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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린 삶 Nov 28. 2021

[영국여행 1화] '나만 잘 모르는 걸까'

직장인, 방황하다 영국으로 오른 길 #1

Nikkon FG-20, Film,  United Kingdom

2017년 8월 무작정 여름휴가를 신청하고 영국행을 감행했었다.

한 외국계 회사의 B2B 영업사원으로 거의 밤낮으로 전국 출장을 다니며, 업무를 하던 나는

어느 샌가 하루에 몇 시간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고, 강원도부터 대구. 경주, 대전, 부산까지 가보지 않은 지역이 거의 없을 정도로 많은 지역을 다니게 되었다.

대학교 때는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할 때면, 무작정 카메라 몇 개를 들고 산속을 들어가기도 하고,

낯선 땅에 내려 히치하이킹을 하곤 했지만 이때가 직장생활 4년차 정도 되던 해였다.


영업관리 업무로 분석을 하거나 보고 업무를 하던 일상과 달리

이직과 동시에 갑작스러운 인사발령으로 주요 고객을 맞게 된 영업 사원으로서

저녁과 주말을 포기한 시간을 보내다보니,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개인 생활을 모두 잊어버린 나는

어디론가 잠시 떠나 모든 것을 잊고 싶은 시간이 찾아왔다.


밤 12시까지 이어지는 전화와 카톡,

새벽 3시까지 이어지는 생각의 소용돌이 속에서

영국행은 가뭄 속에 이슬과도 같았다.


원래는 영국행이 아닌 장기간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을 계획하고 있었다.

모두 숙소와 비행기 예약을 마친 상태였고,

금요일 퇴근과 동시에 토요일 떠나는 일정으로 잡혀있었으나,

금요일 퇴근 길 팀의 갑작스러운 회식에

나는 결국 새벽 늦게 집으로 돌아와 결국 술에 취한 상태로

모든 숙소와 비행기를 취소해야했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 바로 러시아행 취소와 동시에

몇 주 뒤 출발하는 영국행을 예약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마음이 정리되지 않을 것 같았다.


몇 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갑작스러운 술을 거절하지 못한 내 잘 못이리라.


Nikkon FG-20, Film,  United Kingdom


몇 주 뒤, 8월의 여름.

나는 영국의 공항에 생애 처음 도착했다.

매번 아시아 쪽의 나라들을 여행할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유럽이라는 설렘과 또 풍경들이 나를 두근 거리게 했다.


영국으로 떠나기 전,

ISO100에서 200의 컬러필름과 아버지가 10년 전에 쓰시던

낡은 니콘 필름 카메라를 챙겼고

마침 영국 Microsoft에서 근무하던 선배에게 연락하여

잠시 식사의 시간을 가지기로 약속했기에

어떤 여행이 될지 평소와는 사뭇 평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Nikkon FG-20, Film,  United Kingdom
Nikkon FG-20, Film,  United Kingdom
Nikkon FG-20, Film,  United Kingdom
Nikkon FG-20, Film,  United Kingdom
Nikkon FG-20, Film,  United Kingdom
Nikkon FG-20, Film,  United Kingdom
Nikkon FG-20, Film,  United Kingdom

공항을 거쳐 영국의 지하철에서 내려 숙소로 향하던 길은

모두 내 필름에 담고 싶은 순간들이었다.


항상 뿌연 하늘과 빌딩들만 보이던 서울에서,

내가 처음 본 영국의 하늘은 생각보다 붉게 타는 노을이 가득했다.

길거리에는 자유롭게 맥주를 들고 버스킹을 듣는 사람들도 가득했고,

내가 머무는 숙소 근처 타워브릿지에는 큰 배낭을 둘러맨 관광객과 자전거가 즐비했다.

Nikkon FG-20, Film,  United Kingdom
Nikkon FG-20, Film,  United Kingdom
Nikkon FG-20, Film,  United Kingdom
Nikkon FG-20, Film,  United Kingdom

조금 무리해서 묵은 숙소였지만, 숙소 앞에 있는 타워브릿지는

내가 방에서 창문만 열어도 밤새 볼 수 있는 장관 중 하나였다. 또 강이 바로 눈앞에 있어서

저녁에 방안에 앉아 있다가, 잠시 밤에 호텔 숙소 앞으로 나와서 멍하니 강을 바라보고 앉아 있기도 했다.


고등학교 시절,

나름 힘겹게 공부하고, 원하는 대학에 도전하고

직장에서도 나름 도전을 반복하여 한 단계 씩 나아가고 있다고 느꼈는데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일까 그런 생각을 반복하다가.


우선 눈 앞의 시간들에 몸을 맡기기로 했다.

최대한 아름다운 풍경들을 내 눈과 필름에 담아 가기로.


아주 어릴 적,

운 좋게 짧은 시간 유럽을 경험한 적이 있지만,

성인이 되고 유럽에서의 시간은 처음이기에 지금 만큼은

소중한 시간을 만끽하고 싶었다.


어느새 저녁이 되어 Microsoft에 있는

선배를 만나게 되었고, 우리는 그동안 오래토록 묵어있던

대화를 나눴다. 영국에서의 삶은 어떤지, 그리고 나의 고민들은 무엇인지.


Nikkon FG-20, Film,  United Kingdom
Nikkon FG-20, Film,  United Kingdom
Nikkon FG-20, Film,  United Kingdom
Nikkon FG-20, Film,  United Kingdom
Nikkon FG-20, Film,  United Kingdom
Nikkon FG-20, Film,  United Kingdom

대학교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하다가,

컴퓨터공학을 복수전공으로 졸업한 선배는


국내 대기업에 프로그래머로 입사한 후에 어느 날 퇴사를 결심했다.

스타트업으로 향한 선배와 뒤늦게 작은 중소 외국계 직원으로 입사한 나.

우리는 한국에서 2014년 오랜만에 전화로 삶에 대해 토론한 적이 있었다.


좋은 학점으로 서울에서 공대를 졸업한 나였지만,

과연 모두와 똑같은 삶을 살아가는게 맞을까 오랜 시간 고민하던 나는,


직장에서의 경험과 퇴근 후

서울에서 지속적으로 공부하는 삶을 병행하기 위해

숱한 좋은 직장들을 거절하고,

공대 전공을 살린 삶이 아닌

서울에 남아 경영 관련 업무를 하기로 했다.


나의 또 다른 장기 목표를 위해.


2021년인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 때 도대체 왜 그랬을까 싶다가도,

지나보면 이 것 또한 삶에 이유가 있으리라.




오래 전 한국에서 선배와 통화에서

그의 말에 위로를 받은 적이 있다.


나는 평생 프로그래머지만,
너같은 애들이 결국 사장이 되는 거야.


이런 말도 안되는 선배의 위로에,

나는 애써 힙겹게 고맙다는 말을 했다.


몇년이 지나 다시 2017년 우리 둘이 영구에서 만나게 되었고,

그는 스타트업에서 영국의 글로벌 IT기업으로 옮긴 시점에서

그의 멋진 성공이 나는 부러웠다.


약간은 내 자신이 초라했고,

20대시절 내가 10년 단위로 세운 인생의 계획에서

30대 시점이 된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나만 잘 모르는 걸까?


어쩌면 나만 인생의 해답을 잘 못 찾는 걸까.

나만 방황하고 고민하는 걸까. 모두가 이 길로 가면 성공이야 말하는 길이 아닌,

돌아돌아 힘겨운 길을 택하는 내가 잘 못 된 걸까.


꿈이 아닌, 돈을 향해 갔어야 했는가.

모두가 말하는 평범한 길을 걸어야 했는가 하고.


선배와의 저녁을 마치고,

밤 늦게 음악과 사람들 사이를 지나

한 때 폭탄 테러가 일어났던 골목을 지나갔고,

소매치기가 빈번하다는 강 주변에서 번쩍 거리는 밤 풍경을 늦은 시간까지 구경했다.


Nikkon FG-20, Film,  United Kingdom

텅텅 빈 길거리, 골목, 밤거리

그리고 영국의 냄새가 물씬나는 타워브릿지로

돌아오며,

아직 삶의 또 다른 기회가 있으리라.

나는 그렇게 다짐했다.


인생에 결국 정답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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