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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윤식 Jun 13. 2018

자신과 닮은 작가를 찾아라

나는 왜 쓰는가, 1947

조지 오웰


민음사에서 펴낸 『동물농장』을 읽었다. 책 후반부에는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와 『자유와 행복』이 수록됐다. 그중 『나는 왜 쓰는가』를 언급하고 싶다. 여섯 장에 불과한 글에서 깊은 공감을 얻었다. 그건 나와 오웰의 닮은 점을 찾았기 때문이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 글 고수들은 흔히 송나라 구양수가 말한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을 강조한다. 뻔한 가르침이 고리타분하지 않은가. 다른 방법도 있다. 자기와 닮은 작가를 찾아 본보기로 삼기를 추천한다. 그의 삶을 공부하고 작품을 읽다 보면 색깔이 뚜렷해진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자신과 닮은 작가는 어떻게 찾는 걸까?




먼저 자신을 탐구해야 한다. 본인 얼굴을 알아야 자기와 닮은 사람을 찾을 수 있다. 그 과정을 정리해봤다.


첫째, 장르를 정해라.

누구나 자신이 쓰고 싶은 글의 갈래가 있다. 그 분야를 최대한 구체적으로 설정해라. "소설 쓰고 싶어요."라는 답변은 빈약하다. 소설은 수많은 줄기로 나뉜다. 길이에 따라 장편, 중편, 단편으로 구분된다. 역사, 추리, 과학, 로맨스, 판타지, 무협, 스릴러, 가족소설 등의 주제로도 분류된다. 끝이 아니다. 예를 들어 과학 소설은 하드 SF와 소프트 SF로 나뉘며, 시간여행·밀리터리·괴수물·아포칼립스 등의 온갖 하위 범주가 존재한다. 다시 묻겠다. 당신의 쓰고 싶은 글의 장르 무엇인가.


둘째, 문체를 파악하라.

글을 쓰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만의 문체를 가지고 있다. 그 문체를 튼튼하게 만들어야 한다. 다양한 문장을 구사하기 위한 전제다. 자기 스타일이 없다면 여러 가지 글을 쓰기 어렵다. 유도와 비슷하다. 업어치기를 확실히 익혀야 빗당겨치기, 허리후리기 등 다른 메치기 기술을 배울 수 있다. 그러니 당신의 문체를 정확히 알아봐라.


셋째, 시선을 발견해라.

인간의 취향은 제각각이다. 평소 무엇을 볼 때 자신의 시선이 멈추는지를 떠올려봐라. 설치미술? 조각품? 건축물? 한옥? 영화? 애니메이션? 노동자? 노숙자? 자동차? 신발? 안경? 야구? 뭐든 좋다. 시선이 머무는 곳이 당신 분야다. 그 속에서 만들어지는 감정과 생각을 텍스트로 옮기면 글이 된다. 하지만 독자에게 보여주는 글을 쓰려면 답을 하나 더 찾아야 한다.


넷째, 욕망을 인정해라.

글은 커뮤니케이션 도구이며, 그것의 목적은 '설득'이다. 여기엔 단순 전달부터 변화 창출까지 포함된다. 신발을 보고 떠오르는 감정과 생각을 글로 적어보자. 가격이 비싸고 색깔이 어떻고 착용감이 어떻더라는 식으로 쓰일 가능성이 높다. 이건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다. 여기에 주관을 더해야 한다. 글의 방향성이라고 볼 수 있다. 나는 이것을 '욕망'이라고 생각한다.


최소한의 책임감을 글에 담아야 한다. 이유와 목적이 분명할 필요가 있다. 이 신발이 다른 회사 제품과 비교해보니 가격은 비싸고 품질이 떨어진다. 그래서 다른 제품을 추천한다는 식의 방향을 가져야 한다. 생각과 감정에 욕망을 더할 때 글은 완성된다. 욕망이 없다면 꾸준히 글을 쓰기도 어렵다. 그래서 당신의 욕망을 반드시 찾아야 한다. 그리고 수용해라.




네 가지 질문에 답을 얻었다면 그에 부합하는 작가를 찾자. 어렵지 않다. 자신의 장르, 문체, 시선, 욕망을 기초로 작품을 필터링하자. 머지않아 자신의 본보기를 찾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조지 오웰은 자신을 어떻게 해석했을까? 『나는 왜 쓰는가』에 그 내용이 담겼다. 그는 글쓰기에서 <묘사>에 가장 집착했다. 본문을 옮겨본다.


“내가 한 일이나 눈으로 본 것을 열심히 '묘사'해 보는 일에 점점 더 열중하게 되었다. "


"이런 묘사를 위해 나는 정확한 어휘들을 찾아야 했고 또 실제로 찾아보기도 했지만, (중략)"


"생각건대 나의 <이야기>는 각기 다른 나이 때의 내가 그때그때 존경했던 이런저런 작가들의 문체를 반영한 것이었을 테지만, 지금 기억으로는 언제나 뭔가를 꼼꼼하게 묘사해 보는 그런 성질의 것이었다."


"사물 묘사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이미 내가 알 만큼 알고 있는 터였다. 그러니까 당시 내가 쓰고 싶었던 책(감히 책을 쓰고 싶었다고 말해도 된다면)이 어떤 종류의 것이었는지 분명하다. 말하자면 나는 거대한 자연주의적 소설 - 불행한 결말로 끝나고 미세한 묘사와 인상적인 직유로 가득 찬, 그리고 말이 소리 그 자체를 위해 사용되고도 하는 화려한 문장들 투성이의 그런 자연주의적 소설을 쓰고 싶었다."

 



문체에 관한 언급도 있다. 오웰은 미문(美文)에 매달리지 않았다. 그보다 시선을 넣는 데 주력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아름답게 쓰기보다는 더 정확하게 쓰려고 노력한다는 말만 해두고자 한다. "


"어떤 글쓰기의 스타일 하나를 잘 다듬어 터득하고 나면 그 순간 우리는 그 스타일을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동물농장>은 내가 정치적 목적과 예술적 목적을 하나로 융합해 보고자 한, 그래서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충분히 의식하면서 쓴 첫 소설이었다."  




작가는 어떤 동기로 글을 쓸까? 오웰은 산문 작가들이 책을 쓰는 모티프를 네 가지로 규정했다. 동시에 자신은 이기심과 미학적인 열정 그리고 역사적 충동으로 작품을 저술한다고 자평했다. 다음은 오웰이 말한 네 가지 동기다.


1. 순전한 이기심

"대개 나이 서른쯤을 넘기면 사람들은 개인적 야심을 버리고 대체로 남을 위해 살거나 일상적 일에 짓눌려 살아간다. 그러나 동시에 세계에는 소수의 재능 있는 인간들, 끝까지 자기 자신의 삶을 살아보려는 고집 센 인간들이 있고 작가는 이 부류에 속한다. 진지한 작가들은 대체로 저널리스트들보다 더한 허영과 자기중심주의를 갖고 있다. 돈에 대한 관심은 덜 할지 모르지만. "


2. 미학적 열정

"가치 있다고 느껴지는, 그래서 놓칠 수 없다고 생각되는 어떤 경험을 공유해 보려는 욕망."


3. 역사적 충동

"사물/사건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한 사실들을 발견하며 후대를 위해 이것들을 모아두려는 욕망."


4. 정치적 목적

"세계를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욕망, 성취하고자 하는 사회가 어떤 사회여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놓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보려는 욕망. 어떤 책도 정치적 편견으로부터 아주 자유롭지 않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견해 자체도 하나의 정치적 태도이다."




자신을 알고, 자신과 닮은 작가를 찾았고, 오웰이 말하는 글쓰기의 동기도 들었다. 그렇다면 일련의 내용은 어떻게 설정되는 걸까? 결국 모든 것은 '경험'으로 만들어진다. 오웰도 그랬다. 그는 인도와 버마에서 대영제국 경찰로 근무하고 나서부터 권위를 경계했고 노동자 계급의 존재를 알게 됐다.


그는 "나는 잘 맞지 않는 직업(인도와 버마에서의 대영제국 경찰이라는)으로 첫 5년을 보냈고 가난을 경험했으며 실패를 맛보았다. 이런 경험 덕분에 나는 권위라는 것에 대해서 안 그래도 내가 이미 갖고 있던 증오를 한층 더 키웠고 노동자 계급의 존재를 처음으로 충분히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1934년 오웰은 장편소설 『버마 시절』을 출간한다. 영국의 부패한 제국주의와 인종적 우월주의에 사로잡힌 백인 관리의 잔혹함을 비판하고 싶었던 욕망이 이 책에 담겼다.


스페인 전쟁과 1936~1937년의 기타 사건 이후에는 어떤 확고한 이유를 가지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단순한 폭로나 비판보다 그것들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에 무게를 뒀다. 본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지난 10년을 통틀어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정치적 글쓰기를 예술이 되게 하는 일이었다. 나의 출발점은 언제나 당파 의식, 곧 불의에 대한 의식이다. "


"그 책을 쓰는 이유는 내가 폭로하고 싶은 어떤 거짓말이 있기 때문이고, 사람들은 주목하게 하고 싶은 어떤 진실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일차적 관심은 사람들을 내 말에 귀 기울이게 하자는 것이다."




오웰의 말처럼 읽히는 글을 쓰는 것이 글쓴이의 숙명이다. 개인적으로 작가의 진심이 느껴지면 좋은 글이라고 생각한다. 독자들도 그런 글을 찾는다. 하지만 진심을 텍스트에 담기는 무척 어렵다. 이럴 때 자기와 닮은 작가를 벤치마킹하는 것이 유용하다.


나에게는 조지 오웰이 그런 존재다. 『나는 왜 쓰는가』를 읽으며 다시 한번 확신했다. 그의 글과 세계관을 더 깊이 탐미하기로 했다. 여러분도 자신만의 조지 오웰을 찾는다면 더 좋은 글쓴이가 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추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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