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와 런던 거리의 성자들, 1933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조지 오웰의 자전소설
조지 오웰 지음, 자운영 옮김 / 세시 - 1만2000원
가난에 관한 책이다. 조지 오웰이 파리와 런던에서 경험한 하층민 생활을 정리한 작품이다. 1933년 출판된 이 책은 그의 첫 작품인 동시에 첫 르포르타주다. 이 당시 오웰은 가난에 가장 관심을 기울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얻은 통찰이 이후 작품 세계의 기반이 되었다.
오웰은 왜 가난에 관심을 가졌으며, 그것을 왜 르포로 풀었을까. 개인적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미얀마에서 경찰로 근무하며 그는 식민통치에 염증을 느꼈다. 누가 누군가를 지배하고, 그 속에서 발생하는 불합리하고 폭력적인 상황을 역겨워했다.
문제를 인식하면 그것을 제대로 알고 싶어 진다. 알면 구조가 보이고 비판하게 된다. 비판하다 보면 대안이 그려지고, 그다음 자신만의 성향이 자라난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오웰은 외롭고 배고프게 사는 최하층 사람들의 삶에 관심을 두게 된다.
작가나 기자들은 인터뷰 또는 짧은 잠입으로 취재한다. 그런데 오웰은 파리와 런던에서 무려 5년간 하층민으로 지내며 가난을 관찰했다. 그의 대단한 점은 이것이다. 작품을 쓴다는 생각으로는 절대 할 수 없다. 그는 진심으로 어려운 사람들에 삶을 걱정했고, 그것을 이해하려고 한 인물이다. 용기 따위로는 시도할 수 없다. 그의 말처럼 ‘나의 출발점은 불의에 대한 의식이다’는 점을 다시 확인했다. 나는 이것을 존경한다.
『동물농장』과 『1984』의 출발도 여기다. 오웰은 파리와 런던에서 하층민으로 생활하며 가난의 민낯을, 아니 직접 가난의 고통을 경험했다. 그 과정에서 가난의 원인을 인간과 사회 및 체제의 불완전성 그리고 지식인의 비양심으로 꼽았다. 이것을 비유한 작품이 『동물농장』이고, 이러한 체제의 극단을 보여주는 작품이 『1984』다.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은 『파리와 런던 거리의 성자들』의 심화 편이라고 볼 수 있다.
르포의 핵심은 식견이다. 현장을 잘 옮기는 것이 르포르타주는 아니다. 가수 이상민 씨의 말을 바꿔서 말하면 ‘현상에서 구조를 볼 줄 알면 삼류, 구조에서 허점을 발견하면 이류, 허점을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면 일류’다. 그 과정이 고스란히 이 책에 담겼다. 예를 들어 접시닦이의 삶이 무엇인지, 그 삶은 어떤 구조를 가졌는지, 원인은 무엇인지, 이것을 바꾸기 위해서는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알려준다.
진실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다. 편한 진실은 진실이 아니다. 불편한 진실만이 진실이다. 남들이 다 아는, 뻔한 그런 것들은 굳이 글로 옮길 필요가 없다. 모두가 알지만, 입 밖으로 내뱉지 않는 것들, 이 이야기를 들으면 누군가 불편할 것 같은 것들, 그것들이 진짜 진실이다. 이 책에서는 가난에 관한 진실이 적혔다. 예를 들어 가난과 거짓말의 관계, 정직함의 어리석음, 접시닦이 세계에 발을 들으면 결코 빠져나갈 수 없는 이유, 무료함의 고통 등 수없이 많다.
책에 적힌 현실도 인상적이다. 시대 배경은 앞서 적었듯이 1920년 중후반의 파리와 런던이다. 오웰은 호텔에서 일하며 웨이터의 감정노동을 지적했다. 반복 노동이 가져오는 사고 정지도 지금과 다르지 않다. 당시 영국에는 매달 10실링의 노령연금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노령연금 첫 수혜자는 2008년에 나왔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 책을 읽어야 할까. 오웰의 마지막 말과 생각이 같다. “만약 당신이 예상치 못한 일로 빈털터리가 되었을 때, 당신을 기다리는 세계가 어떤 곳이라는 것 정도는 이야기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