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객이라면 으응? 로컬이라면 으응! 하는 몇 가지 말들
최근 거의 며칠, 아니 거의 한달동안 이 브런치의 두 번째 글, 시애틀 정착기에 대한 조회수가 지속적으로 늘어났습니다. 브런치에서 제공하는 통계만으로는 원인을 잘 모르겠네요. 아마도 이제 곧 미국 전문직 취업 비자인 H-1B 비자 소지자분들이 입국하시는 시기라 그런 거 아닐까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일대도 실리콘밸리만큼은 아니지만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 IT회사들이 많으니까요. 이 시기가 다가온다는 건, 다른 의미로 제가 여기 온 지 일 년이 되어간다는 이야기기도 합니다. 아직 영어도 어버버하고 모든 게 낯선데, 아 이제 여기 일년 살았어요 말해야 하네요 부끄럽네...
이 부끄러움을 좀 덜어내기 위해, 오늘은 미국도 아닌! 시애틀에서 많이 보게 될 영어표현들을 좀 정리해볼까 합니다. 사실 이거 몇 단어 알아도 영어 실력이 대단하다는 소리는 못 들을거에요. 그래도 시애틀 출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면 '어 그런것도 알아요? 대단하네' 이런 얘기 정도는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시애틀과 주변 도시(벨뷰, 레드먼드 등)들을 지나다니다 보면, 숫자 12가 적힌 연두색 혹은 남색 표시가 많이 보일 겁니다. 종종 'We are 12'라는 표현도 보이죠. 이 표현은 시애틀의 지역 미식축구 팀인 시애틀 시호크스(Seattle Seahawks)의 팬임을 이르는 말입니다. 미식축구 한 경기의 선수 수가 11명이고, 그들을 응원하는 팬은 12번째 선수라는 뜻에서 씁니다. 흔히 자기 집 창문이나 담벼락 앞에, 심지어 공공기관이나 회사 같은 건물 앞에서도 이런 깃발을 많이 달아둡니다. 전자는 대단한 팬심이겠구나 하지만, 후자는...거의 시호크스가 종교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사실 종교 같다는 말이 과하지 않을 정도로, 이 동네 사람들의 시호크스 사랑은 정말 격합니다. 부산의 롯데 자이언츠에 대한 사랑이 시들해 보일 정도로요. NFL(미국 풋볼 리그)가 진행되는 9월부터 2월, 경기가 있는 주말만 되면 최소 10명 중 1명이 시호크스 유니폼을 입고 다닙니다. 금요일 근무 때마다 시호크 유니폼을 입는 은행도 있습니다. 최근에는 구단에서 시호크스 상품 라이센싱을 열을 올렸는지, 백화점에 가면 정말 별의별 시호크 상품들을 다 볼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두니앤버크(Dooney & Bourke)에서 시호크스 가방과 지갑이 나왔고, 어떤 브랜드였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도자기까지 나왔습니다. 진짜 거의 종교네요...
시애틀 도착 초기 사회보장번호(SSN: Social Security Number)받으러 갔을 때, 센터로 데려다 주던 에이전트가 가르쳐 준 말입니다. 당시 날씨가 전형적인 시애틀 가을겨울 날씨답게 흐리고 비올 것 같았어요. 그걸 보고 에이전트가 이런 시애틀 특유의 컴컴한 하늘을 Seattle Gray라고 한다고 가르쳐 줬습니다.
1년 살아본 결과, 가을 겨울은 정말 저 말 그대로 우중충합니다. 맑은 날에 비하면 할 수 있는 것이 줄어들고 기분도 우중충해지기 쉽지요. 우중충한 기분을 들뜨게 하려는 이유에서인지, 이 동네는 알려진 대로 커피 문화가 잘 발달해 있습니다. 그리고 커피에 비해선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맛있는 맥주와 와인들이 많습니다. 이 동네 맥주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좀 풀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많이 애정해요.
이런 말이 나온 걸 보면 시애틀은 추운가요? 라는 말을 던질 수도 있겠지만 날씨랑 관련된 말은 아닙니다. 추위에 대한 표현이 나오기에는 시애틀 날씨가 별로 안 춥기도 하고요. 시애틀 사람들이 불친절하진 않지만, 친구라고 부를 정도로 가까워지기 힘든 것을 의미합니다. 북유럽계와 아시아, 특히 일본계 이민자들이 많아서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고도 합니다. 요새는 시애틀 내 IT 기업으로 취업이민을 오는 아시아계 이민자들 때문에 이런 현상이 가속화된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많이 쓰이는 말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약간 글쎄? 하는 부분이 있는 말입니다. 같은 아파트 내에 있는 이웃들끼리 워낙 잘 놀고 서로 파티도 같이 하는 걸 봐서인지, 그닥 공감이 되진 않네요.
사우스 레이크 유니언(South Lake Union)의 약자입니다. 시애틀을 둘러싸고 있는 호수 중 레이크 유니언(Lake Union)이라는 곳이 있는데, 이 호수의 남부 일대를 이르는 말입니다. 캘리포니아 남부를 소칼(SOCAL, South California)이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한 말이죠. 아마존 사옥들이 쭉 늘어져 있고 이들을 중심으로 주택가나 공원 등이 발달한 구역입니다. 정착 초기에 집 구해주는 에이전트가 했던 말에 따르면, 원래는 시애틀 내에서도 슬럼가였다고 합니다. 아마존이 이 구역에 사옥을 지으면서 주변이 개발되었다고 하네요. 지금도 이 일대에 가면 건물들이 끊임없이 올라가고 있고...집값도 열심히 올라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 동네 주변을 지나다니다 보면 아마존을 직/간접적으로 '까는' 포스터들이 많이 보입니다. 약 한달 전쯤 간만에 방문했을 때는 벽보들이 많이 제거된 것 같았는데, 지금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외국인 개발자들 입사철을 맞아 더 다닥다닥 붙었을지도...아래 사진들은 작년 막 시애틀에 도착했을 때 찍은 벽보들 중 몇 개를 고른 것입니다.
시애틀 로컬들이 가장 많이 진학하는 학교가 두 군데 있는데, 하나는 흔히 유덥(UW)이라고 부르는 유니버시티 오브 워싱턴(University of Washington)이고, 또 하나는 와슈(WSU)라고 줄여 부르는 워싱턴주립대(Washington State University)입니다. 미국의 다른 동네도 그러겠지만, 뭔가 이 동네 한 군데에 오래 있어서인지 다른 곳보다 이 지역에서 자기 출신 대학을 많이 과시하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듭니다. 실제로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대학교 안이 아닌 곳에서도 학교 마크가 그려진 기념품을 팔기도 하고요.
한국에서 자신의 출신 대학교 로고를 붙이고 동문임을 드러내는 것처럼, 이 학교 출신들도 자기 동문들을 부르는 말들을 따로 씁니다. 유덥은 학교의 상징 동물인 시베리안 허스키에서 따서 자신들을 허스키(Husky)라고 부릅니다. 조금 더 캐주얼한 의미로 독(Dawg)이라는 말도 쓰는데, 아마 허스키가 개(Dog)니까 거기에서 온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로고에는 보라색과 금색, 혹은 보라색과 흰색을 많이 씁니다. 와슈는 고양이과 동물인 쿠거(Cougar)가 상징이라 자기 동물들을 쿠거라고 부릅니다. 덧붙여 허스키와 쿠거는 각 대학 소속의 스포츠팀 이름이기도 합니다. 로고에는 붉은색 바탕에 흰색 글씨를 많이 씁니다.
아마 어딘가에는 제가 모르는 시애틀 로컬만의 용어들이 더 많을지도...영어도 더 많이 늘고, 근로허가 나와서 더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면 더 많이 알게 될려나요. 이런 표현을 배워갈 수록, 더 매력있고 정이 드는 도시에요. 시애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