가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활기에 진이 빠졌지만, 아이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 모두가 봄과 닮았다고 느꼈다. 겨울의 언 땅에서도 말간 얼굴을 터뜨리는 꽃과 하루 새에도 키를 늘리는 여린 잎의 기세. 어느 정도 자란 잎으로 뜨거운 태앙을 고스란히 마주하는 강함과 동시에 그늘을 드리울 줄 아는 다정함까지 갖추었다.
놀이터에서 이쪽저쪽으로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봄날의 햇살 아래 반짝였다. 빛과 그늘이 성글게 엮인 자리로 아이들이 몰려들 땐 바다에서 갓 낚아 올린 물고기들이 떠올랐다. 매끈하고 유연한 몸이 파닥거릴 때마다 물방울과 빛의 조각이 흩뿌려지듯 달려 나가는 아이들의 몸에서 비늘처럼 빛 조각이 날렸다. 웃음소리는 물방울이 되어 고요한 한낮의 공간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나는 아이들의 기세에 놀라고 감탄하고, 감동하고 말았다. 보물을 찾겠다고 열띤 얼굴로 달려 나갈 때, 피구 공을 던지고 피하려고 작은 몸을 잽싸게 움직일 때, 친구의 생일을 축하한다며 목청껏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를 때, 게임을 맞추고 싶어 너나 할 것 없이 손을 들고 “정답!”을 외칠 때. 그 열렬함과 순도 높은 기쁨에 압도당했다. 아이들이 퍼뜨리는 순전한 열의는 파도처럼 나를 덮쳤다. 그 안에 가득한 생명력에 부딪히고 휩쓸려 얼얼했다.
아이들이 발산하는 파도를 거듭 맞느라 온몸을 흠씬 두들겨 맞은 듯 피로했다. 반나절 깊은 바다에서 수영하다 돌아온 사람처럼, 평소 보지 못했던 삶의 근원과 생명의 진원지를 발견한 사람처럼. 커다란 감동을 통과한 뒤엔 온몸이 뻑적지근하기 마련이다.
아이들 모두 아홉 해 전에는 엄마 뱃속에 자리잡은 작은 콩알이었다. 그랬던 존재들이 무럭무럭 자라 달리기를 하고 노래하며 춤춘다. 무언가를 좋아하고 꿈꾸고 도전한다. 각자의 이목구비와 성격으로 세상에 저마다의 색을 칠한다. 이보다 신비로운 일이 있을까. 없던 존재가 태어나 자기만의 모습을 키워가는 일. 빈 땅에 없던 싹이 돋아나 나무 한 그루가 되어가는 일. 저마다의 형태와 색을 만들고 그러다 그늘을 드리우고 열매를 맺어 또다른 생명을 보듬기도 하는 일. 자람은 그 자체로 희망이다.
울창한 여름이 온다는 소식을 들은 것 같았다. 아이들의 우렁찬 목소리와 힘찬 움직임에 그 소식이 담겨 있었다. 잎을 늘리느라 열심이라고, 그늘을 키우느라 요란하다고. 그런 아이들을 보며 낙담하고 근심하던 어른은 미래를 꿈꾸는 사람의 마음을 회복하고 있었다.
간밤 잠자리에선 아이가 태어난 날의 사진과 영상을 찾아 보았다. 작고 나약하던 아기가 건강한 어린이가 되었다. 잠으로 빠져드는 아이를 안고 삶이 건넨 신비가 품 안에 있음을 떠올렸다. 온기와 다정, 부드러움과 웃음으로 가득한 존재. 삶에게 신비를 선물받았구나. 그러니 낙담하고 절망할 수가 없다. 멈춘 듯 보이는 순간에도 미래로 향하는 존재가 곁에 있기 때문이다. 존재 자체로 희망을 품은 어린이가 우리 곁에 있기 때문이다. 고맙다 아가야, 내게 와 삶의 신비를 일깨워 주어서. 무언가를 통과한 몸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했다. 출산과 육아로 없던 생명이 태어나 한 해 두 해... 꼬박 꼬박 성장하는 걸 목도한 경험이 나를 다른 미래로 이끈다. 희망하는 미래로, 존재의 신비를 믿는 어른으로.
온몸의 관절이 무지근한 통증의 신호를 보낸다. 없던 존재가 세상에 나오는 일은 고통스럽고 아픈 일임을 깨닫는다. 모체 뿐만 아니라 아기 또한 그런 시간을 거쳐 세상에 나왔음을 기억한다. 신비는 그렇게 오는 일이라고 헤아린다.
아이가 태어난 시각은 오후 3시 17분. 그 시간 나의 몸은 다시금 출산의 환희로 돌아갈까? 아이의 몸도 세상의 첫 숨을 들이켰던 날카로운 찢어짐을 감각할까? 강렬한 고통과 희열이 뒤섞였던 최초이자 유일했던 순간의 감각. 나와 아이, 우리가 잊어버린 몸의 기억이 궁금하다.
생일 파티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아이들이 떼창을 하던 순간이다. 전날 만들어 냉장고에서 차갑게 준비해 둔 케이크에 '10'살 초를 밝혀 들고 나가자 아이들이 입을 모아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그 목소리에 귀가 쨍하다 가슴속이 꽉 차올라 뻐근했다. 맛있다며 활짝 웃던 그 얼굴들이 미래가 보내는 다정한 손 같았다. 케이크를 먹는 미래는 귀엽고 다정하고, 천방지축에 알 수 없는 가능성으로 요동쳤다. 누군가 가장 잘 만드는 케이크가 뭐냐고 묻는다면 치즈케이크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겠다.
* [글 굽는 오븐] 은 격주로 연재됩니다.
다음 연재일은 6월 2일입니다.
읽고 응원해주시는 작가님들, 독자님들,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