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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은영 Mar 29. 2020

이메일의 추억(ft.밥은 먹고 다니냐)



십오년 전 열흘 남짓 동안 수백 통의 이메일 테러를 당한 적이 있다. 동일 인물이었는데 매번 계정을 바꾸는 엄청난 수고를 해가며 나를 증오하고 저주했다. 5번 악담하고 한번 회계하는 꼴로 악화해갔다. 가해자는 스스로 곧 피해자였고, 악담은 참회로, 저주는 자폭으로 모양을 틀었다. 패턴화된 테러였다. 어지간해야 웃고 넘기지, 도통 무시하는 게 더 어려운 지경이었다. 

도대체 이 사람은 왜 이토록 수고롭고 집요하며 정성껏 나를 증오하는 걸까. 하루에 백통이 넘게 온 적도 있었다. 물론 시간을 가리지도 않았다. 나의 첫 책이자 당해 공전의 베스트셀러가 돼버린 <여자생활백서>가 세상에 활개를 치던 때, 독자에서 암살자로 변해버린 한 여자의 손끝이 메일의 발신처였다.  

나는 모든 메일을 다 열어보았다. 한 줄 또는 장문으로, 시뻘건 장막 또는 검은 궁서체로, 상욕부터 극존칭까지 변화무쌍했다. 의외로 나를 가장 괴롭힌 것은 읽기 힘들 정도로 많은 오탈자였다. 후회된다가 아니라 후해댄다, 네까짓거가 아니라 니까짙꺼 등등 무드 뿐인 능욕이 넘쳐났다. 


나라는 존재가 이 세상에서 없어져야 한다는 한결같은 주장을 각혈하듯 쏟아내는 사람. 누굴까. 놀라고 화가 나서 머리칼이 곤두섰다. 수백 통의 이메일에 일일이 답장을 썼다. 복붙하고 싶었으나 그럴 수도 없었다. 어휘는 참담했지만 내용은 저마다 달랐다. 상욕에는 알았다고 썼고, 저주에는 좋은 하루 보내라고 썼다. 모든 메일을 존댓말로, 끝머리엔 오탈자를 고쳐 달아주었다. 

괴롭고 지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화가 나고 심장이 뛰어서 잠이 잘 오지 않았다. 경찰에 신고해 그의 신상을 파악한 날 나는 답장에 ‘나를 이렇게 저주하는 이유를 내가 직접 듣고 납득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적어 보냈다. 그는 이십대초반의 2급 장애인이었다. 


내 책은 속옷을 잘 입는 것이 자신감의 시작이고, 키스할 땐 딴 생각 말고 상대에게 집중하라는 발칙한 연애팁부터 자존감을 뭉개는 사람과는 만나지 말고 친구관계에도 적당한 거리를 지키라는 인간관계의 훈수까지 젊은 여성들을 위한 83가지 생활팁이 그득했다. 나 역시 삼십대 초반, 함께 걸어가는 동시대 여성들에게 보내는 크리스마스카드처럼 간단하고 스스럼없었다. 한편 누군가에게는 지옥문의 안내장이기도 했다.   



경찰서 민원실에 따르면 그는 누구의 도움 없이는 문 밖을 나갈 수 없는 수준이다. 그는 또래 젊은 여성들처럼 맛집순례나 영화관람이나 무박2일 여행을 갈 순 없어도 온라인주문으로 책은 읽을 수 있었다. 또래와 공감하고 싶어서 내 책을 주문했는데, 그 안에는 도저히 본인이 할 수 없는 일들만 가득했다. 키스할 때 남자의 목언저리를 스킨십하라거나 경조사에 적합한 톤앤매너 따위의 팁들은 ‘조롱 같았다’고 했다. 다른 여자들은 이런 책 읽으면서 우스개소리를 하고 슬그머니 따라 해보고 작가와의 만남(당시 나에 대해 많은 정보를 채집해둔 상태)에 나가고 그러는구나 생각하니 괴로웠고, 괴로워하다가 작가‘년’을 괴롭히기로 결심했다.   

그의 결심대로 나는 괴로웠다. 무참한 테러 피해자인 마당에 그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이중으로 괴로웠다. ‘쓰레기 같은’ ‘야한’ 내 책을 돌려받기 위해 책값을 들고 당신 집에 찾아갈 테니 전화하면 받으시라고 한 날, 그는 읍소 메일들을 내 이메일함에 투척하기 시작했다. 저주의 말처럼 용서를 구하는 말도 문맥없이 장황했다. 그러던 어느 날 메일이 끊어졌다. 시작이 그랬던 것처럼 끝도 감쪽같았다. 한동안 이메일을 열 때마다 옅은 심호흡을 해야 했다. 그가 내게 쏟아낸 저주의 말들 가운데 잊을 수 없는 한 문장이 있다. 그는 유독 이 문장을 여러 번 반복해서 내게 보냈다. 


“너 같은 건 길 한복판에서 남자들 여러 명에게 성폭행 당해야 해!” 

그가 나를 증오하기 위해 끄집어낸 최대치의 벌주기는 백주대로에서의 윤간이었다. 그는 곧 사람을 풀 거라고 했다. 집어먹어봐야 아는 것은 똥이나 된장뿐이다. 굳이 당해보지 않아도 섹슈얼한 행동이 폭력이 될 때 인생이 어떻게 전복될지는 성인이라면 예측가능하다. 형벌 코멘트의 효과는 대단했다. 당시엔 비현실적이었던 저주의 말은 이후 온라인 폭력의 형태를 띤 범죄들을 볼 때마다 계기적으로 뇌리에 떠올라 뒷목이 쭈뼛하다. 


2006년 가을 이미 이메일로 나에게 무수한 성적 수치심과 모욕감의 폭력을 행사했던 그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지 궁금하다. 백주대로의 윤간은 낯짝 사진이라도 벽에 걸고 복수의 칼이라도 갈지, 온라인으로 날라진 모욕은 형체없이 날아와 박혀서 급기야 세상천지가 나를 모욕하는 것 같거든. 그래, 당신, 복지환경이 한 발짝 좋아진 만큼 건강은 괜찮아졌으려나. 

이혼가정의 성장기, 작은 키 콤플렉스와 가난 등 N번방 조주빈에 대한 각종 서사가 차곡차곡 보태지는 걸 보면서 굳이 당신 생각이 났어. 그럴듯하고 짐작 가능한 환경 속에서 온라인으로 숨어들어가 뼈와 살을 차지게 키워온 당신네 종족 말이야. 더는 말을 보태고 싶지 않을 만큼 이미 나는 너무 피로해. 그렇지만 이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고 결판나는지 지켜볼 거야. 나를 성폭행 사주하겠다던 당신의 메일에 손끝을 떨면서 짐짓 담담한 척 답장을 보내던 내 심장은 당신 덕에 더 튼튼해졌거든. 

물리적 공소시효도 끝났고 크라스마스는 아니지만 그때처럼 스스럼없는 카드 한 장 보낼까? 이렇게 적어서. 어느 세상에 있건 조금이라도 올바른 쪽으로 생각하고 살아. 누워있으나 서있으나 삐뚜름한 건 건강에 아주 나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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