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속에 사는 나를 만나라
내면아이를 처음 만난 건 줄리아 카메론의 아티스트 웨이 워크숍에 참여할 때였다. 어느 날 창조성을 회복할 수 있다는 줄리아 카메론의 "아티스트 웨이"를 읽게 되었다. 혼자서 책을 읽었지만, 12주간의 워크숍으로 구성된 책을 읽는다고 그 내용이 들어올 리 만무했다. 그때, 누군가가 아티스트 웨이를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했고, 그 자리에 참석했다. 모르는 분이었고,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그 작업을 했다.
아티스트 웨이에서 가장 강조하는 기법이 있는데 그게 바로 모닝 페이지다. 모닝 페이지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바로 펜을 들고 쓰기 시작하는 거다. 정신이 혼미한 데 손에 펜을 잡고 쓰면 머릿속에 있는 온갖 잡동사니가 다 튀어나온다. 전날 있었던 일에 대한 기억, 저녁식사 메뉴, 먹고 싶은 것, 상사나 동료에 대한 욕설도 나오고, 나 스스로에게도 멍청한 년이라고 욕을 한 바가지 하기도 했다.
2007년 총 12주간 아티스트 웨이를 진행하는 동안 모닝 페이지를 시작한 지 일주일쯤 지났을 때였다. 갑자기 작은 어린아이가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등을 돌리고 앉아서 나를 쳐다보고 있지 않았다. 갈래 머리를 하고, 어린 나였다. 그 아이는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한 참을 그렇게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아이는 나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답답했다. 불쌍하기도 했고, 애처롭기도 했다. 그러다 흘깃 쳐다보는 아이의 눈에서 분노가 느껴졌다. 왜 이러고 살아? 나 답답해하는 거 보이지 않아? 기타 등등 수많은 불평과 불만이 머릿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이런 기록이 있다. 당시 느낌을 이렇게 써놓고 있다.
"오늘 아침에는 모닝 페이지를 쓰면서 제 속 구석에서 잘 보이지 않던 조그만 어린애를 봤다. 두 눈 가득 눈물을 머금고 처음에는 슬픈 듯이 보이더니 나중에는 그 눈에 분노가 보였다. 왜 이렇게 나를 힘들게 하느냐는 듯이 말이다. 더 쳐다보고 싶었는데, 그 분노에서 두려움이 느껴져 황급히 도망을 쳤다. 그 아이는 왜 그런 눈으로 저를 쳐다보고 있었을까."
그 아이를 처음 본 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울면서 노트를 썼다.
'왜 이렇게 사나, 왜 이런 어려움 속에서 나는 하루하루 버티고 있는 걸까?'
그 당시 나는 서울생활도 적응을 해서 이골이 날 정도였는데, 오히려 지방 사람들이 서울에 가면 더 깍쟁이가 된다는 말을 듣듯이 나도 그런 정도까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나는 힘들었고 어려웠다. 회사 생활은 넌더리가 날만큼 났는데, 난 그곳을 벗어날 생각은 눈곱만큼도 하지 못했다. 그냥 견뎌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려운 현실과 나만의 고민 속에서 나는 옴짝달싹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나에게 첫 모습을 보였던 꼬마는 그 뒤로도 계속 그 모습 그대로 나에게 나타났다. 전혀 성장하지 않은 작은 아이의 모습으로 말이다. 화가 나서 입을 앙 다물고, 손을 꽉 주먹을 쥔 채로. 볼 때마다 저 입을 열면 어떤 말이 튀어나올까 걱정이 되었다. 욕이 튀어나오기보다는 울음보가 먼저 터질 것 같아서.
그런 아이의 모습이 계속 눈앞에 어른거리고, 느껴졌음에도 나는 그냥 뒀다. 그 아이는 그 아이이고, 나는 그 아이와 할 것이 없었다. 말을 들어 보고 싶지도 않았고, 물어보고 싶지도 않았다. 나올 이야기는 뻔하니까.
하지만 이제는 그래서는 안될 것 같다. 지금까지 오랜 기간 콘크리트를 쳐 발라서 꽁꽁 숨겨둔 내 내면의 이야기를 과연 누가 해줄 수 있을까? 결국 내 내면에서 나를 지켜본 그 아이만이 해줄 수 있을 거다. 이야기를 잘해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시도라도 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 아이는 아직 꼬마지만 나는 이미 성인이다. 50년의 세월을 살아왔고 앞으로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길지 않을 그런 중년이다. 게다가 대인관계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면 풀고 싶어 하는 사람이 먼저 뭔가를 해야 한다. 지금 이 상황에서도 코치의 직업병이 어김없이 도진다. 그래, 알았다고.. 내가 먼저 뭔가를 해야 하는구나.
그래, 그 꼬마를 만나러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