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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은영 Feb 23. 2020

힘을 내요 대구  

#1. 산 사람 vs 죽은 사람 

코로나19로 아산에 격리됐다가 해제된 우한교민의 말이 생각난다. 

“혼자 밥 먹는 게 괴로웠다. 가족과 함께 집밥을 먹고 싶다.” 

소소한 소망이었다. 감염 피해자에 강제격리의 울컥함 같은 것은 없었다. 그저 가족상봉과 집밥을 소원했다. 그런가하면 네 번째 사망자의 동료 얘기도 귀에 남았다. 

“야근하러 오지 않아서 집에 가보니 죽어있었다.” 

동료가 찾아갔다는 건 비상연락을 취할 가족이 없었다는 뜻이다. 마흔 한 살, 남들이 집밥을 먹고 휴식을 취할 시간에 작업복 차림으로 죽어갔을 남자. 문득 팩트 하나, 거의 대부분의 상황에서 가족은 희망의 증거다. 팩트 둘, 그러나 때때로 가족은 가족으로부터 잊혀진다. 팩트 셋, 지랄맞게도 질병에는 위아래가 있다. 


사진/연합뉴스


#2. 망상이라는 공포  

작업실에 지인이 놀러왔다. 그는 요새 뜻한 바를 위해 땅을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는 중이었다. 한담을 나누고 일어서며 그가 말했다. 

“걱정이 좀... 지난주 내내 경북 일대를 다녔어요. 몸살 기운이 있는데 설마 코로나는 아니겠지요?”

손님 가는데 미소는커녕 썩은 얼굴로 배웅하고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잠복기며 초기증상이며 폭풍검색을 하다 집에 돌아왔고, 몸이 으슬으슬하면서 하필 저녁 먹은 게 체했다. 밀폐된 조그만 작업실에서 깔깔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그가 마신 찻잔을 씻었던 순간들을 리와인드하느라 머리통이 아프고 위경련이 찾아왔다. 몸살이 확실한 것 같았다. 

공포가 사라지려면 더 큰 공포를 찾아내야 한다. 나는 감염됐으면 어쩌나 하는 망상을 떨치기 위해 스스로 확진초읽기라고 생각해버렸다. 일단 잠을 푹 자고 내일 초기대응부터 만전을 기하는 걸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타이레놀의 위력으로 딥슬립한 아침. 체기가 가라앉으면서 몸도 가벼워졌다. 리모컨을 켜니 확진자는 100명이 더 늘어있었다. 한 치의 망상으로도 이리 호들갑을 떠는데 그들에게 지난밤은 얼마나 길고 무서웠을까.  



#3. 메이드 인 대구 

“우한 폐렴이 아니듯 대구 코로나라고 하지 말아 달라. 대구는 사력을 다하고 있다.”

읍소하는 대구시장의 얼굴은 퉁퉁 부어있었다. 대구는 지금 폐허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수준이다. 다음주 확진자 수는 가파르게 늘어날 것이고 병실과 의료진은 태부족한 상황에서 그는 가장 괴로울 한 사람이다. 

여기저기 돌아댕기기 좋아하는 내 눈에 이 조그만 땅덩이 중 어느 한 곳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다. 그 중 오른쪽 등허리 한 뭉텅이가 시뻘건 병원체로 뒤덮이는 모습은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주간지시절 편집장, 일간지시절 회사 후배 등 일하면서 ‘찌질’의 절정을 보여준 두 케이스 이후 대구남자에게는 편견이 있다. 응, 나 후진 거 나도 인정.

그런데 나는 대구에 본거지를 둔 공장이라면 일단 믿고 본다. 무슨 묘법인지 모르겠는데 참 잘 만들고 오래 간다. 십년 째 모든 침구는 대구 사장님에게 산다. 결코 싸지 않지만 쓸수록 잘 샀다 싶다. 남는 장사다. 음식을 잘 안 해먹지만(!) 대구 직영 편집숍에서 산 법랑냄비와 주방기구들은 어디 하나 패인 데 없이 점잖게 세월을 먹어간다. 가끔 이용하는 남대문수입상가는 명함도 못꺼낸다. 

뜨거운 도시 대구의 뚝심과 근면함을 믿는다. 상처는 크고 아프겠지만 묵묵히 일어설 것이다. 마침 필요했던 베게커버와 식기류 좀 사둬야겠다. 내가 좋아하는 ‘메이드 인 대구’로.      


사진/연합뉴스


#4. 코로나에 짐 진 자들아  

국가재난사태가 벌어지면 감추고 싶었던 민낯이 드러나게 돼있다. 이번 코로나19가 음각한 중국의 병폐는 공산당의 무력과 고질화된 은폐습성이다. 일본은 크루즈선에 대응하는 매뉴얼 위주 관료주의로 세계적 비난을 받았다. 우리나라에도 정부가 손을 못 대고 있는 범선이 한 척 있다. 신천지호다. 어느 시대, 어느 유형이건 신흥종교의 음성적이고 조직적이며 치밀한 포교 활동은 일반인의 상상력을 넘어선다. 

종교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힐링 백신이다. 인간이 약해있을 때 신은 더욱 강해지기 마련이다. 마음이 약한 사람, 손해 보는 일이 많은 사람, 그러다보니 마음만큼 몸의 피로도가 높은 사람들이 종종 신흥종교의 타깃이 된다. 자기주장이 강하고 의심이 많은 사람이 황당무계한 교리로 무장한 신흥종교에 경도되기란 쉽지 않다.

저마다 종교의 자유가 있고 기도는 계속되어야 하겠지. 단 모여서 말고 혼자, 여기저기 옮겨 다니지 말고 한 자리에서 해주기를. 진득하고 오롯해야 기도빨도 먹힌다. 정말 당신들의 신이 존재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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