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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현 행복코치 Jun 11. 2022

스타킹 올이 나갔다 #1

내 삶에 균열이 시작된 순간

아침에 밍기적거리다 심사관으로 초빙받은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울산으로 향했다. 지하주차장에서부터 헤매면서 찾아간 3층 행사장은 텅 비어 있었다. 한 남자가 책상을 정리하고 있기에 오늘 행사를 하는 것이 맞느냐고 물었다. 


"이 회의실은 오늘 오후부터 사용하는 것으로 아는데요…"  


어리둥절한 표정의 남자가 그렇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심사관님! 무슨 일이세요?"  

경쾌하게 전화를 받던 담당자는 일정이 내일임을 알려줬다. 


아, 내일이었구나…. 일정을 착각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오늘은 무슨 이유로 이렇게 잊어버리고 여기까지 왔을까. 컨벤션센터는 이제 막 완공을 했는지, 여기저기 작업자들이 앉아서 뭔가를 하고 있었다. 어수선했다. 장소도 어수선하고 그 자리에 있는 나도 어수선한 머릿속을 정리하려고 서 있었다. 

다시 차에 올라 목적지를 집으로 하려다가 손가락이 알아서 움직였다.  


통도사. 

얼마전부터 통도사에 가고 싶었다. 통도사는 많은 이들이 찾는 관광지가 된지 오래지만 일반적인 관광지보다는 긴 역사가 풍기는 고즈넉함이 있었다. 본당까지 걸어 들어가는 길도 좋았고, 그리고 이제 막 가을에 접어든 경치도 보고 싶었다.  


그리고 또 속마음에 보고 싶은 곳이 또 한 곳이 있다.  

바로 도자기로 구운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그 곳이었다. 몇 년 전 이 곳을 처음 보고 그 느낌이 너무 좋았다.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다는 묵직함과 산사가 가진 조용함이라고 할까. 일반 사찰이 산속에 있는 데 반해 이 곳은 언덕 위에 있어서 주변이 다 보였다. 오늘은 왠지 모르게 그 곳에 가야만 할 것 같다. 그 곳에 가야 속이 뚫어질 것같았다. 무엇이 내 속에 그렇게 꽉 들어차 있는지 모르겠다. 무엇이 그토록 오랫동안 내 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일까? 


울산 행사장에서 통도사까지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통도사 바깥에 주차를 하고 걸어갈까 하다가 정장에 하이힐까지 신은 터라 걷기는 무리인 듯해서 경내까지 차를 몰았다. 기억을 더듬어 통도사 본당을 지나서 계속 올라갔다. 팔만대장경만 기억을 하지 수십개의 암자 중 어느 곳인지를 알 수 없었다. 기억을 더듬어가다가 다른 곳에 도착하고서애 검색을 해서 그 암자 이름이 서운암이라는 것을 알았다. 서운, 분명 다른 뜻이 있겠지만 그 이름이 나에게는 이렇게 들렸다.  


'오늘 이 곳을 보고 가지 않으면 "서운"할거야' 


올라갔던 길을 되돌아 내려와서 다른 길로 한참을 올라갔다. 드디어 서운암이 보인다. 몇 년 전에 왔을 때보다는 소란스러웠다. 틀어놓은 독경소리가 너무 컸고, 주변에 기와불사를 위한 기와와 불사 접수처 등이 있었다. 몇 대의 차도 있었고. 그렇지만 풍경소리는 여전했고, 언덕이라 바람이 옷자락을 쉴새 없이 날렸다. 마치 여기서는 이런 것은 필요없다는 듯이. 

장격각은 디긋자로 서운암을 감싸고 있었다. 서운암은 디긋자 장경각 속에 점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잠시 풍경을 보다가 바로 팔만대장경이 있는 장경각으로 들어갔다. 바깥은 독경소리로 시끄러웠으나 장경각안에서 독경소리는 그저 조금 큰 울림정도로 들렸다.  첫번째 길게 이어진 서판들 사이를 걸어갔다. 작은 도기판 안에 오랜 시간 누워있는 대장경은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일까. 그 많은 이야기를 사람들은 과연 알기나 할까. 이게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약간은 궁금했다.  


두 번째 방도 여전히 서판들로  가득하다. 이 방은 독특하게 미로처럼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의 길이 굽이 굽이 이어져있다. 열 걸음을 걸으면 꺽어야 하고 두걸음을 걸으면 다시 꺽어야 한다. 앞 사람이 보이지 않고, 어떤 길이 얼마만큼 이어지는지 알 수 없다. 아주 천천히 걸었다. 내 구둣 소리만 들렸다. 


또각 또각…  


평소 같으면 뭘 해야할지 이게 맞는지 저게 맞는지 생각들로 가득찼을 머리가 이번 만큼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내 발걸음에만 집중했다. 한 발 한 발, 발을 내딛고 다음 발을 들고, 또 내딛고 또 다음 발을 들고. 그 곳의 분위기가 그렇게 만들었다. 마치 다른 것을 생각하면 안될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서 장경각을 빠져나왔다.  

서운암의 앞은 넓은 자갈마당이다. 작은 자갈을 깔아놨고, 그 마당의 끝은 구릉이다.  오늘은 날씨도 너무 좋았다. 파란 하늘에 흰구름. 구름만 있어도, 파란 하늘만 있어도 이쁘지 않을텐데 오늘은 적당히 파란 하늘과 적당히 흰 구름이다. 아무 것도 지니지 않은 맨몸으로 구릉 앞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았다. 팔을 뒤로 뻣어 머리를 들고 먼 산을 올려다 봤다. 영남알프스의 능선이 흘러가고 있다. 그리고 고개를 내려 저 멀리 조그맣게 보이는 도시를 내려다 봤다. 도시를 올려다 보는 게 아니라 내려다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지금 만큼은 모든 것이 다 내 것인 듯했다. 시간도, 마음도, 몸도. 


내려다 보던 눈길이 하얀 선에 닿았다. 허벅지에서 장딴지로 쭉 그어진 하얀 선. 정장에 맞춰 신은 커피색 스타킹에 올이 나갔다. 나이든 어른들은 댄싱나갔다고 하는 그것. 


스타킹은 올이 나가면 더 이상 신을 수 없다. 물론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 발가락부분이나 치마로 가릴 수 있는 허벅지나 사타구니 부위라면 더 이상 올이 나가지 않게 마감을 하면 조금은 더 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다. 하지만 남들에게 보이는 장딴지 부위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그렇게 올이 나가는 순간 스타킹의 생명은 끝이다. 지금 내가 신고있는 스타킹도 오늘 사망선고를 받은 거다.  

그런데 말이다. 다리에 쭉 그어진 흰 선이 스타킹에 올이 나간 것을 알아채는 순간 '마치 인생같다'하는 생각이 올라왔다. 올이 나간 스타킹이 뭐라고 인생과 연결을 시키는 건가.  어처구니 없는 생각. 이제 너 인생도 끝났네.  


한 번 올이 나간 스타킹을 고칠 수는 없다. 만약에 고치겠다고 뭔가를 시도하는 순간 스타킹의 올은 더 많이 나간다. 마찬가지로 인생이 아무리 빵구가 나고 구멍이 숭숭 뚫어져도 고칠 수가 없다. 한 개인의 삶이란 하나하나가 모여서 된 것이라 전체를 폐기하고 다른 것으로 교체를 할 수 없으니까. 과연 온전하게 단 하나의 올도 나가지 않고 온전한 인생이 있을까? 그렇게 완전 무결한 인생이 있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건 과연 어떤 인생일까?


지금까지 반 세기를 살았다. 시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고 독자적으로 산 것이 30년이다. 그 동안 수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 일들의 결과가 지금의 나다. 그 모습에 칭송을 해야 하나 나는 정말 마음 속으로부터 나를 인정하고 칭찬을 할 수가 없다. 지금까지의 삶이 너무 고단하고 힘들었으므로. 마치 수십개의 올이 나간 스타킹처럼 나는 수많은 상처와 아픔과 아직도 여물지 않은 상처가 있다. 그 상처들을 앞으로도 안고 살아야 한다면 그건 천형이다.  


서운암에서 내려와서 라떼 한잔을 마시면서 의자에 기대어 앉아 있는 동안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냥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게 설령 나 자신이라고 해도. 현아를 불러내고 싶었다. 마음속으로 현아를 불러냈다.




Prologue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 걸까?

지천명은 개뿔

뭔가 잘못됐어  

도대체 어떻게?

내면 아이

나를 만나러 간다

현아는 왜 아직 꼬마일까?

현아와 기타

현아에게 보내는 편지

버려짐에 대하여

관성처럼 또 바빠졌다

현아 조금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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