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유난히 좋아하던 내가
처음으로 무르익은 가을을 맞아
색 다른 풍경을 보기 위해 떠난 여행.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에서
다시 내가 묵을 민박까지 가는 버스를 타려면,
한참을 저녁까지 기다려야 했다.
"아주머니 좀 늦을 것 같아요."
서울에서 일부러 일찍 출발했지만,
도착한 곳에 교통편이 없을 것을 예상하지 못해
덕분에 몇 시간을 정류장 근처에서 혼자 소소한 여행을 할 수 있었던.
조금 씩 내리는 비 때문에,
마침 준비해간 수건으로 감싸 들고 다녔던 카메라.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인파에
사람 없는 곳을 찾아다니다,
우연히 아무도 없는 작은 계곡을 만나
혼자 시간을 보내다가
나는 저녁이 될 때쯤 돌아왔다.
"곧 버스 타고 갈게요."
흐린 하늘이
시간이 흐를수록 진하게 변해가던 저녁
정류장에서 산 김밥과 컵라면으로
간단히 허기를 채우고
버스에 올라탄 기억.
어두운 산의 작은 언덕을 넘고
시골길에 만들어진 포장도로를 따라
한참을 달리다가
인적 없는 민박 앞에 내린.
"저녁 안 먹었지?"
손수 만든 반찬과 밥을
상에 차려주시는 아주머니.
거실에 앉아 밥을 먹으며
벽을 올려다 봤을 때
오래 된 영화 속에 나왔던
산 속 깊은 저수지 위의 고목들.
"오래전 여름에 찍힌 거야. 전문 작가 분이 찍어주셨어."
산 속에 있다고 믿기 힘든 풍경
물 위에서 자라난 듯한 고목들
여름에 걸 맞는 초록색과
산 속 깊이 들어오는 햇볕이 지나가는 나무 사이사이.
'나도 내일이면 저런 걸 볼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방안에서 짧은 단 잠을 청했다.
3시간 정도 잤을까
새벽 4시쯤, 주섬주섬 카메라를 챙겨
아무도 없는 캄캄한 시골길이 무서워
잠시 민박 앞에서 한참을 망설였다.
그러다 무작정 앞을 향해
저수지가 있는 산까지 계속 달렸던 기억.
산 입구에 도착했을 때
어떻게 저 안을 들어갈까 고민하던 찰나에
마침 랜턴을 가져온 사람들.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산 속을 낯 선 이들과 함께 들어가며
마음속으로 조금은 신기했던.
"아마 오늘은 사람이 없을 거예요."
날씨가 흐려 원하는 풍경은 보이지 않을 것이라던
한 아저씨의 말씀.
그렇게 저수지에 도달해
해가 산 속을 비추길 계속해서 기다리자
뿌연 하늘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럼 뭐 어때. 이렇게 예쁜데.'
어떤 모습이든
각자의 색이 있듯이
아름다운 단풍과 나무들이 내 눈을 사로잡은.
민박 집 앞에서 출발하는 버스 시간과
지도를 번갈아가 보며 계속 고민하면서도
쉽게 그 곳을 떠나지 못했던.
"이번에 가면 언제 돌아오겠어."
마지막 그 곳을 떠나려고 조금 씩 나오면서도
난 그렇게 계속 제자리를 맴돌았다.
버스를 타기에
시간이 많이 모자라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
오히려 마음이 조금 놓였다.
가벼운 마음으로
한 번 어둠 속에서 놓친 산길 풍경을
하나하나 둘러보며 천천히 내려가던 즐거움.
민박집에 들르자
점심 밥상을 손수 차려 주시면서
곧 마지막 버스가 올 거라는 주인 아저씨.
"아저씨, 저 걸어가려고요."
그렇게 뒤는 생각하지 않고
지도에 나온 또 다른 계곡으로 향했던.
비록 일정에는 없던 곳이지만
그렇게 아무도 없는 계곡이 보고 싶어서 향한.
아무도 찾지 않는 계곡에서
조용히 물소리를 들으며
홀로 긴 시간을 보냈던 기억.
그냥 돌아갔더라면
후회했을 것 같아
나는 마음속으로 참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나는 계곡을 나와
버스가 이미 지나간 길을 따라
한 참을 걸었다.
땀에 절은 옷과
카메라 가방
삼각대
옷이 들은 커다란 배낭.
얼마나 걸었을까
30 분쯤 가자 언덕 중턱에 있는 한 집에서
마당에서 일하고 있는 어떤 아저씨의 모습.
"이리 와서 사과 하나 먹어라."
서울로 가는 버스 정류장까지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하냐는 나의 질문에
그렇게 대답하면서
방금 가져온 사과를 건네는 아저씨.
그리고는 집 앞 길가를 가리키며
지나가는 트럭들이 많으니 아무거나 타면 된다 하시는.
정말 마술처럼
5분 만에 지나가는 트럭을 향해 손을 뻗고
거기에 올라 함께 언덕을 넘으며
처음 보는 이와 인생 이야기를 나누던 기억.
나무가 세월이 흘러 많이 변했어요.
차 안에서 저수지 위에 나무 이야기를 하다가
이미 많이 변해버린 고목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말씀하시는.
그러다 문득 생각나는 친구와의 대화.
"우리도 이제 20대 후반이구나."
시간이 흘러감을 안타까워하는 친구에게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말하던 나.
휘둥그레진 눈으로 나를 보며
그럼 나이 드는 것이 좋냐는 친구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던 기억.
"시간도 결국 사람이 정한 것일 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