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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린 삶 Nov 09. 2015

'공간이 주는 의미'

- Copyright 김작 - (Fujicolor film 200)


도서관 출입증을 만들고 싶은데요.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도

저녁 늦게 집에 돌아오면

바닥에 커다란 가방을 내려놓고

땀에 젖은 와이셔츠를 갈아입고는


의자에 앉아

1시간을 꾸벅꾸벅 졸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책을 읽거나 무언가를 공부하다

잠이 들곤 한다.


유난히 잠이 많아서인지,

아니면 피곤이 쌓여서 그런 것인지

공부하려고 마음 먹고도


결국 10분도 못 견디고 책에 얼굴을

묻고 잠드는 스스로가

참 한심하게 느껴지는 것은

 혼자만의 욕심일까.



어떻게든 잠들지 않으려고

집 앞 카페에 매일 같이 학생처럼 앉아

책을 펴놓고 읽다 보면

20분 뒤에 나는  또다시 같은 페이지에서

감고 있던 눈을 뜨곤 한다.


'또 읽다가 잠들었네.'


그러다,

문득 대학 시절의 추억이 생각나

학교에 전화를 걸어

도서관 출입증을 만들기로 한 날.


퇴근 후 설레는 마음으로

학교의 어두운 캠퍼스를 가로질러

도서관에 들어갔다.


불과 졸업 후에 2년 정도 흘렀지만,

모든 캠퍼스가 공사 중이었기에 내겐 전혀 다른 모습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마치

길거리 여기저기 멈춰있는 공사 장비와

움푹 파인 캠퍼스의 도로, 벽돌 사이사이로

내가 가진 추억들이 지나가는  듯했다.


전공 수업이 끝나고 멀리 있는 교양 건물로 뛰어갔던 일,

취업 박람회가 열리는 날이면 쉬는 시간마다 돌아다녔던 일,

친한 동생들과 함께 점심을 먹었던 식당.


그런 순간의 기억들은

마치 내일이라도

다시 어딘가에서 수업을 들어야 할 것처럼

생생다.


"앞으로 이걸 이용하시면 돼요."


도서관 직원의 안내를 받아,

손 안에 있는 카드를 내려다봤다.


그런데 막상

이제 막 새로 받은 도서관 출입증을 들고

그 커다란 공간을

천천히 돌아보기만하고

나는 다시 밖으로 나와야 했다.


"생각해보니 나는 한 번도 도서관에서 공부한 적이 없었구나."


항상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조금은 시끌벅적하고 자유로운 곳에서

공부하기를 좋아했던 나이기에,

사실 도서관이 맞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동안 왜 이 곳에 오고 싶다고 생각했는지.


어쩌면 내가 가고 싶었던 곳은

도서관이라는 공간이 아니라,


항상 수업이 없는 시간이면

도서관 근처를 서성이던

그때 그 시간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는지.


- Copyright 김작 - (Fujicolor film 200)

"부산에 다녀오려고요."


마음이 복잡할 때면

바다로 떠나기를 참 좋아하는 나이기에,


모처럼 찾아온 연휴를 맞이하여

갑자기 나는 계획에 없는 여행을

떠나기로 다.


부산으로 가는 기차는 있지만,

일찍 돌아올 수 있는 표가  매진되는 바람에

급하게 예약한 편도 비행기.


그렇게 부산으로 가는 기차와

다음 날 서울로 오는 비행기 표를 끊었다.


비록 길게 휴가를 낼 수 없기에,

당장에 해외로는 나가지 못하지만

짧은 일탈로 마음의 위안을 얻고 싶어 달까.



- Copyright 김작 - (Film: Kodak 200)

"이 양반. 그 마을 말고, 부산이라면 저길 한 번 들려줘야지."


정신없이 떠난 무계획 여행으로

처음 부산에 도착하자마자 들린 스튜디오에서

후지 필름 두 롤을 구입하고,


그 동네에서 만나게 된 택시 아저씨의

안내를 받아 유명한 관광지들을 가보기도 하고,


근처 항구를 찾아가

배를 타고 섬을 돌기도 하면서

그렇게 정신없이 이 틀의 시간이 흘렀던 여행.


하지만 재미있는 건

내가 가장 좋았던 시간은

바다나 관광지가 아니라

공항에 머무른 짧은 2시간이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기다리기 위해

비행 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32번 Gate.


주위 의자에 둘러싸여

옆에 짐을 내려놓고

평소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공항을 오가는 사람들

활주로를 지나다니는 비행기들

그리고 내 앞에 텅 빈 의자들을 보면서


나는 천천히

내가 그동안 정신없이 매달렸던 목표들을 떠올렸다.


과연 맞게 흘러가고 있는지,


내년, 5년 뒤, 10년 뒤에 내가 그려 놓은

하나 하나의 점들이

서로 잘 이어지고 있는지.


혹시 멀리 그려 놓은 점들을 쫓느라,

지금 그려할 도화지에 아무 선도 그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스스로 택한 길을

따라 가다보면

언젠가 정거장 마다

작은 흔적들을 남기고는

저 멀리 내가 원하는 곳에 도착하겠지 라고

스스로를 위안하면서.


렇게 문득,

짧은 여행 끝에

이내 마음이 조금 편해져서는

생각했다.


'나는 결국,

공항이 오고 싶었던 거구나.'


라고.


- Copyright 김작 - (Fujicolor film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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