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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현 행복코치 Jun 09. 2022

현아 조금 커졌다

현아가 힘을 키우고 있다.

"역시나 바쁘군." 


밤 9시까지 코칭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지하철을 내려 집으로 오는 버스를 타고 졸다 깨보니 바로 옆에 현아가 앉아있다. 그런데, 현아가 조금 성장했다. 오늘의 모습은 고등학생처럼 키도 커지고 덩치도 좀 있다. 예전의 삐죽거리면서 울던 꼬마는 어디가고 반항기가 가득한 고딩의 모습으로 앉아있다. 언듯봐서는 현아인지 모를 정도이다. 하긴 지난 번 만났을 때도 약간은 어색한 느낌이 있기는 했다. 마치 아이 속에 어른이 들어앉은 것같은 그런 느낌.. 코칭을 오랫동안 한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그런 직감이라고 할까.. 하지만 이렇게 불쑥 성장한 모습으로 찾아오리라고는 생각치 못했다. 


"아, 놀랐네, 언제 이렇게 큰거야?" 


"내가 좀 생각을 해봤는데, 너랑 댓거리를 하려면 내가 좀 성장해야겠더라고. 그래야 힘이 부쳐서 나가떨어지지 않지. 너랑 이제는 좀 진지하게 싸워볼 참이야. 특히나 썩은 지도 모르는 동앗줄을 어찌나 몸에 잘 감고 계시는지 말야." 


"동앗줄? 무슨 동앗줄??" 


"까마귀랑 친구하셨어? 네가 지금 동앗줄 붙잡고 있다면서?" 


"아, 그거,.. 그렇지.. 동앗줄, 썩은 줄 아는데, 그거 붙잡고 있지." 


"불잡고 있다고? 아니거든요. 너 아예 동앗줄과 한 몸이야. 완전 칭칭 감고 있는데 뭐." 


"벌써 싸움을 거는 거야? 도와달라고 너를 불러낸거지 싸우자고 불러낸 건 아닌데." 


"내가 봤을 때는 대충 대화로는 되지 않을 것같거든. 네가 가진 틀이 어지간히 튼튼해야 말이지. 조금 흠집이라도 내려면 복싱이라도 배워야 할 까봐. 헛둘 헛둘 한 번 배워볼까?" 


"아서라… 그래도 이렇게 친히 납셔주시니 감사한데?" 


"그렇지? 이제는 내 맘대로 네 앞에 나타날 거니까 놀라지나 마시라고." 


"놀라긴, 네가 난데 뭘 놀래. 오늘은 너무 커버려서 좀 놀라기는 했다만." 


"응. 조만간 좀 더 나이든 모습으로 나타날거니까, 그 때는 조금 놀랄 수도 있겠네." 


깐죽거리듯이 이야기를 하는 현아의 모습이 꼬마 때와는 달리 조금 편해 보인다. 얼마전 토라진 모습으로 사라진 꼬마아이는 어디로 간 걸까.. 저 속에 분명이 그 아이도 있을텐데. 한편으로는 반갑고 한편으로는 좀 두렵기도 한 그런 기분이다. 언제 토라진 꼬마가 튀어나올까? 차창 밖으로는 가로등이 휙휙 지나가고 버스 차창에는 두 사람이 앉는 의자에 혼자 앉은 내 모습만이 비쳐보이고 있다. 현아는 내 눈에만 보이니까. 


"오늘 이렇게 바쁘게 일하고 돌아오는데 저녁은 챙겨 먹었어?" 


"알면서 뭘 묻냐. 제대로 못 먹은 거 알면서.. 이렇게 살면 안되는데 말이야." 


"야, '이렇게 살면 안되는데' 그 말 좀 그만 하면 안되냐?" 


"안하고 싶은데 계속 나오네." 


"도대체 어떻게 살고 싶은데? 살고 싶은 모습은 있고?" 


"살고 싶은 모습… 살고 싶은 모습이라… " 


참 간단한 질문인데, 현아에게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한심하다. 사실 이 질문은 내가 고객에게 자주 하는 질문이다. 그런데 막상 내가 질문을 받고 나니 쉽게 답을 하기가 어렵다.  이 질문을 듣는 고객들도 답하기 어렵겠다 싶다. 한참을 머뭇거렸다. 


"참 한심하네.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 하루에도 몇 번씩 물어보면서 정작 나 자신이 어떻게 살고 싶은가는 답을 모르겠어. 지금처럼은 아닌 건 맞는데…" 


"자알 한다. 그러고도 코칭을 하고 다니냐? 지금까지 가졌던 직업 정신은 어디에 엿바꿔 드셨나?" 


"키만 큰 줄 알았더니 베베꼬는 것도 더 늘었구나. 듣기 좀 그러네.." 


"좋게 말해서는 안들어 먹을 거잖아. 초 강력 펀치를 날려야지." 


"아서라.. 그러다 다칠라…" 


"말 그만 돌리고, 지금까지 생각하지 않았다면 지금이라도 생각해서 말해봐주지 그래?" 


"음.. 글쎄. 지금처럼은 아니겠지. 기타도 치고, 노래도 하고, 글도 쓰고, 책도 읽고, 가족들과 좋은 곳에서 외식도 하고, 그리고 사람들과 만나서 좋은 이야기도 나누고. 그런데 그럴려면 경제력이 뒷바침되어야 하니까, 일을 안할 수는 없겠네." 


"너는 일을 왜 하는데?" 


" 글쎄다.. 묻는 말마다 말이 막히네. 일은 그냥 하는 거니까." 


"이봐, 이봐, 이러니 그냥 맨날 맨날 똑같이 일만 하지. 다른 게 들어갈 틈이 없어요. 게다가 욕심은 엄청 많죠? 돈도 많이 벌고 싶고, 일도 잘 하고 싶고, 능력도 더 좋아졌으면 좋겠고." 


"욕심이야 타고났지." 


"근데, 고등때보다는 지금 훨씬 낫지 않아? 그 때는 정말 정말 힘들었는데.." 


현아가 고등학생 정도의 모습이라 그런가, 갑자기 고등학생때를 떠올린다. 


"그 때는 그랬지, 조용했고, 드러나지 않았고, 그냥 공부는 좀 하는… 가난했으니까 공부라도 잘해야했지." 


"그래, 나도 그 때 우리집이 가난해서 그건 참 싫었어." 


그래서 그랬나 보다. 직장생활 중에 가장 좋았던 건 월급을 받을 때 였다. 내 손으로 돈을 번다는 것이, 그리고 통장에 찍히는 숫자가 늘어나는 게 좋았다. 내가 번 돈으로 내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돈을 벌기 위한 직장생활, 당시 직장생활은 참 어려웠다. 지금은 주 52시간, 하루 8시간 근무가 당연했지만 당시에는 밤 9시 퇴근하면 다행이라고 했던 시절이었다. 늦은 퇴근에 회식까지 겹쳐지면 집에 들어가는 건 새벽이 되기 일쑤였다. 그런 삶을 살았다. 일이 너무 많았고, 늘 일이 많아서 허덕거리는 생활. 그런 생활을 한 뒤에 나에게는 월급이라는 당근이 주어졌다. 월급을 받기 위해서는 힘들게 일해야 했던 그 시절에 직장생활을 해서 그런가 요즘도 일을 하면 늦게까지 하는 게 태반이다. 그렇게 30년 가까이 직장생활을 했고, 내 삶이라고 착각하면서 살아왔다. 


이제는 그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한번 든 버릇이 쉽게 없어지지는 않을 거다. 일하는 것만 배웠지 나머지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는 배운 적이 없다. 그리고 내가 뭔가를 하려면 시간을 쪼개서, 내 개인 시간을 희생해서 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없는 시간을 쪼개서 대학원을 다녔고, 코칭자격을 따기 위해 시간을 보냈다. 모든 시간이 일이 아니면 공부였다. 나에게 여가나 여유는 사치였다.  

그래서 나는 시간을 선용한다는 게 어떻게 하는 것인지 모른다. 나를 위해 시간을 쓴다는 게 나의 능력을 높이는 것에 올인했다. 시간을 쪼개서 많은 것을 하면서 산다는 건 좋은데, 일 이외에 다른 것이 들어올 틈이 없다는 게 문제다. 그리고 더 문제는 무엇을 하면 좋을지 조차도 모른다는 거다.  그걸 현아는 예리하게 비집고 들어왔다. 어쩌면 지금 고등학생의 모습을 하고 있는 현아도 마찬가지인지도 모른다. 그 당시의 나는 학교에서 공부만 했으니까.  


"가난한 게 싫어서 통장에 찍히는 숫자가 늘어나는 게 좋았나 보다. 그게 지금의 나를 만들었나 보네. 우리 참 불쌍하다.. 그치?" 


"그래, 우리 앞으로는 좀 다르게 살아보자고....." 


버스에 나란히 앉아가는 고등학생 모습인 현아와 50이 넘은 중년의 나, 두 명의 내가 마주보고 웃고 있다. 오늘의 현아는 좀 성숙해 보였다. 아직은 많이 어색하지만 현아도 나와 대화를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현아는 나니까.  


아직은 무엇을 하면 행복하고 좋을지 알 수 없다. 앞으로 현아와 함께 그 방법, 아니면 그 방향을 찾아볼 생각이다. 조금은 든든해 졌다고 하면 너무 앞서가는 것일까?  


낙동강을 가로질러 놓인 다리 위를 달리는 버스 밖으로 노란 가로등만 휙휙 지나간다.




Prologue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 걸까?

지천명은 개뿔

뭔가 잘못됐어  

도대체 어떻게?

내면 아이

나를 만나러 간다

현아는 왜 아직 꼬마일까?

현아와 기타

현아에게 보내는 편지

버려짐에 대하여

관성처럼 또 바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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