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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윤식 Jun 10. 2020

백만 명의 소련 여성이 적과 싸웠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2015

작품의 훌륭함은 누가 만든 것일까. 글을 쓴 작가일까 아니면 목소리를 들려준 취재원일까. 그 답을 내리기 어려울 정도로 글쓴이의 사상이 뛰어났고, 이야기 주인공들의 삶이 위대했다. 어떻게 기록하느냐 만큼 무엇을 기록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 문학동네 - 1만6000원

작가는 201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다. 그의 작품은 목소리 문학이라는 독특한 장르로 찬사를 받는다. 논픽션과 에세이가 섞인 르포르타주의 한 전형으로 봐도 무방할 듯하다. 그래서 조금씩 드러난 그의 취재 방식과 관점을 주의 깊게 훔쳐봤다.


이번 작품은 일반적이지 않은 전쟁기다. 우리는 전쟁을 승리로 기억하고, 전투에 사용된 전술과 장비 그리고 참여한 남성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하지만 여성이 전쟁에서 흘린 피와 땀은 생략된다. 작가는 그러한 모순에 문제의식을 느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백만 명의 소련 여성이 독일군과 싸웠다. 그들의 임무는 군복을 빨고 음식을 조리하거나 부상자를 돌보는 일에 국한되지 않았다. 저격총으로 심장을 뚫었고, 전차를 몰고 전투에 앞장섰으며, 전투기를 조종하며 나치 공군을 쓸어버렸다.


하지만 우리가 보는 전쟁 관련 다큐멘터리, 드라마, 영화, 조형물 등에는 여성들의 활약이 축소되어 기록됐다. 총탄이 빗발치는 진흙탕으로 뛰어들어 동료를 구하는 사람은 언제나 남자이며, 목숨을 걸고 적진을 정찰하는 사람도 남자다.


작가는 200여 명의 여성 참전 군인들에게 이야기를 듣는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몰랐던 여성들의 활약과 역할을 알아낸다. 그리고 남자와는 다른 시선으로 기억하는 2차 세계대전에 대한 진술로 전쟁의 참혹함을 전해준다.


그들이 말하는 그때의 진실을 무엇일까. 인식 이론인 오컴의 면도날은 가장 단순한 것이 진실이라고 하지만 전쟁은 예외인 것 같다. 한 단어, 한 문장으로 전장 속의 여성을 논리적으로 정의하기는 너무 어렵다.


단순히 여자는 약해서 전투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여자라는 부분이 유리하게도 불리하게도 작용한다. 무엇이 어떻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만큼 여러 진실이 존재한다. 200명의 목소리가 책 속에서 그것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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