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요새 그림 그려요?
일이 쉬는 토요일마다
영어 공부를 하러 다니다가,
취미로 다시 시작한 그림.
비록 잘 그리진 못하지만
가끔 씩 마음을 비우는데 도움이
되는 듯한.
"네 교과서는 만화책 같아서 빌려가기 좋아."
중학교 시절,
심심하면 내 수학 교과서를 빌려가던 친구의 말.
"찹 쉽죠?"
어릴 때는 매일 방문을 닫고 들어가,
그림을 그렸던 순간들.
텔레비전에서 매일 나오는
수염 덥수룩한 화가 아저씨의 그림을
푹 빠져서 바라보던 나.
어머니가 어디선가 그림을 배우려고
사왔던 이젤과 붓은
언제부턴가 내 차지가 돼버린.
"이건 산이고, 앞은 호수에요."
유화 물감이 없어서 그 대신
내가 가진 수채화 물감을 두껍게 발라 모두 써버린
그렇게 뿌듯해하며 학교에 출품했던 풍경화.
"집에서 스케치를 가져왔어요."
대학 시절 찾아갔던 어떤 화실에서
주최하는 유화 체험
지금 생각해도 참 못 그렸지만,
붓 끝에서 느껴지는 두꺼운 물감이 그저 좋았달까.
"그냥 하는 말이 아니고. 네 그림은 재미있어."
그 다음 주 유화가 다 말랐을 때,
캔버스를 들고 집으로 가는 나에게
해주시던 화실 선생님의 말.
오랫동안 그림을 그린 사람들 틈에 껴서,
혼자 집에서 가져온 스케치로 그린 추상화.
모두가 명화를 보고 열심히 그릴 때,
그렇게 어설프게 완성한 나만의 그림.
"난 항상 너 같은 스타일에 도전해 보고 싶었어."
직장인이 되어 다시 도전한
내 유화를 보며 그렇게 얘기해주던 한 외국인 친구.
처음 그릴 때 보다 여러 색을 섞어
써보기도 하고
그저 느낌 가는 대로 표현하면서
즐거웠으니까.
"한 번 가보자."
가끔 빵점을 받아오던 초등학교 시절
결국 어머니가 끌고 갔던 유명 미술학원.
"나무를 한 번 그려볼래?"
큰 뿌리에서 줄기와 잎사귀로,
생각 나는 대로 뻗어나갔던 기억.
"아이의 창의성을 그대로 살려주세요."
선생님의 말에
결국 나는 그 이후로
학원 대신 집에서 매일 그림을 그렸던.
"처음 미대에 가면 그동안 배운 것을
모두 지우는데 1년이 넘게 걸려."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그림 전시회
밥을 먹으며 그림에 대해서 얘기하다 나왔던 말.
너무 많이 알고 있거든.
미대에 들어가기 위해 배운 것을 지워야,
자신만의 길을 찾는다던 친구.
그러면서 오히려 나에게 부럽다고 말하던
친구의 푸념.
"넌 이제 전문성이 있잖아."
한국에서
이제 막 석사 졸업을 앞둔 친구에게
내가 그렇게 말했던.
"너처럼 할 수 있는 사람도 많지 않아."
나는 어떤 사람일까 고민하던 때,
친구가 해준 말.
그리고,
"사람에겐 각자의 길이 있는 거니까."
그 말을 듣고 마음이 편해진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