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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윤식 Feb 09. 2021

UPH를 아십니까

뭐든 다 배달합니다, 2020

김하영 지음 / 메디치미디어 - 1만4000원

UPH는 unit per hour의 약자다. 시간당 생산량이라는 뜻인데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던 지은이의 급여를 결정하는 기준이다. 그는 주문을 받은 물품을 가져오는 이른바 ‘집품’를 담당하는 피커맨으로 근무했다. 받은 PDA의 화면에는 실시간으로 실적이 나타난다.


피커맨의 UPH는 보통 90은 넘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불이익이 생긴다. 잘하는 사람은 140까지 나온단다. 저자는 그 개수를 채우려고 난방이 되지 않는 창고에 외투를 벗고 들어갔다. 한겨울이지만 속옷이 땀으로 축축해질 정도로 뛰어다녔다고 전한다.


2021년 1월 11일 쿠팡 동탄물류센터에서 숨진 노동자가 하던 업무이기도 하다. 그는 야간 집품을 마치고 화장실에서 쓰러져 숨을 거뒀다. 창고의 추위, 그게 아니면 90은 넘겨야만 했던 의지가 고인을 삼켜버린 것일까. 이유가 무엇이든 피커맨에게 주어진 온정은 없다.


실제 지은이가 작업을 멈추자 곧장 관리자가 나타나 집품하라고 지시한다. 단 1분의 비업무시간도 허락되지 않는다. 시스템이 일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본문의 말처럼 생각은 인공지능이 하고, 사람은 인공지능의 팔다리를 대신한다. 이미 로봇 팔다리는 나왔는데 비싸서 인간을 사용할 뿐이란다.


UPH가 낮으면 다시 일을 나오기 어렵다. 그래서 페트병에 소변을 보는 사람도 있단다. 이러한 쿠팡의 본보기는 아마존이다. 그곳의 회장 제프 베조스의 ‘회사와 근로자를 중재할 노조는 필요하지 않다’는 발언도 적혀있다. 직원 따위는 언제든 자르고 채울 수 있다는 철학이 엿보인다.


그래도 쿠팡은 좋은 곳이란다. 임금과 4대 보험 처리가 정확하고 근로계약서를 작성해준단다. 주 15시간 이상 일하면 주휴수당을 지급하고 월 60시간 이상 일하면 4대 보험료를 내준단다. 기본을 지키는 곳이 선망의 대상으로 상승해버린 세상이 안타까울 뿐이다.


비정규직이 늘어났지만 문재인 정부는 1만 원 공약을 지키지 못했다. 오히려 지금의 여당은 식대와 복지비용을 임금에 산입하도록 법을 바꿨단다. 그래서 쿠팡이 셔틀버스 요금과 밥값을 빼고 지급해도 불법이 아니란다. 이게 가장 슬펐다. 최저임금노동자가 믿을 곳은 어디에도 없다.


지은이는 배민 커넥터와 카카오 대리기사로 근무한 경험도 자세히 적었다. 그중 <19장: 월 450만 원의 허상>을 주목할 만하다. 라이더, 대리기사, 택배기사는 개인사업자 아니냐. 자기가 하고 싶으면 하고 안 하면 그만 일 테고, 한 만큼 버는 것 아니냐는 비난을 종종 듣곤 했다.


특수고용노동자가 무엇인지 모르는 시민이라면 그럴 수 있다. 그들에게 진실을 알려주고 싶다면 저자가 기록한 그 이야기를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초기 비용과 수수료, 보험료는 얼마일까. 그것을 떼고 최저임금 이상을 벌려면 어느 정도의 노동이 필요할까? 알면 그들을 절대 비난하지 못한다.


고액 수입 라이더나 택배기사가 있다고 치자. 과연 그가 신호와 속도를 준수하고 차간 주행을 하지 않으면서 안전하게 일할까? 주 40시간의 법정근로시간과 가족과의 여가와 충분한 휴식, 사회보장제도라는 기본권을 누릴까? 이렇듯 진실은 단순하지만 전달하기가 어렵다.


지은이는 사라진 연대를 지적한다. 열악하거나 부당한 부분에 대해서는 권리를 주장해야 하는데 이들은 그러지 못한다. 같은 공간에서 일하며 의견을 나누고 경험을 공유해야 하는 물리적 요소가 생략되어서다. 당장 쥐는 현금이 중요한 현실도 연대와 집단행동을 멀게 만드는 요인이다.


현실을 견디고 열심히만 일해도 삶은 나아지지 않는다. 저자는 쿠팡물류센터에서 근무하는 자신을 보면 ‘나는 아무리 힘들게 일해도 최저임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굴레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 노동으로 계층 이동이 불가능한 시대이기 때문이다.


자본수익률이 노동수익률을 추월한 지 오래다. 자본수익을 낼 수 있는 종잣돈을 가진 부자, 금수저, 선배 세대는 주식과 부동산 등 불로소득으로 더 많은 재산을 차지한다. 라이더가 신호를 수만 번 위반해도, 대리기사가 일년을 밤을 새워도, 택배기사의 허리가 부러져도 그 수준에는 오를 수 없다.


그 상황에서 플랫폼 기업은 최신 IT·AI 기술을 사용하여 사람을 숨 막히게 부린다. 그들의 궁극적 목표는 모든 인력의 로봇화다. 풀필먼트 시스템을 보면 그리 먼 이야기는 아니다. 그리고 다른 산업의 형태도 같은 추세로 변화할 것이다. 우리의 회사와 가정으로 파고들기 직전이다. 


양극화의 종착지는 폭력이다. 먼저 갈등을 낳고 사회를 분열시킨다. 그 대립이 심해지면 인간의 이기심이 물리적인 형태로 변화할 것이다. 혁명일 수도 있고 전쟁일 수도 있다. 그전에 다른 이의 삶도 살피고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뭐든 다 배달하는 사회가 그리 좋지만은 않음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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