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은영 Feb 25. 2020

믿음 속에 그 춤을

종교와 자본은 한 배에서 난 이란성 쌍동이다. 그래서 종교시설을 유지 관리하는 수장은 자본과 가장 멀어 보이는 위치에서 가장 밀접한 핸들링을 한다. 이 과정에서 여인의 존재는 교주와 신도를 잇는 안테나요, 믿음을 다지는 지렛대요, 교주의 바이탈 에너자이저다. 신천지 이만희교주 관련 김남희씨의 폭로를 보면서 떠오른 단상 하나. 


포토바이 참향나무 샘 

어떤 스님 이야기다. 엄마가 어릴 적부터 외할머니와 함께 다녔던 절의 큰스님이 입적하시자 절은 정리수순을 밟게 됐다. 비구이셨던 큰스님의 친정이기도 한 ㅅㄱ사는 집에서 너무 멀었다. 기도는 엄마의 일상이었기에 엄마는 시내 작은 절로 걸음을 옮겼다. 새 절의 주지스님은 큰 절에서 수행하고 계를 받은 뒤 여러 절의 주지를 거친 훌륭한 분이라고 했다.  


집에 내려갔을 때 마침 엄마가 절에 가는 날이 겹치면 모셔드리곤 했다. 시내 한 복판을 비집고 들어온 위치, 절과 양옥이 합쳐진 묘한 구조, 전체 공간과 어울리지 않던 화려한 대웅전은 늘 낯설었다. 독신의 스님은 풍채 좋고 말씀 적은, 시쳇말로 상남자 스타일이었다. 딱 한번 들어본 스님의 설법은 인상적이었다. 강한 카리스마에 은근한 농을 섞어 신도의 90%인 중년여성들의 심장을 쿵쿵 울려댔다. 그날 나는 스님의 우스개소리에 잘 웃어지지 않았다. 오랫동안 큰스님의 겸손한 어법에 익숙해서 그랬을 것이다. 


신도의 그림자만 보여도 뛰쳐나와 반기는 중년여인이 있었는데 그 절의 총무였다. 부부와 정신장애가 있는 딸이 양옥에 살았다. 일이년에 한번 갈까한 신도 가족에게도 간 빼줄 듯 살가우면서 남편에겐 온 동네에 다 들리도록 무시하고 구박했다. 부를 때 호칭도 없었다. 톤이 달라지면서 빽 터져 나오면 그 소리는 어김없이 남편을 향했는데, 이상한 점은 남편의 태도였다. 어서 처분이 끝나기를 기다리듯 고개를 숙인 채 발끝만 봤다. 중학생 딸은 스님이 기거하는 별채 옆 사랑채에서 대부분 지냈다. 총무의 조처라고 했다. 집도 절도 없고 가난한 세 식구에, 남편에겐 눈곱만큼도 배울 게 없어 스님께 훈육을 부탁드렸다는 것이다. 


어느 날 엄마를 모셔다 드리는데 절 옆에 멋들어진 기와를 얹은 대형 음식점이 보였다. 여인이 차린 것이란다. 무슨 돈으로? 내가 물어도 엄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몇 년 후 스님은 당뇨 합병증으로 돌아가셨다. 간병은 여인과 딸이 번갈아 지극정성으로 했단다. 무성한 소문의 장막을 걷고 밝혀진 사실은 의외로 심플했다. 스님이 다른 지방에서 주지로 지낼 때 젊었던 이들 부부가 허드렛일을 거들던 중 여인과 스님이 김남희씨 표현대로 ‘육적 배필’로 지내게 됐고 딸이 생겨났다. 믿는 마음을 앞세운 회유와 종용, 씨를 뱄으니 어쩔 것이냐는 뻔뻔함과 협박, 내쫓기게 된 처지의 막막함과 울분이 삼자 간에 얽혀들었을 것이다. 자, 남편의 선택은 둘 중 하나다. 잔혹한 치정극을 벌일 것이냐 분루를 삭이며 순응할 것이냐. 그는 전자보다 천만 배 어려운 ‘굴종’의 길을 택했다. 여인은 스님의 여자가 되었고, 남편은 여인의 종이 되었다. 


아무리 무심하게, 아무리 객관적으로 말하려고 해도 안 됐던지 엄마는 말하다 말고 몇 번 쓴 입맛을 다셨다. 엄마의 오랜 믿음은 두 갈래다. 하나는 부처에게 하나는 자신의 믿는 마음에게. 스님의 파행을 다 알면서도 엄마는 한동안 걸음을 끊지 않았다. ‘중 없는 절’이 됐는데도 초하루 초사흘 등 때가 되면 대웅전을 찾아 향을 피우고 방석을 폈다. 

그러다 새로운 스님이 왔다. 여인의 통제 아래 절이라는 시설을 운영할 매니저가 온 것이다. 절에서 승복차림으로 오가는 민머리의 남자, 동네 사람들은 그를 다시금 스님이라 불렀다. 생전 스님의 파행과 여인의 만행에도 불편한 심기 내비친 적 없던 엄마는 새 스님의 첫 설법을 듣고 단번에 발을 끊었다. 몇 명 남아있지도 않은 신도들로 썰렁한 법당에 스님은 염불도 제대로 외지 못해 여인의 눈치를 자꾸만 보더라는 것이다. 마지막까지 놓지 않던 불자로서의 도리가 깨지는 순간이었다.


믿는 마음은 정갈한 것인데, 왜 부끄러움은 엄마의 몫이 되었는가. 종교계에선 지극하다는 표현을 여기저기서 많이 하던데, 옳거나 바른 것 뿐 아니라 악하거나 삿된 것에도 지극한 이치가 통하는 건가. 스님들, 목사님들, 교주님들 지극히 지극하시길. 나무관세음보살에 아멘에 할렐루야다.  

작가의 이전글 힘을 내요 대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